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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이혼 후 연애

선 이혼 후 연애

코코필

Last update: 2023-01-17

제1화 첫사랑의 귀환

  • 백은경은 몸에 이불을 두르고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 밖으로 드러난 하얗고 동그란 어깨에는 얼룩덜룩한 키스 마크가 여러 군데 찍혀 있었다. 초점도 없이 공허한 눈빛이었지만 섹시하고 아름다웠다.
  • 욕실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 잠시 후, 욕실 가운만 걸친 문효준이 밖으로 나왔다.
  • 그는 여느 잡지사 모델보다도 완벽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군더더기 없는 흉근과 복근. 넓은 어깨, 군살 하나 없는 허리까지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 “멍하니 무슨 생각해?”
  • 남자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 “위자료로 뭘 요구할지 결정했어?”
  • 정신을 차린 백은경은 남자의 섹시한 몸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 “이혼 안 하면 안 돼요?”
  • 여전히 순수하고 달콤한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슬픔이 묻어나왔다.
  • “새삼스럽게 왜 철없이 굴어?”
  • 문효준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눈빛만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 “시아가 돌아왔어.”
  • 백은경은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 윤시아의 귀환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윤시아는 어렸을 때부터 문효준과 함께 자란 그의 첫사랑이었다.
  • 하지만 윤씨 가문 사생아인 그녀는 가문에서 냉대받는 존재였고 문씨 가문은 당연히 문효준과 그녀의 결합을 반대했다.
  • 백은경은 재벌 집 규수는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가문에서 사랑받고 자란 외동딸이었다.
  • 그의 부모님은 평범한 의사 출신이었는데 화재 구조 현장에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 그때 그들이 구조한 사람이 문효준의 할머니였다.
  • 이들 부부는 자신을 희생해서 문씨 가문의 노부인을 구했다.
  • 노부인은 생명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문효준과 백은경의 결혼을 추진했다. 물론, 윤시아를 쳐내기 위한 사심도 있었다.
  • 그때 당시 노부인의 상태가 많이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문효준은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그는 백은경에게 자신은 절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결국 모든 것이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연기였다.
  • 백은경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사람들 인상 속의 그녀는 토끼처럼 순하고 부드러우며 이해심 많은 여자였다.
  • 문효준도 이 점은 꽤 마음에 들어서 한마디 덧붙였다.
  • “나 문효준의 와이프로 사는 동안에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줄 거야. 3년 뒤에 이혼하면 위자료는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 백은경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사실 돈을 보고 그와 결혼한 건 아니었다.
  • 그와의 결혼은 사춘기 때, 그녀의 꿈이었다.
  • 그런데 그 꿈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 이제는 현실을 마주할 때였다.
  • 그녀는 3년 동안 온화하고 부드러운 현모양처로 살았지만 이 남자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 백은경은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 “준이 씨.”
  • 백은경이 그를 불렀다. 그녀에게만 허락된 애칭이었다.
  • 매번 사랑을 나눌 때 애칭을 부르면 문효준은 더 뜨겁게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 겉모습은 분명 순진한 토끼인데 가끔은 여우처럼 요염한 구석이 있었다.
  • 이혼하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 이런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를 것을 생각하니 문효준은 분노가 치밀었다.
  • “왜?”
  •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 백은경은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용기 내서 말했다.
  • “준이 씨, 저 임신했어요.”
  • 문효준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
  • “방금 뭐라고 했어?”
  • 백은경은 어깨를 흠칫 떨며 하얀 이로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 “저 임신했다고요.”
  • “지워.”
  • 문효준은 고민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
  • 백은경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 “뭐라고요?”
  • “지우라고.”
  • 문효준이 부드러운 얼굴로 가장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 “아이 때문에 이혼을 번복하고 싶지 않아. 이 아이가 나랑 시아 사이의 걸림돌이 되는 건 더더욱 싫고.”
  • ‘어떻게!’
  • 백은경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 아이도 그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역부족이었다.
  • 그는 한치 주저도 없이 아이를 지우라고 말했다.
  • 이런 냉혈한이 또 있을까?
  • 아무리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의 핏줄이었다.
  • “풉!”
  • 백은경은 갑자기 요염한 자세로 웃음을 터뜨렸다.
  • 문효준이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
  • “왜 웃어?”
  • “임신은 거짓말이었어요.”
  • 백은경은 활짝 미소를 지었지만 속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거짓말이었다고?”
  • 문효준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 “그냥 농담한 거였어요. 믿지 못하겠으면 병원에 검사하러 갈까요?”
  • 백은경이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 “농담이면 다행이고.”
  • 문효준이 차갑게 말했다.
  • “난 나중에 발목을 잡을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해. 정말 임신이라면 아이 하루빨리 지워. 보상으로 2백억을 더 지불할게. 나중에… 재혼할 때 아무 영향 없도록 몸보신도 잘 시켜줄게.”
  • 재혼?
  • 백은경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정말 임신 아니에요. 그러니까 돈도 더 주실 필요 없어요. 병원에 검사하러 꼭 가야겠다면 그렇게 해요. 그래야 당신도 안심할 테니까요.”
  • 문효준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 “나랑 이혼하면 뭐 할 거야?”
  • 백은경은 팔로 그의 목을 휘감으며 대답했다.
  • “연예계에 입성하고 싶어요.”
  • 문효준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백은경은 서울대 영상학과 출신이었다.
  • 문씨 가문에 시집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 유명한 여배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문효준은 어쩐지 그녀가 연예인 길을 걷은 것이 탐탁지 않았다.
  • 그녀가 얼마나 달콤한 매력을 가졌는지 알기에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보는 게 싫었다.
  • “그래. 이혼 협의서에 하나 더 추가하지. 스타 엔터테인먼트랑 계약을 하게 해주겠어. 5년 안으로 당신 톱배우로 만들어 줄 거야.”
  • 그가 차갑게 말했다.
  • 백은경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할머니한테는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 이 얘기가 나오자 문효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 노부인은 절대 그들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 게다가 노부인은 사생아인 윤시아를 극도로 싫어했다.
  • “당신이 얘기 좀 해줘.”
  • 문효준이 냉랭한 시선으로 백은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 “당신이 말하면 할머니도 뭐라고 안 하실 거야. 할머니를 설득한다면 당신 명의로 아파트 하나 더 해줄게.”
  • 백은경은 할 말을 잃었다.
  • 가슴이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팠다.
  • ‘내가… 이까짓 돈이랑 집 때문에 자기랑 결혼한 줄 아나 봐….’
  • 그는 말로 그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찔렀다.
  • “그래요.”
  • 한참 침묵하던 백은경이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 “준이 씨, 한 번 더 저를 안아줘요.”
  • “이런 요물 같으니라고.”
  • 문효준은 그녀를 안아 자신의 다리에 걸터앉히며 탄식했다.
  • 사실 그도 그녀에게 끝없는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 이처럼 달콤한 여자를 거부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
  • 하지만 앞으로 더는 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갑갑했다.
  • 그는 거친 손길로 미친 듯이 그녀를 탐했다.
  • 뜨거운 밤이 지나가고 백은경은 핸드폰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 문효준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면으로 그녀에게 꽤 세심한 편이었다.
  • 그녀가 아침잠이 예민한 걸 알기에 그는 저녁에 돌아오면 핸드폰을 무음이나 진동에 놓았다.
  • 갑자기 전화가 와서 그녀의 단잠을 깨울까 걱정해서였다.
  • 하지만 요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
  • 백은경은 힘겹게 눈을 뜨며 핸드폰을 찾았다.
  • 하지만 핸드폰 화면에 커다랗게 보이는 ‘시아’ 두 글자를 보자 잠이 확 깼다.
  • ‘무음 모드를 그만둔 이유가 윤시아 때문이었나? 정말 자상한 연인이네.’
  • 백은경은 갑자기 지난 3년간 문효준의 배려가 달콤한 꿈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었다.
  • 문효준이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살뜰하게 대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 그녀와 윤시아가 놀랄 정도로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3년 동안 윤시아의 대체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