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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 남준은 순간 멈칫했다. 권민아는 그 틈을 타 얼른 그의 품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녀는 지금 남준이 해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침실로 돌아가기까지 뒤에서 남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권민아는 한숨을 내쉬며 부드러운 침대 위에 누웠다.
  • 그녀는 옆으로 누워 꼼짝도 하지 않으며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등 뒤에 갑자기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곧이어 옅은 샴푸 냄새가 그녀의 코를 맴돌았고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는 것이 느껴졌다.
  • “자요?”
  • 남준이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 권민아의 귓가에 남준의 뜨거운 숨결이 끊임없이 전해졌다.
  • 그녀는 순간 몸이 굳어졌고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 남준이 나지막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손이 천천히 어깨에서 그녀의 허리로 이동하더니 이내 힘주어 끌어안았다.
  • 권민아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녀는 그의 스킨십이 달갑지 않았다.
  • ‘이 손으로 세리를 안았겠지.’
  • 그녀는 순간 뒤통수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고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 남준은 무언가 참는 듯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한참 후, 그는 한숨을 내뱉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 “저랑 세리 사이 아무 일도 없었어요. 낮에 일은 그저 연기였을 뿐이에요. 연예인이 인지도를 높이려면 제일 좋은 방법이 스캔들이잖아요.”
  • ‘그래, 스캔들. 그래서 지금 당신이 희생했단 말이야?’
  • 권민아는 차갑게 웃으며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침묵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남준은 몸을 권민아 쪽으로 옮기며 더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는 미련 가득한 손길로 조심스레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 그러나 권민아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하며 몸을 떨어뜨렸다.
  • 남욱은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크게 한숨을 쉰 다음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 자기가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 권민아는 입술을 깨물며 베개 끄트머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마음속 한 켠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언제부터 우리 둘이 이렇게 됐지?’
  • 따뜻한 햇살이 갈라진 커튼 사이로 들어와 권민아의 얼굴에 비쳤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눈을 비비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지금 남준의 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단단한 팔이 권민아의 허리에 올려져 있었다.
  • 그녀는 뚫어져라 잠들어 있는 남준의 얼굴을 바라봤다. 권민아는 그의 길쭉한 속눈썹을 만지려 손을 뻗었지만, 곧바로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몸을 씻고 준비한 다음 별장을 나섰다.
  • 남준은 무의식적으로 옆 자리를 더듬었는데 차가운 이불만 만져졌다. 그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그는 대충 슬리퍼를 신고 권민아를 찾으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때마침 그녀가 돌아왔다.
  • 남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작은 팔목에 걸려 있는 작고 큰 쇼핑백들을 바라봤다. 그런 다음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 “어디 갔다 왔어요?”
  • 권민아는 손에 들린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허리를 굽혀 신발을 벗었다.
  • “선물 좀 사 왔어요. 어머님, 아버님 못 뵌 지 오래 됐잖아요. 같이 갈래요?”
  • 남준은 뚫어져라 권민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남준은 곧이어 몸을 돌려 소파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 “회사에 일이 있어서 다음에요.”
  • “알겠어요.”
  • 권민아가 덤덤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남준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려 고개를 돌렸지만 권민아는 이미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녀는 요리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간이 안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준은 얼른 몇 입을 먹은 뒤 옷을 갈아입고 출근했다.
  • “회사까지 데려다 줄까요?”
  • 남준이 문가에 서서 지나가듯 물었다.
  • “아니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 권민아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럼 운전 조심해요.”
  • 남준은 굳이 다시 권하지 않았다.
  • 그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권민아는 그제야 물건들을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차를 끌고 남씨 가문 옛 저택 방향으로 갔다.
  • 그런데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만나게 됐다. 그 사고를 낸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