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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네 취향은 눈 뜨고 봐줄 수 없어

  • 별장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 민시혁은 책상 위에 놓인 약들을 훑어보더니 눈에 냉기가 더해졌다.
  • “민 사모님 나를 위한 건데 내가 잘못 탓했네.”
  • 바보가 아닌 소서영도 민시혁의 말과 눈빛에서 드러난 조롱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 남자는 담담하게 옆에 있는 집사에게 손짓을 했다.
  • 집사는 다급하게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약병을 거둬갔다.
  • 소서영은 약간 찔리는 듯 말했다.
  • “집사에게 가져가라고 하는 건… 먹고 싶지 않은 거예요?”
  • 그녀는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느껴졌다.
  • 민시혁은 웃는 둥 마는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먼저 밥 먹어.”
  •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는데 소서영은 주변의 공기마저 차가워 지는 것 같았다.
  • 보아하니 그가 정말 화난 것 같다.
  • 소서영은 긴장한 채 왼 손으로 오른손 손가락을 잡고 있다.
  • 막 결혼한 다음날 바로 약을 가져다 주는게 안 좋은 걸까?
  • 혹시 그녀가 결혼하자마자 그에게 약을 사줘서 그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 귓가에 당이함의 말이 떠올렸다.
  • “장애인들은 마음이 매우 약해.”
  • 그녀는 속으로 당이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계집애, 장애인의 마음이 약한 것을 알면서 왜 하필이면 이때 그녀에게 약을 가져다 주는 거야!
  • 하지만 이걸 생각하지 못한 그녀도 잘못이 있었다.
  • “밥 먹어.”
  • 남자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내뱉았다.
  • 소서영은 다급하게 젓가락을 들고 얌전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 밥 먹는 내내 소서영은 아주 긴장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 밥을 먹고 난 뒤 집사가 그녀 곁으로 걸어와 말했다.
  • “사모님, 어르신께서 방금 연락이 오셨는데 저녁에 회장님과 함께 와서 식사하시라고 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기사가 데리러 가실 테니 다른 일정 잡지 마세요.”
  • “알았어요!”
  • 소서영은 예의 바르게 웃었다.
  • “저녁에 원래 다른 일정 없어요!”
  •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는 그녀의 모습은 진실하고 귀여워 보이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는 전혀 다른 꾀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 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을 들고 민시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 “나 갈게요!”
  • 소녀의 모습이 완전히 시선에서 사라지자 집사는 그제서야 깍듯하게 민시혁 뒤로 자리를 옮겼다.
  • “약은 이미 성분 검사를 하러 보냈으니 이내 결과가 있을 겁니다.”
  • 말을 마친 그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보탰다.
  • “제가 보기에 사모님이 꿍꿍이가 많은 사람 같이 않습니다.”
  • 민시혁은 담담하게 그녀가 떠난 방향을 힐끗 보며 말했다.
  • “그녀와 함께 밥을 먹자고 한 의사 조사해봐.”
  • 집사는 입을 오므리고 귀띔했다.
  • “기사 말에 의하면 그 약은 사모님 친구가 가져온 거라고 했어요. 제 생각에는 사모님 친구가 더 의심…”
  •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민시혁 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입을 다물었다.
  • 남자는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
  • “내가 내 와이프와 밥을 먹으려고 한 사람 조사한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 “없… 없습니다!”
  • ……
  • 수업이 끝나고 소서영이 학교에서 나오자 기사가 대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교문 앞 멀지 않은 곳에 눈에 확 띄는 롤스로이스 한대가 세워져 있다.
  • 소서영은 속이 덜컥 내려앉았다.
  • 그녀는 나는 듯 빠르게 기사 옆으로 달려갔다.
  • “빨리 가요!”
  • 그녀가 럭셔리 카를 타는 것이 학우들 눈에 띈다면 온갖 다른 버전의 소문을 만들어 낼 것이다!
  • 그러나 뭐든 걱정할 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이다.
  • 차에 타는 순간 그녀는 창 밖에 있는 같은 반 동학 유미미의 경악한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 망했다…
  • 소서영은 순간 속이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 유미미는 학교의 소식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가 아는 일이라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교에 소문이 퍼졌다.
  • “앉아.”
  • 소서영이 한창 소문을 응대할 생각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등 뒤에서 낮고 무거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 눈을 가린 남자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그녀 등 뒤 좌석에 앉아있다.
  •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 “당신 어떻게 왔어요?”
  • 기사가 그녀를 태우고 민 할아버지와 식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 “가는 길이길래.”
  • 남자는 가죽 시트에 기대어 담담하게 말했다.
  • 보아하니 그녀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 점심에 있은 일이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다…
  • 소서영은 답답한 듯 창 밖을 바라봤다.
  • 차가 한참 달리고 소서영은 갑자기 어딘가 이상했다.
  • 이 차… 민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건… 집으로 가는 거잖아?
  •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 “할아버지한테 가는 거 아니에요?”
  • 그녀 옆에 앉아있는 남자가 귀찮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렇게 입고 가려고?”
  • 소서영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물이 빠진 청바지와 “우리 요정들은 양심 따위 없어” 라는 검은 글씨가 적힌 흰 티를 입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아…
  • 확실히 좀 어른을 뵈러 갈 때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 “당신 어떻게 내가 뭘 입었는지 알아요?”
  • 그는 장님이잖아?
  • 남자는 냉소를 지었다. “
  • “네 취향은 감히 눈 뜨고 봐줄 수 없거든.”
  • 소서영: “…”
  • 아무리 성격이 좋은 그녀라 해도 연속으로 그에게 디스를 당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 소서영은 그를 흘겼다.
  • 그가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또 몇 번이나 흘겼다.
  • 감정을 표출하고난 그녀는 계속해서 차창 밖을 바라봤다.
  • “나더러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할 거면 당신은 집에서 기다리면 되지 뭐 하러 따라왔어요?”
  •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밖에 나오면 불편한 거 아냐?
  • 민시혁은 냉소를 짓고 담담하게 기사에게 입을 열었다.
  • “주 기사.”
  • 이내 차량 중간의 가림막이 내려오며 차 안은 두개의 막힌 공간이 되었다.
  • 민시혁은 우아하게 서류 하나를 소서영에게 건넸다.
  • “봐봐.”
  • 소서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열어보았다.
  • 한 부의 검사 보고서였다.
  • 검사를 보낸 물건은 라벨이 없는 약 몇 병이었다.
  • 라벨이 없는 약?
  • 점심에 당이함이 준 그것?
  • 그녀는 그가 자신이 준 약을 검사하러 보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 하지만 이내 이렇게 하는 것도 틀린 건 없는 것 같았다.
  • 어쨌든 몸이 약하니 아무 약이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 만약 부작용이라도 있으면 큰 일이다.
  • 돈 많은 사람들은 역시나 주도면밀하다!
  •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마지막 감정 결과로 옮겼다.
  • “엇—“
  • 감정 결과에 적힌 글씨는 소서영을 멍 하게 만들었다.
  • “감정 결과 남성 생식계통의 병을 치료하는 약물로 발기부전, 조루 등 문제를 해결한다.”
  • 소서영: “…”
  • 이게 무슨 상황이야?
  • 그녀는 손이 떨려 “탁” 하고 서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는 위험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 “보아하니 내가 그 방면에서 안되는 남자라고 생각하나 봐?”
  • “아니에요… 아녜요… 나…”
  • 소서영은 순간 당황해서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 당이함이 그녀에게 약을 줄 때는 분명 그의 눈을 치료하는 것이라 했다!
  • 그녀와 사이가 그렇게 좋은 당이함이 그녀를 해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이 약이 이런 용도일 줄 알았으면 죽어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눈을 가린 남자는 곧장 팔을 뻗어 그녀를 들어 올려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
  • 남자의 몸에서는 위험하면서도 섹시한 숨결이 느껴졌다.
  • 소서영은 실없이 얼굴이 빨개졌다.
  • “나…”
  • “보아하니 자기 어제 신혼 첫날밤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나 봐.”
  • 큰 손이 소서영의 턱을 잡고 남자가 얇은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 “결혼한 다음날 직접 병원에 가서 이런 걸 준비해 주다니, 정말 심혈을 기울였네.”
  • 눈이 가려져 있어 그를 더욱 섹시해 보이게 했다.
  • 그에게 턱이 잡힌 소서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피하고 있다.
  • “나…이런 약인 줄 몰랐어요!”
  • “난 약이 치료…”
  • “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