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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비상 연락처

  • “그럴 필요 없어. 할머니가 건강 상태가 별로 안 좋으셔. 아시면 또 걱정하시니까 안 알리는 게 좋을 거야.”
  • 백은경이 말했다.
  • “줄곧 너 혼자 살았어?”
  • 유나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 백은경이 말했다.
  • “그게 무슨 뜻이야?”
  • 유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백은경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 사실 문효준과 결혼하고 겉보기엔 달콤한 신혼 생활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사실 백은경은 홀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 “은경아, 넌 그래도 행복한 거야. 최소한 문씨 노부인이 널 많이 아껴주잖아.”
  • 유나가 부러운 말투로 말했다.
  • “나랑 오빠 봐봐.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둘을 같이 입양하려는 가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각자 다른 집에 입양됐잖아.”
  • 백은경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그랬구나.”
  • “내가 왜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 유나가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 “난 오늘 당직이라서 병원에 들어가 봐야 해. 너 몸 잘 챙기고 푹 쉬고 있어.”
  • “그래. 조금만 더 쉬다가 나갈게.”
  • 백은경은 유나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들이 만나봐야 좋을 일이 없었다.
  • 그들은 모두 각자의 트라우마를 앓고 있었다.
  •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그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 세상에는 절대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있었다.
  • 그래서 그들은 암묵적으로 서로를 피했다.
  • 만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 “백은경!”
  • 유나가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 백은경은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유나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투를 바꿔 부드럽게 말했다.
  • “여기가 네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내 방에 깨끗한 옷이 있으니까 씻고 갈아입어. 주방에 죽 끓여놨으니까 데워서 먹고.”
  • 말을 마친 유나는 옷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 외투를 챙겨 나온 유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 “유나야, 너 병원체 출근해?”
  • 백은경이 물었다.
  • “응. 간호사로 일해.”
  • 유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 “백은경, 나 이제 앞만 보고 살기로 했어. 그러니까 괜찮아. 말하지 못할 고충이 있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있어.”
  • 말을 마친 그녀는 문을 나섰다.
  • 백은경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그때 사고에서 그녀와 유나가 입은 마음의 상처가 가장 깊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 그들은 부모의 비참한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 백은경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행색을 바라보고 눈물을 닦았다.
  • 그녀는 유나의 방으로 가서 깨끗한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 샤워를 마친 그녀는 거울에 자신의 배를 비추어 보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아가야, 겁먹지 마. 엄마가 어떻게든 널 지킬 거야!”
  • 문효준 때문에 이런 사고를 겪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눈물이 나왔다.
  • ‘그 사람은 내가 죽든 살든 개의치 않겠지. 지금쯤 병원에서 윤시아를 품에 안고 있겠지?’
  • 한편.
  • 문효준은 자신의 마이바흐에 기댄 채,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 바닥에 그가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 날이 밝고 있었지만 백은경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 그는 그녀의 핸드폰을 꽉 쥐며 불안에 떨었다.
  • ‘죽었을까? 이대로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리는 걸까?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 “대표님!”
  • 이때 조은택이 그를 향해 뛰어왔다.
  • “사모님을 데려간 남자를 찾았습니다.”
  • “데려와.”
  • 문효준의 목소리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 두 경호원이 술에 취한 남자를 끌고 왔다.
  • 남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경호원에게 이끌려 문효준의 앞까지 왔다.
  • “그 여자한테 무슨 짓 했어?”
  • 문효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 술이 반쯤 깬 남자는 자신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상대를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변명했다.
  •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 “저놈 손목 잘라 버려.”
  • 문효준이 눈도 깜빡하지 않고 명령했다.
  • 옆에 있던 경호원이 비수를 꺼내 들었다.
  •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남자는 문효준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
  •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모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말해.”
  • 문효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 “저는 얼마 전에 이혼한 사람입니다. 기분이 울적해서 술 한잔했는데 길가에 예쁜 여자가 서 있으니까 술김에 혹해서 다가갔어요. 하지만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끌고 뒷골목에 들어갔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달려와서 여자를 데려갔습니다.”
  • 남자가 비굴하게 변명했다.
  • “어느 손으로 그 여자를 만졌어?”
  • 문효준이 차갑게 물었다.
  • 남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 “대답할 용기도 없으면 두 손 모두 잘라버려.”
  • 문효준은 우아하게 턱짓하며 차갑게 명령했다.
  • “아… 아닙니다! 이 손이요!”
  • 남자가 왼손을 치켜들었다.
  • 문효준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 “감히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해? 너 두 손 다 잘라버려.”
  • 겁에 질린 남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 ‘그럴 거면서 왜 물어봐?’
  • “악!”
  • 남자가 한눈을 파는 사이, 경호원이 비수로 남자의 한쪽 손을 잘랐다.
  • 남자의 처참한 비명이 새벽 거리에 울려 퍼졌다.
  • 다른 경호원이 남자의 입을 틀어막더니 나머지 한쪽 손도 잘랐다.
  • “사람 없는 곳에 데려가서 조용히 처리해.”
  • 문효준이 차갑게 지시를 내렸다.
  • “네!”
  • 두 경호원은 남자를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현장을 청소했다.
  • “뒷골목 CCTV를 조사해서 백은경을 데려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
  • 문효준이 명령했다.
  • 조은택이 전화를 꺼내 드는데 어딘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 “여보세요?”
  • 전화를 받은 조은택이 물었다.
  • “누구시죠?”
  • “혹시 백은경 씨 가족분 되십니까?”
  • 유성이 차갑게 물었다.
  • “백은경 씨를 그쪽이 데리고 있나요?”
  • 조은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문효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핸드폰을 빼앗았다.
  • “백은경 어디 있어?”
  • 유성은 흠칫하며 물었다.
  • “그쪽은 백은경 씨랑 어떻게 아는 사이죠?”
  • 문효준이 음침하게 대꾸했다.
  • “그 사람 오빠야.”
  • “백은경 씨 가족은 사고로 다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유성이 못 믿겠다는 듯 추궁했다.
  • “그쪽은 도대체 누구시죠?”
  • “어떻게 조은택 전화번호를 알아냈어?”
  • 문효준이 불쾌한 말투로 물었다.
  • ‘어떻게 조 비서한테 연락이 간 거지? 내가 그 여자랑 가장 가까운 사람인데!’
  • “저는 백은경 씨가 최근에 입력한 비상 연락처에 연락한 겁니다.”
  • 유성도 지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 “그러니까 조은택 씨 좀 바꿔주시겠습니까?”
  • ‘비상 연락처가 내 번호가 아니라 조 비서 번호였다고?’
  • 문효준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
  • 그는 핸드폰을 조은택에게 돌려주며 차갑게 말했다.
  • “어디 있는지 알아내.”
  • “네.”
  • 핸드폰을 돌려받은 조은택은 백은경의 소재를 물었다.
  • “백은경 씨는 지금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주소는 백은경 씨 본인에게 다시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말을 마친 유성은 전화를 끊었다.
  • 조은택은 어색한 표정으로 문효준의 눈치를 살폈다.
  • “대표님, 그쪽에서 사모님께 확인하고 주소를 알려준다는데요?”
  • “전화를 건 자가 누군지 당장 조사해.”
  • 문효준이 차가운 말투로 지시했다.
  • “해 뜨기 전에 그놈 신상정보를 알아야겠어.”
  • “네.”
  • 조은택은 바로 부하에게 조사를 명했다.
  • 문효준은 담배를 피우며 불쾌한 감정을 달랬다.
  • 백은경이 무사하다는 건 확인이 됐는데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 수 없었다.
  • ‘무사한데 왜 나한테 바로 연락을 안 했지? 이런 사고가 있었으면 바로 연락해야 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