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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귀는 사이 맞아요

  • 그의 입가에 정중하고도 능숙한 미소가 걸렸다. 남준은 셔츠를 잠시 매만진 다음 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응시했다.
  • 권민아는 남준에게 발견될까 살짝 긴장됐다.
  • 그녀는 조심스레 뒤로 물러나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남준의 눈빛은 부드러웠으나 여전히 어딘가 두려움이 일게 했다.
  • 권민아는 세리를 더 찍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세리가 남준을 향해 달려가더니 그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 세리는 선글라스를 벗은 채 요염하게 눈꼬리를 올렸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는 태양 빛에 반사되어 더 투명하게 보였다.
  • 권민아는 멀찍이 떨어져 멍하니 남편이 미소를 머금은 채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 ‘웃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 권민아는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미소가 눈부시네.’
  • 그녀는 지금까지 남준의 냉랭함이 선천적인 건 줄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무엇을 하던 얼굴색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 ‘지금 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구나! 그 냉담함은 나한테만 향한 거였구나.’
  • 권민아는 처음으로 남준이 낯설게 느껴졌다.
  •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켠 후 속에서 올라오는 불쾌감을 내리눌렀다. 그런 다음 주먹에 힘을 준 채 자리를 떠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몸을 돌리자마자 다른 기자와 부딪히게 되었다.
  • “아!”
  • 권민아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 나왔다. 그녀는 얼른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부드럽고 연약한 피부에 혈흔이 생겼고 권민아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 뜻밖에 일어난 사고에 사람들이 시선이 몰렸고 남준도 그 모습을 보게 되었다.
  • 남준은 단번에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이 권민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지만, 남준의 차가운 얼굴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 그는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듯 권민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 세리가 남준의 목에 매달리면서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남준 씨, 저 금방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요. 얼른 쉬고 싶어요.”
  • 남준은 시선을 돌리며 아주 친근하게 세리의 손을 두드렸다.
  • “사람 시켜 호텔 예약했으니까 얼른 가자.”
  • 세리가 행복한 듯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 권민아는 이 모든 광경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그녀는 거리 때문에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뿜어져 나오는 행복감은 느낄 수 있었다.
  • 이건 연인 사이에서만 나올 법한 그런 분위기였다.
  • 권민아는 심장이 바늘에 찔린 듯 아팠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고 빨갛던 입술이 하얗게 변했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 그녀는 남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없었지만, 권민아는 남준이 저런 여자를 좋아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 권민아는 항상 일에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그녀는 질문하기 위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 그런데 이때 한 기자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권민아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남준 대표님, 세리 씨와 사귀는 사이인가요? 두 분 얼마나 되셨어요?”
  • 권민아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뚜렷이 남준을 응시하며 가슴을 졸였다.
  • ‘뭐라고 대답할까?’
  • 시끌벅적했던 주위가 조용해지더니 무수한 렌즈가 남준을 향해 맞춰졌다. 그는 차가운 눈동자로 한쪽에 서 있는 권민아를 힐끔 쳐다본 다음 옅은 미소를 짓더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부터 발표할게요. 여기 제 옆에 있는 세리 씨와 저, 사귀는 사이 맞아요.”
  • 권민아는 멍하니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이 지나칠 정도로 잘생긴 남준의 얼굴이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 세리는 남준한테 팔짱을 낀 채 온몸을 그에게 바짝 기대며 무게 중심을 그에게 쏠리게 했다.
  • 그녀는 차가운 눈동자로 밑에 있는 권민아를 바라보며 매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 권민아도 그에 질세라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가슴을 당당히 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기세로는 권민아도 절대로 밀리지 않았다.
  • 세리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남준의 팔을 흔들며 애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남준 씨, 저 피곤해요, 발도 아프고. 저 안고 돌아가면 안 돼요?”
  • 권민아가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로 남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남준이 거절하길 바랐다. 하지만 남준은 전혀 망설임 없이 세리를 안고 그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