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4화 늦겠어요

  • 남자의 목소리에는 뼈를 에이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졌고 다이닝 룸의 공기는 마치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장 이모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 “제… 제가 사모님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 민시혁이라는 사람은 평소에는 다정하고 화가 없어 보이지만 그가 화를 내면 감당할 사람이 없었다.
  • “하지만 회장님! 저는 절대 악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사모님이 직접 아침을 하시는 게 힘들어 보여서…”
  • 민시혁은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들어 장 이모를 바라봤다.
  •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신혼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을 망쳐버린 거야?”
  • 거실은 한참 적막이 감돌았다.
  • 민시혁의 말은 장 이모와 이 아주머니를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소서영도 눈이 휘둥그래지게 만들었다.
  • 민시혁이… 그녀를 위해 말 해주는 거야?
  • 장 이모는 놀라서 떨며 말했다.
  • “망, 망치지 않았어요…”
  • “사모님이 준비하신 아침밥은 버리지 않고 저… 저와 이 아주머니가 먹었어요.”
  • 민시혁 입가의 웃음이 더욱 차가워졌다.
  • “보아하니 자네가 나보다 더 이 곳 주인 같군.”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 아주머니도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 장 이모는 다급하게 소서영 발치로 기어가 빌었다.
  • “사모님,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 “저는 정말 처음 오신 사모님께서 저희 도우미들의 잘 돌봐 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하실까 봐 음식을 하지 못하게 한 거예요…”
  • 장 이모의 나이면 소서영의 엄마 나이와도 비슷했다.
  • 그녀가 이렇게 비는데 소서영이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 그녀는 결국 입술을 오므리며 뻣뻣하게 말을 했다.
  • “여… 여보, 장 이모도 나를 위해서…”
  • “내가 직접 만든 걸 먹고 싶으면 내가 다시 가서…”
  • 그녀가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켜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 민시혁 곁은 지나는 순간 남자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그녀를 품 안에 끌어들였다.
  • 그의 몸에서 민트향처럼 독특한 남성적인 기운이 전해지자 소서영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 올랐다.
  • 민시혁의 손이 그녀의 가는 허리를 잡고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 “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
  • 소서영은 더욱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 “여보…라고 했어요.”
  • “아침에 여보에게 뭘 준비 했었어?”
  • “만두랑 죽… 그리고 제가 직접 만든 채 썬 감자 반찬, 그리고 오이…”
  • 그녀의 빨개진 얼굴을 본 민시혁은 웃으며 그녀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내일 다시 해줘, 응?”
  • 소서영이 입술을 오므렸다.
  • “그럼 오늘 아침은…”
  • 그가 그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 “대충 먹어, 너 지각하겠어.”
  •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소서영이 시간을 확인하자 지각할 위기였다!
  • 8시가 다 되었는데 그녀는 8시 30분에 수업이 있었던 것이다!
  • 그녀는 대충 입에 밀어 넣고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
  •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장 이모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이 아주머니 혼자 그 곳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 검은 비단으로 가리고 있는 남자는 여전히 천천히 우유를 마시고 있다.
  • 그녀가 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자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 “널 픽업할 기사를 준비시켰으니 학교 끝나면 빨리 돌아와.”
  • 소서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 “… 고마워요.”
  • ……
  • “회장님, 저더러 장 이모에게 전하라고 한 건 다 얘기했으니 아마 곧이곧대로 그쪽에 보고할 겁니다.”
  • 소서영이 가고 난 뒤 이 아주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일어나요.”
  • 민시혁은 편한 자세를 바꿔 휠체어에 기대어 있다.
  •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 있어.”
  • “장 이모랑 두 사람 다 할아버지가 보낸 사람인데 왜 장 이모는 둘째 삼촌에게 매수를 당했는데 당신은 안 그런 거지?”
  • 이 아주머니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털썩” 하고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이미 다른 임무를 받았기 때문인 거지?”
  • 민시혁은 우아하게 티슈를 들고 입을 닦았다.
  • “당분간은 당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야.”
  • “어르신이 당신을 보내 나를 감시하라고 했으니 당신은 응당 곧이곧대로 보고해야 해: 내가 소서영을 지켜주기 위해 화가 나서 장 이모를 쫓아버렸다고.”
  • 이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 “걱정 마세요!”
  • ——————
  • “주 기사님, 감사합니다!”
  • A시 대학 부근, 가방을 멘 소서영이 차 문을 열고 나는 듯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 아침 햇살이 그녀 머리 위의 포니테일을 비추고 청춘의 기운이 가득하다.
  • 그녀의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지고서야 기사는 핸드폰을 눌렀다.
  • “회장님.”
  • “사모님께서 학교와 두 블럭 떨어진 곳에서 내리셨습니다.”
  •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 “뭐라고 하던?”
  • “저희의 차가 너무 럭셔리해서 부잣집에 시집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 “알았어, 그녀 말 들어.”
  • ……
  • 수업 시작까지 3분이 남았을 때 소서영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교실에 들어섰다.
  • 당이함은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 “너 어떻게 수업하러 왔어?”
  • 소서영이 이마 위에 맺힌 땀을 닦았다.
  • “다행히 지각은 아니네!”
  • 그녀는 여전히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물 빠진 청바지에 흰 티를 입고 머리에는 똑같이 포니테일을 한 채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다.
  • 시집 간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다.
  • 땀을 닦고 난 소서영은 열심히 교과서와 노트를 꺼냈다.
  • “오늘은 교수님께서 지난 번 정의 강의를 마무리 하시겠지.”
  • 당이함은 귀신이라도 본 듯 한 표정이다.
  •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서영의 멋진 장님 남편은 이미 스물여섯이다!
  • 스물여섯까지 여자를 만져보지 못했으니 결혼하고 나면 응당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야 하잖아!
  • 그런데 어째서, 소서영의 목에 키스 자국 하나 없는 거야?
  • 목소리도 잠기지 않고?
  • 어째서 죽을 만큼 아파서 거동하지 못할 정도도도 아니지?
  • 심지어 그녀는 침착하게 그녀 앞에 앉아서 필기를 정리한다?
  • 당이함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설마, 소서영의 남편이 장님일 뿐만 아니라 몸도 안좋고 남자로서의 그 것도 안되는 거야?
  • 심지어… 여성 상위도 안돼?
  • 그럼 소서영이 남은 반평생의 성생활은?
  • 당이함은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소서영이 이런 심한 고통을 겪게 할 수 있을까?
  • 그녀는 다급하게 병원 남성비뇨기과에 다니는 사촌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안 되는 남자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약 없어요?”
  • 사촌오빠는 빠르게 답장을 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야? 시간이 짧아, 아니면 짧고 작아, 아니면 전혀 살아나지 않는 거야?”
  • 당이함은 소서영을 힐끗 쳐다봤다.
  • 그녀는 여전히 바보처럼 수업을 들으며 필기를 하고 있다.
  • 이런 일은 그녀가 묻는다 해도 소서영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 결국 당이함은 스스로 결정했다.
  • ““다 있어요. 수업 끝나면 가지러 갈 테니 약 좀 구해줘요.”
  • ‘레몬아, 친구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 까지야.’
  • ……
  • 수업이 끝난 뒤 당이함은 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기어코 소서영에게 사촌 오빠가 있는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 어차피 할 일이 없었던 소서영은 당이함이 많이 아파보이는 것을 보고 그녀와 함께 갔다.
  • 사촌 오빠의 진료실에 도착하자 당이함은 사촌오빠와 집안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 듣고 있기 어색했던 소서영은 아예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소설을 보기 시작했다.
  • 그녀는 요즘 연재중인 총재 소설을 보고 있었다. 소설 속의 남여 주인공은 서로를 여러 해 동안 괴롭히던 끝에 결국 결혼 했다.
  • “서영?”
  • 소서영이 막 신혼 첫날 밤 남녀주인공이 ***를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귓가에 갑자기 남자의 맑은 목소리가 들였다.
  • 공공장소에서 이런 내용을 보는 것때문에 원래도 긴장했던 소서영은 갑자기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손이 떨렸다.
  •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 손가락 마디가 길다란 큰 손이 핸드폰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 “감…”
  • 소서영이 빨개진 얼굴로 고마움을 전하며 시선이 남자의 얼굴에 닿았을 때 그녀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 이천희.
  • 눈 앞에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준수한 남자는 그녀가 고등학교 때 오랫동안 흠모했던 선배, 이천희였다.
  •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다시 한번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