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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네겐 잘못이 없어

  • 강한 힘으로 잦은 빈도수로 소서영을 때리고 있는 집사가 분명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보아낼 수 있었다.
  • 민시혁의 말은 집사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 잠시 뒤 얌전하게 회초리를 내려놓은 집사가 말했다.
  • “전 어르신의 명령을 따릅니다.”
  • 황루루가 눈을 흘겼다.
  • “아내의 지조를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 잘못을 묻고 있는데 감히 에미애비도 없는 네가 감히 말을 얹어?”
  • 민 씨 집안에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한마디도 내뱉지 않던 민시혁이 갑자기 의견을 표하니 황루루는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제 아내를 때리는 일이니 제가 나서야지요.”
  • 민시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
  • 이 집안에서 민시혁의 지위는 과연 그가 말한 것과 같았다. 지위도 없고 존엄도 없었으며 아무도 그의 말을 인정해 주려 하지 않았다.
  • “병신에게 시집을 가고서도 신분 상승을 하려는 망상이라도 했나 보지?”
  • 콧방귀를 뀐 황루루가 고개를 돌려 민 어르신을 보며 말했다.
  • “아버님, 소서영 이 계집애는 매를 들지 않고는 버릇을 고치지 못할 거예요.”
  • “하지만 이미 우리 집안 사람이 된 아이이니 저희도 적당히 소서영이 잘못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매질을 그만 두는 게 어때요?”
  • 표면 상으로는 소서영에게 기회를 주는 듯하였으나 그녀는 소서영의 고집스런 성격으론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하고 이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
  • 그제서야 소서영을 쳐다본 민 어르신이 물었다.
  • “잘못을 인정하느냐?”
  • “전 잘못하지 않았어요.”
  • 허리를 꼿꼿이 세운 소서영이 말했다.
  •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제가 왜 잘못을 인정해야 하나요.”
  • 민 어르신이 짜증스레 손을 휘휘 저었다.
  • “짝--!”
  • 또 다시 집사가 회초리를 들었다.
  • “잘못했느냐?”
  • “잘못하지 않았어요!”
  • “짝--!”
  • “이래도 잘못하지 않았느냐?”
  • “전 잘못하지 않았어요!”
  • “짝--!”
  • 집사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회초리를 때렸다--
  •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은 소서영은 아픈 나머지 허리를 펼 수조차 없었으나 여전히 이를 악물고 회초리를 받아내고 있었다.
  • 하지만 회초리가 내려앉는 소리만 들려올 뿐 그녀에게 회초리가 닿지는 않았다.
  • “시혁아!”
  • 등 뒤에서 우뢰와도 같은 민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얼른 고개를 돌린 소서영은 그제서야 언제 휠체어에서 내려왔는지도 모를 민시혁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그녀 대신 회초리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었다.
  • 순백색의 셔츠위에 그의 피가 배어 들었고 잘생긴 얼굴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 “누가 시혁 씨를 때리라고 했어요!?”
  • 두 주먹을 쥐고 몸을 일으킨 소서영이 집사를 향해 악을 질렀다.
  • “눈이 멀었어요? 내가 아닌데 왜 회초리를 때려요! 아픈 사람이란 걸 알고 있잖아요!”
  • 집사는 민시혁이 달려와 소서영 대신 회초리를 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소서영이 민시혁을 위해 그에게 소리를 지를 줄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 분명 아프게 회초리를 내렸을 때도 한마디 하지 않던 소서영이었다.
  • 하지만 민시혁이 회초리를 한 대 맞자마자 집사를 향해 고래고래 악을 지르고 있었다.
  • “난 괜찮아.”
  • 약한 힘으로 고개를 들어 소서영을 쳐다보며 민시혁이 말했다.
  • “그냥…조금 어지러울 뿐이야.”
  • “얼른 병원으로 데려가!”
  • 손자가 맞은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민 어르신은 마음이 급해져 불호령을 내리며 집사를 노려보았다.
  • “너는 스스로 알아서 네게 벌을 내려라!”
  • 회초리를 들던 집사는 하는 수없이 재수가 없다 생각하며 물러났다.
  • 얼마 뒤 본가의 시종들이 민시혁을 병원에 데리고 가려 몰려왔다.
  • “그에게 손 대지 말아요!”
  • 소리를 치며 시종들을 물린 소서영이 혼자서 민시혁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
  • “제 남편이니 제가 돌볼 거예요!”
  • 말을 마친 그녀가 민시혁의 휠체어를 밀고 제당을 나섰다.
  • 제당 중앙에서 민시혁의 휠체어를 밀고 제당을 나서는 소서영의 뒷모습과 그녀의 등에 난 몇 줄기의 상처를 보고 있는 민 어르신의 눈빛에 약간의 기쁨과 위안이 스쳤다.
  • “이게 다 무슨 일인 게냐.”
  • 민 씨 집안에서 가장 총애를 받지 못하는 민시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쨌든 민 씨 집안의 사람이라는 걸 황루루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약간은 민망한 미소를 지은 황루루가 말했다.
  • “시혁이가 소서영에게 마음이 깊은가 봐요. 그 여자를 위해 회초리를 맞아 주다니…”
  • “됐다, 너도 이제 징징대지 말거라.”
  • 민 어르신이 황루루를 흘겨보았다.
  • “소서영에게도 매를 들었으니 이 일은 이정도로 마무리 짓고 앞으로 아무도 다시 꺼내지 말거라!”
  • 말을 마친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민규한을 쳐다보았다.
  • “왜 괜히 소서영의 학교에는 찾아간 것이냐?”
  • 한 켠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던 민규한은 민 어르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 “전… 전…”
  •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말거라. 오늘 일은 네 잘못이 하나도 없느냐?”
  • 민규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앞으로 내가 모르는 곳에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 거라. 또 그랬다간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니!”
  • ***
  • 병원.
  • 간호사가 민시혁에게 약을 발라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서영은 시름을 놓았다.
  • “이제 아프지 않겠죠?”
  •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진통효과가 아주 뛰어난 약이에요.”
  • 다른 간호사가 소서영의 등 뒤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 “사모님, 사모님 등 뒤의 상처도 함께 치료해 드릴까요?”
  • 그녀의 상처는 남편의 상처보다 더욱 심해 보였다.
  • 간호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소서영은 아픔이 느껴졌다.
  • 등 뒤가 마치 불에 타는 듯이 아려왔다.
  • 침대에 엎드린 그녀의 등 뒤로 간호사가 조심스레 그녀의 옷을 가위로 잘라내고 드러난 상처를 조심스레 소독해 주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식은 땀이 잔뜩 난 그녀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옆에 있는 침대에서 소서영의 모습을 지켜본 민시혁의 가슴이 아파왔다.
  • “언제면 상처가 다 나을 수 있을까요?”
  •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거예요.”
  • “몸이 약해 보이시는데 이토록 고통을 잘 참으시다니. 보통의 여자였다면 분명 벌써 쓰러지고도 남았을 거예요. 사모님께서는 정말 오래 버티신 거예요.”
  • 민시혁이 가볍게 탄식을 내뱉었다.
  • “그러게요.”
  • 그녀는 정말 이상한 여자였다.
  • 할아버지의 태도는 사실 아주 분명했다. 그녀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만 한다면 그냥 지나갈 일이었다.
  •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견딜지 언정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려 하지 않았다.
  • 십여 년 동안 병 든 척을 하고 있던 민시혁은 소서영의 이런 고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하지만 그녀의 행동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분명했다.
  • 약을 바른 뒤 더 이상 다른 처치가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민시혁이 주 기사를 시켜 입원 수속을 밟게 했다.
  • 민시혁은 등에 심한 상처를 입은 소서영을 집까지 데려가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 “난 잘못이 없어요.”
  • 병실에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소서영은 여전히 꿈 속에서 아까처럼 고집스럽게 잘못이 없다 외치고 있었다.
  • 이런 그녀의 모습은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민시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그녀의 침대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 “넌 잘못이 없어.”
  • 하지만 네 남편은 아직 진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어.
  • 그는 품에 여자의 작은 몸을 안고 묵묵히 눈을 감았다.
  • 열 살 때 있었던 화재에서 그의 누나가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 그는 꼭 아주 연약한 척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그래야 서서히 세력을 길러 부모님을 위해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 때문에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줄곧 차갑고 연약한 척 잘 연기해 오고 있었다.
  • 오랫동안 정체를 숨겨 오면서 오늘은 처음으로 그가 연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든 날이었다—소서영이 맞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처음으로 계속 연기를 하고 싶지 않고 참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 “잘못하지 않았어요…”
  • 품 속에 안긴 여자가 또 다시 몸을 떨었다.
  • “잘못했다 인정할 필요 없어.”
  • 민시혁이 크게 숨을 들이 쉬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다.
  •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게.”
  • “오늘 널 괴롭힌 모든 사람들은… 내가 하나하나 모두 무릎을 꿇고 네게 사과를 하게 만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