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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두 사람 했어?

  • 말을 마친 소서영이 주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두 도우미가 다급하게 다가가 말렸다.
  • “사모님, 괜찮아요.”
  • 그들이 돈을 받는 이유가 매일 민 씨 저택으로 와서 아침밥을 하는 건데 소서영이 다 한다는 걸 회장님이 아시면 그들이 일자리를 잃을 게 뻔하지 않은가?
  • “사모님.”
  • 그중 도우미 한 명이 불만스레 입을 열었다.
  • “저와 이 아주머니는 이 곳의 아침 식사를 책임지고 있어요. 사모님께서 막 오셔서 회장님의 음식 습관들을 잘 모르시니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마세요.”
  • 다른 도우미가 다급하게 맞장구를 쳤다.
  • “네, 장 이모 말이 맞아요. 사모님께서는 함부로 음식 준비하지 마세요.”
  • “회장님은 이런 아침 드시지 않아요.”
  • 장 이모는 소서영이 만든 무미건조하기 그지 없는 아침식사를 경멸하듯 보며 말했다.
  • “회장님 같은 신분이신 분은 항상 우유에 햄 샌드위치를 드시는데 사모님께서 준비한 이런 죽과 무침은 너무 촌스럽지 않아요?”
  • 소서영의 발그스름한 얼굴에 의아함이 드러나더니 이내 잿빛으로 변했다.
  •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대꾸했다.
  • “당신들 말이 맞아요.”
  • 돈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격식 차리는 것을 좋아했다.
  • 학교에서도 조금만 돈이 있는 학생들은 식당에서 그들과 같이 죽에 김치를 먹지 않았는데 이런 신분의 사람은 오죽할까?
  • 그녀의 생각이 짧았다.
  •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고개를 들고 장 이모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 “그럼 가서 버릴게요!”
  • 이 아주머니는 깜짝 놀랐다. 장 이모가 그렇게 지나치게 얘기했는데 작은 사모님은 화를 내지도 않고 심지어 주동적으로 버리겠다고 하다니?
  • 식탁 위에 놓인 뜨거운 김이 나는 아침을 본 이 아주머니가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나서서 말렸다.
  • “사모님, 버리면 아까우니까 저희 아랫것들이 먹게 두시고 앞으로는 하지 마세요.”
  • 소서영이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 “그래요.”
  • “저 올라갈게요.”
  •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린 그녀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 그녀는 어쩐지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 ——————
  • 침실로 돌아오자 준수한 얼굴의 남자는 한창 달게 자고 있었다.
  • 소서영은 침대 옆에 엎드려 남자 얼굴의 날카로운 선을 보며 입술을 깨물고 낮게 중얼거렸다.
  • “당신들 같은 도시 사람들은 투정이 심해요!”
  • “아침에 무슨 우유에 햄 샌드위치 먹는다고 그래!”
  • “난 샌드위치 먹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만들 줄 알겠어요…”
  • 시집 오기전 숙모는 그녀에게 여자는 침대 위에서 남편의 요구를 만족시켜주거나 그의 배를 부르게 해야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오래 갈 수 있다고 신신당부 했다.
  • 어젯밤 일과 방금 전 주방에서 있은 일이 더해지자 소서영은 생각할 수록 억울했다.
  • 이제 막 결혼한 그녀는 앞으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다.
  • 어젯밤 민시혁은 그녀에게 한참 입을 맞추다가 더 이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몸이 불편한 것을 생각하여 어차피 자신의 요리솜씨가 좋으니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이제는 요리 솜씨도 인정받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침대 위의 일만 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이봐요.”
  •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그의 오똑한 콧날을 빤히 바라보았다.
  • “계속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입 맞출 거예요.”
  • 민시혁의 길다란 속눈썹이 움직였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 남자의 차갑고 매혹적인 얼굴을 보고 있던 소서영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 그녀는 남자를 보며 몇 번이나 입을 맞추려다 결국 포기했다.
  • 결국 그녀는 김빠진 공처럼 물러났다.
  • 됐다, 됐어, 어쩌면 숙모의 말이 안 맞을 지도 몰라. 행복과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좀 불편했다.
  •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 숙모의 임연의 전화였다.
  • 소서영은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 “서영아, 어젯밤 순조로웠어?”
  • 통화가 연결되자 임연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화장실 문이 대충 닫혀져 있었기에 임연의 목소리와 소서영의 맑은 샘물같은 목소리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들렸다.
  • “잘 안됐어요.”
  • “잘 안돼? 못했어?”
  • “못…”
  • “서영아.”
  • 핸드폰 너머의 임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 “지금 네 신분을 꼭 기억해, 넌 지금 민 씨 집안의 며느리야. 너의 첫번째 임무는 민 씨 집안 대를 이을 자식을 많이 낳는 거야.”
  • “2년 안에 민시혁에게 아이를 낳아준다고 약속한 거 절대 잊지마.”
  • 소서영이 진지하게 핸드폰을 움켜쥐고 말했다.
  • “숙모, 걱정 말아요, 잊지 않을 거예요.”
  • 단지 그녀는 처음 하는 결혼이라 경험이 없을 뿐이다.
  • “꼭 그에게 아이를 낳아주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 그녀의 긍정적인 답을 들은 임연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그리고 계속 그, 그 하지 마. 이미 민시혁과 결혼도 했으니 남편이라고 불러야지!”
  •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알았어요…”
  • 말을 마치기 무섭게 침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소서영은 도우미가 들어온 줄 알고 도우미가 민시혁을 깨울까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 나갔다.
  • 침실은 텅 비어있고 침대에 있던 민시혁과 문 옆에 있던 휠체어가 보이지 않았다.
  • 소서영이 따라 나가자 아래층 다이닝 룸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식탁 앞에 앉아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 그의 눈은 여전히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는데 신비로우면서도 아득해 보였다.
  • “사모님, 와서 식사하세요!”
  •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본 장 이모가 다급하게 열정적으로 소서영을 불렀다.
  • “제가 한 음식이 입에 맞는지 보세요!”
  • 열정적인 태도는 아까 전의 각박한 태도와는 천지 차이였다.
  • 소서영은 얌전히 계단을 내려왔다.
  • 식탁 앞에는 소서영이 먹어본 적도 없는 햄샌드위치와 우유가 놓여있었다.
  • 아침에 있었던 일때문에 소서영은 그녀의 취향에 맞지 않는 아침이 도무지 삼킬 수 없었다.
  • 갑자기 그녀는 아침에 냉장고에 무침 반찬 조금 덜어놓은 것이 떠올랐다.
  • 민시혁이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그녀 혼자 먹는 건 상관없겠지?
  • 그녀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총총 뛰어가 무침을 자기 앞에 놓고 맛있게 먹었다.
  • “뭐 먹어?”
  • 넓은 식탁을 사이에 둔 민시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소서영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 “당신은 좋아하지 않은 거예요.”
  • 남자는 담담하게 웃었다.
  •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건 어떻게 알아?”
  • 소서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잡티 하나 없는 단순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장 이모가 말했어요.”
  • 먼 곳에 서있던 장 이모는 몸을 흠칫했다.
  • 얼굴을 검은 비단으로 가린 남자가 우아하게 우유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 “장 이모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
  • “맞아요.”
  • 그의 묵직한 소리는 생각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 “냉장고에 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물건이 있지?”
  • 소서영은 미안한 듯 입술을 오므렸다.
  • “내가…”
  • “내가 당신 취향도 잘 알지 못해서 이런 촌스러운 걸 안 먹는 것도 모르고 내가 평소에 먹던 대로 만들었어요…”
  • “이렇게?”
  • 민시혁이 천천히 우유 잔을 내려놓았다.
  • 유리 재질의 컵과 식탁이 부딪히면서 내는 맑은 소리 속에 깃든 위험한 느낌에 장 이모는 깜짝 놀라 그대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 남자의 낮은 목소리는 마치 엄동설한처럼 차가웠다.
  • “사실 나조차도 네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걸 몰랐어.”
  • 소서영이 아직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그녀 앞에 있던 반찬을 그가 정확하게 끌어갔다.
  • 민시혁은 일부러 젓가락을 들고 탐색하는 듯 하다가 정확하게 반찬을 집어 맛을 보았다.
  • 그가 한번도 맛본 적 없는 맛이었는데 새콤달콤함 속에 매운 맛도 있었다.
  • “솜씨가 좋네.”
  • 그는 우아하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 “장 이모는 언제 내가 이런 걸 즐겨 먹지 않는 걸 알았어요?”
  • 계집애가 아침부터 씩씩대며 올라와서 침대 머리맡에 엎드려 그에게 투정을 부린다고 한 것이 장 이모한테 괴롭힘을 당한 것 때문이야?
  • 남자 목소리의 한기는 장 이모를 덜덜 떨게 만들었고 본능적으로 이 아주머니 뒤로 숨게 했다.
  • 민시혁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 “장 이모가 말을 하지 않는 건 장님인 나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