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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홀로 버려지다

  • “안 가요?”
  • 백은경이 차갑게 물었다.
  • “윤시아 씨가 기다린다면서요?”
  • 문효준은 그녀를 앞에 타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바로 시동을 걸었다.
  • 돌아가는 길, 그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차 안 분위기는 전에 없던 긴장감과 어색함이 감돌았다.
  • 문효준은 이 모든 게 백은경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 그녀가 예전처럼 고분고분했다면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 돌아가는 길에 문효준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 윤시아였다.
  • “뭐? 바로 갈게!”
  • 문효준은 갑자기 차를 세우며 백은경에게 말했다.
  • “내려. 이따가 조 비서 올 거야.”
  • 백은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 “내리라고.”
  • 문효준이 차갑게 명령했다.
  •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아요? 저녁 열한 시가 넘었어요. 여자인 저를 인적도 없는 길가에 홀로 버려두는 건가요?”
  • 백은경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 “조 비서 5분이면 도착해.”
  • 문효준이 차갑게 대꾸했다.
  • 백은경은 화가 치밀어서 얼굴까지 창백해졌다.
  • 그녀는 묵묵히 입술을 깨물고 차에서 내렸다.
  • “5분이면 도착하니까 여기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 문효준이 당부했지만 백은경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아무리 감정이 없는 사이라고 해도 안전을 고려했더라면 여자 혼자 길가에 버려두고 가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그는 한치 주저도 없었다.
  • 문효준은 고개를 숙인 그녀를 바라보자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갑갑했다.
  • 그런데 핸드폰이 또 울렸다.
  • 윤시아가 그를 원하고 있었다.
  • 그는 알량한 죄책감은 이내 떨쳐버리고 출발했다.
  • 백은경의 볼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5분 뒤.
  • 현장에 도착한 조은택은 한참을 찾았지만 백은경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어디 가셨지?’
  • 조은택은 바로 백은경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 불길한 예감이 든 그는 바로 문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만났어?”
  • 문효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 “집까지 데려다주고 혹시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아줌마한테….”
  • “대표님, 사모님이 사라졌습니다.”
  • 조은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사라졌다고?”
  • 문효준이 인상을 쓰며 다시 물었다.
  • “네.”
  • 조은택이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 “안 계셔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습니다.”
  • “사람을 불러서 찾아.”
  • 문효준이 음침하게 명령했다.
  • “무조건 찾아야 해!”
  • 이 시점에서 백은경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까?!
  • “알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조은택은 부하 직원에게 연락해서 주변을 수색했다.
  • 하지만 반경 10킬로미터 이내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 조은택은 바로 주변 CCTV를 조사했다.
  • 영상을 확인한 그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한 남자가 그녀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었다.
  • 조은택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문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자초지종을 들은 문효준은 다급히 말했다.
  • “지금 바로 갈게!”
  •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윤시아가 그의 옷깃을 잡으며 물었다.
  • “효준아, 무슨 일이야?”
  • “백은경한테 사고가 났어.”
  • 문효준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사고?”
  • 윤시아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 “그냥 이혼하기 싫어서 사고로 위장한 게 아닐까?”
  • “그런 거 아니야.”
  • 문효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 백은경은 단순한 여자였다. 이런 얕은수를 쓸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 “알았어. 빨리 갔다가 일찍 돌아와. 기다릴게.”
  • 윤시아가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 문효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밖으로 나갔다.
  • 그가 사라지자, 윤시아가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 ‘백은경, 대단한 방법을 썼네! 하지만 다 쓸데없는 짓이야. 효준이는 처음부터 내 남자였으니까.’
  • 문효준이 현장에 도착하자 조은택이 그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 “대표님, 현장에 떨어진 사모님 휴대폰입니다. 위에 피가 묻어 있어요.”
  • 문효준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 “찾아! 산 사람을 못 찾으면 시체라도 찾아!”
  • “네!”
  • 조은택은 고개를 끄덕인 뒤, 부하직원들을 끌고 다시 수색에 나섰다.
  • 문효준은 어둠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 ‘백은경, 무사해야 해!’
  • 한편.
  • “깜짝이야!”
  • 현관문을 연 유나는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안고 들어오는 유성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 “잔말 말고 비켜!”
  • 유성이 음침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 유나는 재빨리 자리를 비켰다.
  • 유성은 여자를 안아 소파에 눕혔다.
  • 유나가 가까이 다가오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백은경…?!”
  • “그래.”
  •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수건 좀 가져다줘.”
  • “알았어!”
  • 유나는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가서 수건을 적셔서 유성에게 건넸다.
  • “오빠, 어떻게 된 거야?”
  • “너 만나러 오는데 길에서 술 취한 놈이 여자한테 진상을 부리는 거야. 그래서 달려가서 놈을 쫓아버리고 보니 백은경이었어.”
  • 유성은 피 묻은 백은경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 “그럼 이 피는….”
  • 유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
  • “그 주정뱅이 피야. 은경이는 다치지 않았어.”
  • 유성이 담담하게 말했다.
  • 유나는 팔짱을 끼며 경계 어린 말투로 물었다.
  • “오빠,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 “기절 직전에 나한테 절대 병원은 안 간다고 애원했어.”
  • 유성이 말했다.
  • “왜?”
  • 유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 유성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얘 좀 부탁해. 난 간다.”
  • “오빠, 어디 가? 피투성이인 채로 나갔다가 신고당하면 어쩌려고?”
  • 유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 “내가 형사인데 누가 날 신고해?”
  • 유성이 차갑게 대꾸했다.
  • “서로 가서 백은경 가족 연락처 좀 알아봐야겠어.”
  • 유나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얘 가족 있어? 얘도 우리처럼 부모님이 안 계시잖아.”
  • 유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 “그래도 조사는 해봐야지.”
  • 기절 직전 백은경은 준이라는 남자의 이름만 불렀다.
  • 아마 이 준이라는 남자가 그녀의 가족이거나 남자친구일 거라 유성은 생각했다.
  • ‘그래.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남자친구가 생겨도 이상할 것 없지.’
  •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는 가슴이 갑갑했다.
  • 나가기 전, 유성은 유나에게 신신당부했다.
  • “백은경 깨면 가족이나 친한 사람 없는지 한번 물어봐. 그리고 가족에게 연락해서 데려가게 해. 혹시 은경이가 말하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다그치지 말고.”
  • 유나는 백은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녀가 수건으로 백은경의 얼굴을 닦아 주는데 백은경이 눈을 떴다.
  • “깼어?”
  • 유나가 반가운 말투로 물었다.
  • 백은경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 “유나?”
  • “어? 나 기억하고 있었어?”
  • 유나가 장난치듯 말했다.
  • “너 문씨 가문에 입양되고 우리 같은 평민은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지.”
  • 백은경은 멈칫하며 대꾸했다.
  • “난 문씨 가문에 입양된 적 없어.”
  • “어쨌든 무사히 깼으니 됐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 유나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 몇 년 만에 보는 백은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 “나 괜찮아.”
  • 백은경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여긴 어디야?”
  • “우리 집이야.”
  • 유나가 말했다.
  • “마침 우리 오빠가 지나가다가 널 구했다고 하더라고. 참, 오빠가 너 깨면 가족에게 전화하라고 했어. 혹시 걱정할 수도 있으니까.”
  • 백은경은 암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나 이제 가족 없어.”
  • 문효준과 이혼하게 되면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 유나는 멈칫하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그래. 우린 다 가족이 없지.”
  • “넌 그래도 유성 오빠가 있잖아.”
  • 백은경이 말했다.
  • 유나가 한숨을 쉬며 화제를 돌렸다.
  • “문씨 가문에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
  • ‘지금 전화하면 문효준이 또 난리를 치겠지!’
  • 그가 그녀를 밤중에 길가에 버렸다가 대형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을 노부인과 심민희가 알면 절대 집안에 혼란만 가져올 뿐이었다.
  • 그렇게 되면 문효준이 윤시아를 찾아갔다는 사실도 들통나게 될 것이다.
  • ‘그렇게 되면 문효준은 또 내 탓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