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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우리 이혼해요

  • “아가씨, 도착했어요.”
  • 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그녀는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 권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지불했다. 그런 다음 차에서 내려왔는데 뜻밖에도 남준이 먼저 집에 와 있었다.
  • 그는 지금 회색의 편안한 실내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옷 품이 큰데도 불구하고 그의 완벽한 몸매를 가리지 못했다.
  • 남준은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기대어 있었으며 금방 씻었는지 젖은 머릿결엔 여전히 물기가 남아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 권민아는 순간 그 모습에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거실에 세리의 그림자가 없는지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도대체 사무실에서 뭘 한 거지?’
  • 권민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놓친 것이 없는지 머리를 굴렸다.
  • “언제까지 거기에 서 있을 셈이에요?”
  • 남준이 불쑥 물었다.
  • 권민아는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얼른 정신을 차리며 현관문을 닫았다.
  • “저녁 아직 안 먹었어요?”
  • 남준이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 신발을 한쪽으로 벗어둔 그녀가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 “입맛이 없어서요.”
  • “그래요.”
  • 남준이 말없이 커피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몸을 돌려 서재로 향했다.
  • “신경 쓸 것 없어요. 우리 얘기 좀 해요.”
  •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온 권민아가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 남준은 발걸음을 멈춘 채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 “오? 저랑 무슨 얘기 하려고요?”
  • “세리.”
  • 권민아가 차갑게 답했다.
  • 남준은 그녀의 눈동자에서 차가움과 피곤함을 느꼈다.
  •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다음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권민아는 입술을 깨문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엔 그의 뜻을 따랐다.
  • 남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려 했지만, 그녀는 소파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며 그와 거리를 유지했다.
  • 그는 살짝 자리에 멈칫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다음 손을 다시 거두고 생각에 잠긴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 “딱 보면 세리 씨는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당신도 세리 씨한테 마음이 있어 보이고….”
  • “그런 것도 볼 줄 알아요?”
  • 남준이 갑자기 그녀의 말을 잘랐다.
  • 권민아는 짜증스레 그를 흘겨보았다.
  • ‘말하는데 왜 자꾸 훼방을 놓는 거야?’
  • “남준 씨,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죠? 세리 씨를 좋아하게 됐으면 우리 사이에 더 미련을 두지 말아요. 저는 밖에 있는 다른 여자들이랑 달라요.”
  • 그녀는 살짝 화가 났다.
  • 남준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평온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럼 말해봐요. 당신이 어떤 여자인지.”
  • 권민아는 침묵하며 한참을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다음 한숨을 내쉬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 세리 씨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난 중간에서 빼 줬으면 좋겠어요. 남준 씨, 우리 이혼해요.”
  •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 이건 남준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주먹이 하얘지도록 힘을 주었다.
  • 그러다가 갑자기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리며 성큼 앞으로 다가가더니 권민아의 턱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대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 “시집오는 건 쉬워도 떠나는 건 글쎄… 하.”
  • 권민아는 분한 듯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말했다.
  • “저 참을 만큼 참았어요.”
  • 그녀의 말엔 피곤함이 가득 느껴졌다.
  • 그의 눈빛에 잠시 안쓰러움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소파로 돌아가 차갑게 말했다.
  • “떠나고 싶으면 저의 환심을 얼마나 사는지 따라 결정되겠죠.”
  • 남준의 말투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는 뼈마디가 두드러진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는데 권민아는 그 손길이 그녀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 그녀의 눈빛이 점점 공허해졌다.
  • ‘이 결혼에 필요했던 건 ‘환심’ 그것뿐이었어?’
  • “그럼 세리 씨도 당신의 환심을 얻었겠네요?”
  • 권민아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물음이 툭 튀어나왔다. 그녀는 말을 바꾸려 했지만, 이미 그 전에 남준이 답을 해버렸다.
  • 그가 말했다.
  • “당연히 당신보단 많이 얻었죠.”
  • 권민아는 천천히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덤덤한 미소를 유지한 채 홀가분하다는 듯 말했다.
  • “당신의 말을 들으니 제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는 확신이 드네요. 역시 이혼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