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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복잡한 눈빛

  • 문효준은 부정하지 않았다.
  • 백은경은 화가 치밀었지만 여리고 부드러운 이미지 때문에 화를 내도 전혀 위협감이 없었다.
  • “문효준 씨, 잘 들어요.”
  • 백은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빨갛게 물든 하얀 볼, 나시 끈이 흘러내려 다 드러난 어깨, 바깥으로 드러난 긴 다리까지 보고만 있어도 숨 막히게 요염했다.
  • 문효준의 눈빛이 혼탁하게 변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 “방금 날 뭐라고 불렀지?”
  • “문효준 씨요.”
  • 화가 치민 백은경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 하지만 문효준의 눈에는 그냥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저 그렇게 품위 안 지키는 사람 아니에요. 이혼에 동의했고 약속을 번복할 생각도 없고요. 오늘은 그냥 할머니 상태가 어떤지 보러 왔을 뿐이에요. 갑자기 할머니를 자극할 생각도 없었고 고자질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어요!”
  • 백은경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 그러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 ‘어떻게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
  • 진심으로 화난 그녀의 모습에 문효준은 그제야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 “내가 오해했네.”
  • 백은경은 차갑게 코웃음 쳤다.
  • 문효준은 다가가서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 “이따가 게살 발라줄게.”
  • 백은경은 그 말이 나오자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 하지만 문효준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 “오늘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었어요.”
  • 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임신 아니라며?”
  • 문효준이 냉랭하게 물었다.
  • “임신은 아닌데 소화 기관이 많이 약해졌다고 성질이 찬 음식은 적게 먹으라고 했어요.”
  • 그녀가 말했다.
  • ‘그런 거였군.’
  • “당신은 참 까다로워.”
  • 문효준이 말했다.
  • 백은경은 입술을 깨물며 대꾸했다.
  • “이게 다 당신이 저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계속 비웃으면 저 이혼 안 해요. 어차피 당신처럼 와이프한테 잘하는 남자는 찾기 힘드니까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후회했다.
  • ‘이러면 화낼 텐데.’
  •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문효준은 화내는 대신 담담히 말했다.
  • “이혼해도 당신한테 줄 건 하나도 빠짐없이 줄 거야. 나랑 이혼해도 당신은 지금처럼 생활할 수 있어. 당신은 나중에도 지금처럼 온실의 화초처럼 생활해. 아무도 당신 건드릴 사람 없을 테니까.”
  • 백은경은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 ‘지금도 괴롭힘당하고 있는데 저게 무슨 허튼소리야!’
  • “효준아, 은경이 깼어?”
  • 이때 심민희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 “저녁 준비 다 끝났으니까 내려와.”
  • “네, 지금 내려갈게요.”
  • 문효준이 말했다.
  • “빨리 내려와. 임호도 왔어.”
  • 심민희가 재촉했다.
  • “알았어요.”
  • 문효준이 심드렁하게 대꾸했고 심민희는 그제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일어나.”
  • 문효준은 백은경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 백은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아주버님이 왜 갑자기 오셨을까요?”
  • 임호는 문효준의 사촌 형이었다.
  • 임호의 모친은 심민희의 언니 심윤이었다.
  • 자매라고 하지만 심윤은 심민희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 심윤은 부드럽고 온화한 이미지가 강했다.
  •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 문효준이 냉랭하게 물었다.
  • 백은경은 어이가 없었다.
  • 문효준은 항상 이상한 곳에서 갑자기 화를 냈다.
  • 백은경은 그와 같이 생활하는 것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 “옷 좀 많이 챙겨입어.”
  • 문효준이 담담히 귀띔했다.
  • “오늘은 손님도 있잖아.”
  • “손님이요?”
  • 백은경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 문효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꾸했다.
  • “임호 형 말이야.”
  • 그는 백은경을 바라보는 임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음흉하지는 않지만 항상 그녀의 관심을 갈망하는 느낌이었다.
  • 하지만 임호는 그의 사촌 형이었고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그에게 뭐라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 백은경은 윤시아 때문에 그가 갑자기 기분이 상한 줄 알고 더 얘기하지 않았다.
  • 침대에서 내려온 백은경은 옷장에서 핑크색 브이넥 가디건과 흰색 긴바지를 꺼내 입었다.
  • 예쁜 쇄골 라인과 하얀 피부가 강조되는 옷차림이었다.
  • 그녀는 머리를 위로 깔끔하게 묶어 하얗고 긴 목을 드러냈다.
  • 날씬한 목라인과 아찔한 쇄골 라인이 드러나자 더 요염하고 매혹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 문효준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 그는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다시 풀었다.
  • “뭐해요?”
  • 백은경이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 “안 예뻐.”
  • 문효준이 차갑게 말했다.
  • “예쁘면 어떻고 안 예쁘면 어때요? 머리를 풀은 채로 밥 먹기 불편하다고요.”
  • 백은경이 말을 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 “머리 끈 이리 주세요.”
  • “싫어.”
  • 문효준은 머리 끈을 높이 들었다.
  • 백은경은 발꿈치를 들며 폴짝폴짝 뛰었다.
  • 168의 신장을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190의 장신 앞에서는 난쟁이와 다름없었다.
  • 아무리 발꿈치를 들어도 손이 닿지 않았다.
  • 그녀는 몸 전체를 문효준에게 기대고 한 손을 남자의 가슴에 올린 채, 힘껏 손을 뻗었다.
  • 그녀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 결혼한 그날부터 문효준은 그녀의 몸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 결혼했으면 부부였고 부부가 하는 일들을 그들도 빠짐없이 했다.
  • 그래서 백은경은 그와의 스킨십이 이미 생활화 되어 있었다.
  • 문효준은 여자의 가는 허리를 확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 “참 고집이 센 여자야. 손이 안 닿으면 그만 포기하지? 아니면 예전처럼 애원하든가.”
  • 예전의 백은경은 원하는 게 있으면 앳된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
  • 예전의 그녀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준이 씨, 말 잘 들을 테니까 머리 끈 주세요.”
  • 하지만 지금의 백은경은 그러지 않았다.
  • 그녀의 이런 반항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 백은경은 그를 밀치더니 눈시울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 “우리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 문효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 “머리 끈 이리 주세요.”
  • 그가 원하던 말이었지만 눈빛과 말투는 예전과 전혀 달랐다.
  • “싫어!”
  • 문효준은 음침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창가에 다가가서 머리 끈을 멀리 던져버렸다.
  • “당신!”
  • 백은경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 문효준은 잔뜩 분노에 찬 표정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 백은경은 어이가 없었다.
  • 그들은 자주 본가에 방문하지는 않았기에 이쪽에 그녀의 일상 용품이 많지 않았다.
  • 머리 끈도 그가 던져버린 것이 유일했다.
  • ‘미친놈 아니야?’
  • 백은경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은경아, 어서 와.”
  • 심민희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 백은경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 “제수씨.”
  • 임호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불렀다.
  • 백은경도 달콤한 미소로 답했다.
  • “아주버님.”
  • 문효준은 음침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임호는 입술을 깨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백은경은 문효준과 심민희 사이에 앉았다.
  • 심민희는 바로 커다란 꽃게 하나를 집어 백은경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 “너 소화가 잘 안된다면서? 하나만 먹어.”
  • “고마워요, 어머님.”
  • 백은경이 말했다.
  • ‘하나만 먹으라고 해서 다행이다!’
  • 하지만 냄새가 풍기자 백은경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 하지만 티를 내기 싫어서 이 악물고 참았다.
  • 그녀가 꽃게를 향해 손을 뻗는데 문효준의 손이 더 빨랐다.
  • 백은경은 멀뚱멀뚱 멀어지는 꽃게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
  • ‘냄새가 싫을 뿐이지 안 먹는다는 얘기는 안 했는데…. 한 마리는 먹을 수 있는데….’
  • “다른 반찬 먹어. 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야지.”
  • 문효준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 백은경은 볼을 잔뜩 부풀리고 젓가락을 들었다.
  • 그러는 그녀를 바라보는 임호의 눈빛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 식사가 끝난 뒤, 문효준과 임호는 서재로 가고 백은경은 홀로 정원에 나왔다.
  • 본가에서는 설이라는 큰 사모예드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 설이는 백은경을 무척 따랐다.
  • 백은경은 매번 본가에 오면 설이와 한참 놀아주고는 했다.
  • “설아, 앞으로 너 보러 자주 못 올 것 같아. 그래도 내 생각할 거지?”
  • 백은경이 설이를 안으며 중얼거렸다.
  • “왜 자주 못 온다는 거예요?”
  • 등 뒤에서 임호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렸다.
  • “효준이랑 둘이 무슨 일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