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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당신이 원해서 한 결혼이잖아

  • 백은경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 “아주버님이셨군요.”
  • 임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 “효준이랑 두 사람 무슨 문제 있어요?”
  • “아주버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 백은경이 맑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 “윤씨 가문 사람에게서 윤시아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임호가 솔직히 대답했다.
  • 백은경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네요.”
  • 백은경과 문효준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윤씨 가문도 알고 있었다.
  • 윤씨 가문의 장녀 윤유이는 윤시아를 지극히 싫어했지만 문효준을 짝사랑했다.
  • 그래서 문효준과 백은경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일부러 찾아와서 백은경에게 시비를 걸었던 적도 있었다.
  • “주제넘게 넘볼 걸 넘봐야지. 윤시아 대체품으로 평생 살아 봐! 효준이가 너한테 마음을 주나!”
  •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그른 것 하나 없었다.
  • 그녀는 오래 곁을 지키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대체품은 결국 대체품이었다.
  • 임호는 백은경의 암담한 표정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 그는 어색하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 “은경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 임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난 예전처럼 널 위해 모든 걸 걸 테니까.”
  • 백은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아주버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 임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 “백은경, 사실 10년 전….”
  • “임호야, 아직 안 갔니?”
  • 이때 등 뒤에서 심민희가 그들을 불렀다.
  • “여기 게 남은 거 가져가서 너희 엄마 드려. 좋아하실 거야.”
  • “네, 이모.”
  • 임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심민희가 내민 박스를 받았다.
  • “운전 조심하고.”
  • 심민희가 살뜰히 당부했다.
  • 임호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 추운데 어서 들어가요.”
  • “그래.”
  • 심민희는 백은경을 힐끗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 심민희가 자리를 뜨자, 백은경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아주버님, 조금 전 뭐라고 하셨어요? 10년 전 무슨 일이 있었나요? 혹시 10년 전에 우리 만난 적 있어요?”
  • 임호는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서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 ‘너랑 효준이 이혼하면 그때 다 얘기할게. 그때가 적당하겠지.’
  • “갈게요.”
  • 임호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며 담담히 작별 인사를 했다.
  • 백은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 “둘이 뭐 하고 있어?”
  • 이때 문효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 임호는 이미 멀리 간 뒤였다.
  • “아무것도 아니에요.”
  • 백은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둘이서 오래 얘기하던데.”
  • 문효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차가웠다.
  • 사실 그는 2층 베란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 “강아지 키울 때 팁들에 관해 얘기했어요.”
  • 백은경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 “강아지?”
  • 문효준이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 “설이는 당신이 키우는 개도 아니잖아?”
  • “네, 그렇죠. 제 주제에 무슨 개를 키우겠어요.”
  • 백은경이 얄밉게 받아쳤다.
  • 문효준의 얼굴이 차갑게 일그러졌다.
  • “백은경!”
  • “제가 뭐 틀린 말 했나요?”
  • 백은경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 “좋아. 그렇게 나온다 그거지?”
  • 문효준이 넥타이를 풀었다.
  • 백은경은 용기 내서 쏘아붙였다.
  • “내 몸에 손끝이라도 대봐요. 그 흔적들 전부 사진 찍어서 윤시아 씨한테 발송할 테니까.”
  • “당신은 절대 그런 짓 못 해!”
  • 문효준이 음침한 표정으로 포효하듯 소리쳤다.
  • “저를 불편하게 하면 그럴 수도 있죠!”
  • 백은경도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 ‘왜 난 서러워도 짜증 나도 다 참아야 해?’
  • “대단한 여자네.”
  • 잔뜩 열 받은 문효준이 말했다.
  • 백은경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 “효준아, 은경아, 너희들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가는 게 어때?”
  • 심민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 “어머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 문효준이 차갑게 대꾸했다.
  • “은경이가 예민해서 침대가 바뀌면 잘 못 자요.”
  • “저는 여기 좋은데요?”
  • 백은경은 여전히 그에게 날을 세웠다.
  • “돌아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 가요. 저는 여기 있을래요.”
  • 문효준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 만약 그녀가 끝까지 가지 않겠다면 그도 여기 남을 수밖에 없었다.
  • 문효준 혼자 돌아간다면 노부인의 의심을 살 것이 뻔했다.
  • 하지만 윤시아에게 돌아가겠다고 이미 약속한 상황.
  •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백은경을 노려보았다.
  • 자기의 말을 따르라는 눈빛이었다.
  • 백은경은 못 본 척하고 다가가서 심민희의 팔짱을 꼈다.
  • “어머님, 저 이혼 법률 관련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요.”
  • “그래.”
  • 심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마침 네 시아버지는 출장 중이니 오늘 밤이 좋겠구나.”
  • “가요.”
  • 백은경이 보조개를 드러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심민희는 왜 아들이 백은경을 사랑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이렇게 이쁜 마누라를 두고… 멍청한 녀석!’
  • 문효준은 냉랭한 시선으로 백은경을 쏘아보았다.
  • 그렇게 백은경은 심민희의 방에서 두 시간이나 그녀와 담화를 나누었다.
  • 문효준은 수시로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 돌아가자고 했지만 전부 무시했다.
  • 심민희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수시로 문자를 확인하고 안색이 창백해진 백은경을 보자 대략 무슨 상황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 “어머님, 저 먼저 방으로 돌아갈게요.”
  • 백은경이 짐짓 하품을 하며 말했다.
  • “그래.”
  • 심민희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 “은경아,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네 가족이란다.”
  • 백은경은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 “네.”
  • 그녀는 뒤돌아서서 문효준이 있는 방으로 갔다.
  • 방 안에 들어서자 문효준이 달려들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소리쳤다.
  • “백은경, 허튼짓 그만해!”
  • “문효준 씨, 이거 놔요!”
  • 백은경은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했다.
  • “당신이 윤시아 씨 만나러 가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겠어요. 어차피 발은 당신에게 달렸으니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가세요. 하지만 나까지 연막으로 쓰려는 건 너무 염치없는 처사 아닌가요?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요!”
  • ‘내 마음은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야? 당신이 뭔데!’
  •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 문효준이 냉랭하게 말했다.
  • “난 당신 안 좋아할 거라고 3년 전에 분명하게 말했어.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나와의 결혼을 원했지.”
  • “네. 3년 전의 내가 너무 바보 같았어요. 3년이면 당신 같은 얼음도 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 백은경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문효준 씨, 10년 전….”
  • 그녀가 뭔가 얘기를 꺼내려는데 문효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 발신자를 확인한 문효준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나야, 시아야.”
  • 조금 전까지 차갑던 그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변했다.
  • “알았으니까 울지 마. 바로 갈게.”
  • 전화를 끊은 그는 강압적인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 “옷 입고 나가자!”
  • 백은경은 입술을 깨물며 거절했다.
  • “싫어요!”
  • 그녀는 혼자 쓸쓸한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 “백은경,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본가에 붙어 있으면 내가 이혼 못 할 것 같아?”
  • 문효준은 그녀의 턱을 움켜잡으며 협박했다.
  • “네 외삼촌도 생각해야지. 날 화나게 하면 내가 그 사람 편히 살게 할 것 같아?”
  • 백은경의 온몸이 경직되었다.
  • “어서 옷 입어.”
  • 문효준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 “차에서 기다릴게. 5분 내에 안 내려오면 네 외삼촌 장례 치를 준비나 해.”
  • 말을 마친 그는 밖으로 나갔다.
  • 백은경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벽에 힘없이 몸을 기댔다.
  • 그녀는 눈시울이 새빨개져서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 매정한 사람.
  • ‘대체품 주제에 난 왜 애정을 기대했던 걸까.’
  • 그녀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맑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 잠시 후, 그녀는 눈물을 닦고 외투를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문효준은 차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빨리 타라고 재촉했다.
  • 백은경은 다가가서 뒷좌석에 올랐다.
  • 예전의 그녀는 항상 조수석에 탔다.
  • 문효준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녀의 소리 없는 반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는 온순하고 말을 잘 듣던 그녀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