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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당장 이혼해

  • 유성은 전화를 끊은 뒤, 초인종을 눌렀다.
  • 백은경이 문을 열었다.
  • 금방 샤워를 마쳤지만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 “만둣국 사 왔어.”
  • 유성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같은 상처를 공유한 사람으로서 얼굴을 마주하기가 껄끄러웠다.
  • “고마워.”
  • 백은경은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 유성은 만둣국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 “뜨거울 때 먹어.”
  • “유나는 출근했어.”
  • 백은경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유나가 병원에 출근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해.”
  • 유성이 흠칫하며 대꾸했다.
  •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걔보다 실력 좋은 간호사는 많아.”
  • 백은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아니야, 대단한 거야. 그런 사고를 겪은 뒤에 쉽지 않았을 텐데.”
  • “넌 잘 지냈어?”
  • 유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 “잘 지냈지.”
  • 백은경은 식탁에 앉으며 담담히 대꾸했다.
  • 유성이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 백은경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 “유성 오빠, 집에서 담배 안 피우면 안 될까?”
  • “아, 미안해.”
  • 유성이 어색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 ‘너무 긴장했나?’
  • 백은경은 우아하게 만둣국을 먹었다.
  • “나 구해줘서 고마워.”
  • “앞으로 그렇게 늦은 시간에는 나다니지 마.”
  • 유성의 갈린 목소리에서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 “급한 일로 외출할 거면 혼자 나가지 말고 친구 불러서 같이 나가.”
  • “그래.”
  • 백은경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조은택이라는 남자한테 연락했어. 하지만 네가 여기 있다는 말은 안 했어. 네 의사를 확인하고 싶어서.”
  • 유성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 “그 사람 여기로 부를까?”
  • “아니야. 날도 밝았는데 내가 알아서 돌아갈게.”
  • 백은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 “그래.”
  •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백은경을 유심히 살폈다.
  • 사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 지금의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사생활을 간섭할까?
  • 그녀의 신상정보에는 그녀가 이미 결혼했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조은택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다.
  • ‘결혼 생활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니? 그래서 타락을 선택한 거야?’
  • 똑똑!
  •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 유성과 백은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유나가 벌써 왔나?”
  • 백은경이 중얼거렸다.
  • “걔 점심때 지나야 퇴근해.”
  • 유성은 이런 말을 하며 가서 문을 열었다.
  • 문밖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에 귀티가 줄줄 흐르는 남자에게서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풍겼다.
  • 유성은 이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 문효준.
  • 문씨 그룹의 대표이며 문씨 가문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문씨 어르신의 손자.
  • 그리고 백은경의 남편인 남자.
  • “유성 오빠, 누가 왔어?”
  • 백은경이 다가오며 물었다.
  • 하지만 문효준을 본 그녀는 살짝 굳은 표정을 지었다.
  • ‘빨리도 찾아왔네.’
  • 조은택에게 연락했으면 그가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 문효준은 차갑게 백은경을 쏘아보았다.
  • 핑크색 후드티에 검은색 추리닝 바지,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 귀엽고 청순한 모습이었다.
  • 분명 스물세 살의 나이인데 그녀는 아직도 십 대 청소년처럼 앳되고 사랑스러웠다.
  • 문효준은 그녀를 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 ‘바깥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밤새 낯선 남자 집에 있었어?’
  • “돌아가자.”
  • 그가 음침하게 입을 열었다.
  •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 백은경은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투로 차갑게 물었다.
  • “그냥 조 비서님 보냈어도 됐는데 왜 굳이 직접 찾아왔어요?”
  • ‘난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잖아.’
  • 그녀는 더 이상 그의 애정과 관심을 기대하지 않았다.
  • 문효준은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는 음침한 얼굴로 성큼성큼 백은경에게 다가갔다.
  • 놀란 백은경은 뒷걸음질 치다가 탁자에 허리를 부딪혔다.
  • “조심해!”
  • 유성이 걱정스럽게 소리쳤다.
  • 문효준은 그녀의 팔목을 잡아 품에 안으며 귓속말로 말했다.
  • “백은경, 형사 한 명 정도 보내는 건 나한테 일도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계속 여기서 나랑 싸울 거야?”
  • 백은경의 몸이 경직되었다.
  • 그는 또 협박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임을 너무 잘 알았다.
  • 그는 이 점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을 가지고 수시로 그녀를 협박했다.
  • “돌아가요.”
  • 백은경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 자신을 구해준 고마운 유성이 피해를 입게 할 수는 없었다.
  • 유나에게도 유성뿐이었다.
  • 그녀는 이 두 남매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 유성은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 “백은경, 돌아가기 싫으면….”
  • “아니에요, 돌아갈게요.”
  • 백은경은 더는 유성을 바라보지 않았다.
  • 어려서부터 예민하고 눈치 빠른 유성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잘 눈치챘다.
  • “집사람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후하게 보답하죠.”
  • 문효준이 차갑게 말했다.
  • “필요 없습니다.”
  • 유성은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 “그런 거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니까요.”
  • “흥. 유성 씨, 어릴 때 입양됐다면서요? 집에서 제대로 된 대우도 못 받았다고 들었는데 혹시 알아요? 돈이 생기면 다들 다른 눈으로 볼지? 그러니까 잔말 말고 받아요.”
  • 문효준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올리고 말했다.
  • “문효준 씨, 그만 해요.”
  • 분노한 백은경이 그를 말렸다.
  •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유성 오빠한테 그런 말을 해?’
  • 문효준은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남자를 위해 그에게 화를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그녀가 그럴수록 그는 짜증이 치밀었다.
  • 도대체 이 남자랑 무슨 사이이기에 이토록 편을 드는 걸까?
  • 백은경은 어이가 없었다. 그녀를 길바닥에 홀로 버려두고 떠난 사람이 그였다.
  •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 문효준의 표정도 음침하게 굳었다.
  • ‘감히 나한테 화를 내?’
  • 그는 다급히 뒤쫓아갔다.
  • 차에 도착한 문효준이 음침한 표정으로 물었다.
  • “백은경, 감히 다른 남자 때문에 나한테 화내는 거야?”
  • “누구 때문에 당신한테 화를 내는 아니라 유성 오빠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알기나 해요?”
  • 백은경이 눈시울을 붉히며 쏘아붙였다.
  • 화가 났다기보다 서럽고 불쌍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 “나 하마터면 몹쓸일을 당할 뻔했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
  • 백은경은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
  •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이야? 어떻게 야밤에 나 혼자 길바닥에 버리고 내연녀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해? 당신 내연녀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아?”
  • 당황한 문효준이 변명하듯 말했다.
  •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 “고의가 아니었다고?”
  • 백은경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내가 위험할 것 같다고 말했잖아. 나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떠난 건 당신이야. 내가 현장에서 죽었어도 당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겠지!”
  • “그런 게 아니야….”
  • 문효준은 할 말을 잃었다.
  • 불과 5분 사이에 상황이 발생할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 백은경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힌 뒤, 차갑게 말했다.
  • “문효준 씨, 당신은 한 번도 나를 아내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요.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죠.”
  • 문효준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 “문효준 씨, 나 사실 꽃게 싫어해요.”
  • 백은경이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 “그런데 왜 당신을 만나고 좋아하게 됐는지 알아요? 당신이 항상 게살 발라줬으니까.”
  • 문효준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그녀의 우는 모습만 보면 가슴이 아팠다.
  • 백은경은 차갑게 그의 손을 밀치며 다시 차갑게 소리쳤다.
  • “내 몸에 손대지 마! 윤시아 만졌던 손으로 나 만지지 말라고!”
  • 문효준은 굳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동작을 멈추었다.
  • “문효준 씨, 내가 이혼하기 싫어서 버티고 있는 거 같죠? 난 단지 할머니 상황이 안 좋아서 우리 일로 할머니 자극하기 싫었어요.”
  • 백은경이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 “먼저 이혼하고 때가 되면 할머니한테 말씀드릴게요. 내일 당장 이혼서류 작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