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멈춰!

• 도시를 가로질러 온 검은 색의 마세라티가 안전하게 A시 대학의 자습실 앞에 멈춰 섰다.
• 주 기사의 차에서 내린 소서영은 고맙다는 말을 건넬 시간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자습실을 향해 달려갔다.
• 자습실에 놓아둔 책들 중에는 수업시간에 한 필기 뿐만 아니라 그녀가 예전에 받았던 여러 상장들과 생일을 보낼 때 할머니가 그녀에게 줬던 카드도 들어 있었다.
• 조잡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진 카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엔 폐지보다도 못한 종이 쪼가리로 보일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은 소서영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가장 귀중한 것이었다!
• 아침부터 자습실은 사람들로 미ㅇ어터졌고 엘리베이터 입구에도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다시 당이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레몬아,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그들의 행패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 핸드폰 너머 소서영은 당이함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 깊은 숨을 들이 쉰 소서영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곁에 있는 계단으로 발길을 돌렸다.
• 겨우 8층일 뿐이니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고 아침 밥도 챙겨 먹지 않은 그녀는 8층까지 올라갔을 때 이미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신경 쓸 새도 없이 8층에 도착한 그녀는 미친듯이 자습실을 향해 달려갔다.
• 매 층마다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 복도에는 당이함 혼자서 조급한 모습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당이함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가 그녀의 책과 연습장들을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양동이에 던져 넣고 있었다.
• 양동이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은 전부 소서영의 소중한 노트들이었다!
• 양동이 옆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 “이게 다 뭐야.”
• 그는 소서영이 A시 물리 경시대회에서 받은 일등 상장을 찢기 시작했다.
• “당장 내려 놔!”
• 어마어마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소서영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 그를 향해 달려들 때 그녀는 그제서야 이 남자가 민규한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 “제수씨, 그렇게 내게 안기고 싶었어?”
• 민규한은 여전히 껄렁껄렁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방자한 눈빛으로 소서영을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 “이럴 거면서 어제 영감네 집에선 왜 그렇게 고결한 척을 한 거야?”
• 이를 앙다문 소서영은 민규한을 뿌리치고 갈기갈기 찢겨진 증서를 품에 안았다.
• 그리고 등 뒤에서는 여전히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그녀의 물건을 “찌익찌익”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 “멈춰!”
• “내 물건이예요! 내 동의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훼손하는 건 범법행위예요!”
• 눈가가 발그레해진 소서영은 미친듯이 그녀의 물건들을 사수하려 노력했다.
• “멈춰.”
• 다리를 꼬고 앉은 민규한이 냉소를 지었다.
• “제수씨 체면은 살려 줘야지.”
• 그가 명령을 내리고 나서야 검은 옷의 사내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 달려온 당이함이 소서영과 함께 그들의 수중에서 물건을 빼앗았다.
• 하지만 아직 양동이 안에서 불타고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 소서영은 손에 쥐고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고개를 들어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양동이를 쳐다보았다.
• 갑자기 그녀는 불타오르고 있는 양동이 속에 언뜻 보이는 사진첩의 한 귀퉁이를 보게 되었다.
• 그녀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 사진첩 속에는 할머니가 매년 그녀에게 보내 주었던 사진들과 카드가 들어 있었다!
•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곧장 손을 뻗어 양동이 속에서 불타고 있는 사진첩을 꺼냈다.
• 불길에 그녀의 손이 붉게 화상을 입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옷깃으로 사진첩에 붙은 불을 끄는데만 집중했다.
• 소서영의 손에서 사진첩을 빼앗아 한 켠에 놓아 둔 당이함은 붉게 화상을 입은 그녀의 손가락을 보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 “너무 한 것 같아?”
• 민규한이 웃었다.
• “어제 민시혁이 한 같잖은 도발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 그는 마치 뭔가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에 생긴 멍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제수씨, 이게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는 알고 있겠지?”
• 소서영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와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걸까?
• 어제 밤 그녀가 하이힐로 때린 상처인가?
• “어제 밤 너희 부부가 나에게 한 짓거리에 비하면.”
• 민규한이 냉소를 지으며 소서영을 쳐다보았다.
• “오늘 내 행동은 하나도 너무한 것 같지 않은데.”
• 그러면서 그가 소서영이 품에 안은 물건들을 쓱 훑어보았다.
• “네가 이 폐지들을 그토록 아끼는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다 불태워 버리는 건데!”
• 비록 어제 밤 민동철이 민규한에게 얌전하게 있으라 경고를 했었지만 이 나이 먹도록 처음으로 다른 사람 신발에 맞은 민규한이 이 울분을 그냥 참을 수가 있나?
• “어제 밤 일은 당신이 자초한 일이잖아요!”
• 소서영이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자 원래도 동그란 얼굴이 화가 나서 더욱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 “당신은 당해도 싸요!”
• 그가 먼저 고 씨 집안의 아가씨에게 무례하게 행동했고 그가 다른 사람과 싸움을 걸었으면서 왜 그 모든 책임을 민시혁에게 돌리는 거지?
• 게다가 어제 그런 식으로 민시혁을 대한 그에게 아내로써 남편을 보호하는 행동을 취한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
• 소서영의 말은 다시금 민규한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 위험하게 두 눈을 찌푸린 그가 소서영의 앞으로 다가와 뼈라도 부러뜨릴 듯한 억센 힘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
• “어젠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제수씨 꽤 예쁘장한 걸.”
• “시골 출신이라고 전부 까만 피부의 촌스러운 생김새는 아닌 모양이군. 이렇게 피부가 흰 여자도 있는 모양이야…”
• 그의 시선이 소서영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 “몸매도 괜찮아. 아주 큰 걸.”
• 덜컥 겁이 난 소서영이 얼른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팔로 가슴을 가렸다.
• “존중해 주세요! 전 당신의 제수씨라고요!”
• “제수씨, 나에 대해서 한참을 모르나 본데.”
• 민규한이 그녀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 “난 말이지, 임자 있는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걸 즐긴다고.”
• “성질이 더러운 여자일수록 더 좋아하지.”
• 소서영이 도망치기도 전에 등 뒤에 서있던 검은 옷의 사내가 그녀를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 버렸다.
• “네가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난 더 흥미롭단 말이지.”
• 냉소를 지은 민규한이 그녀에게 다가와 변태 같은 손길로 소서영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 “정말 잘 가꾼 얼굴이네. 하나도 시골 여자 같지 않아.”
• 그의 목소리는 그의 말처럼 구역질이 났다.
• 분노로 가득 찬 당이함이 달려들었다.
• “당신!”
• 민규한이 입도 뻥끗하지 않았는데 검은 옷의 사내들은 당이함을 끌어냈다.
• 그가 데려온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 게다가 하나같이 덩치가 커다란 남자들뿐이었다.
• 소서영은 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힘으로 맞서선 안 돼.
• “여기서 이러지 말고 자리를 옮기죠.”
• 민규한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비어있는 자습실로 시선을 옮겼다.
• 검은 옷의 사내들은 그의 뜻을 알아듣고는 소서영을 끌고 자습실로 들어갔다.
• “민규한!”
• 자습실로 끌려 들어가는 순간, 소서영은 정말 두려워졌다.
• 아직 남편인 민시혁에게도 주지 않은 그녀의 처음을 민규한 같은 쓰레기에게 줄 수는 없었다!
• “그래.”
• 민규한이 손가락으로 소서영의 볼을 꼬집었다.
• “네가 화를 내는 모습이 좋아. 그러니 계속해 보도록 해.”
• 소서영은 새하얘질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소서영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몹시 즐거운 듯 우아하게 관찰하고 있던 민규한이 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의 앞에서 소서영의 옷을 찢기 시작했다.
• “잠깐만요!”
• 이를 앙다문 소서영의 경시대회에서 수많은 일등상을 거머쥐었던 소서영의 총명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성질 머리가 더러운 여자를 좋아한다고요?”
• 민규한이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가 두 눈을 깜빡였다.
• “그럼 내가 당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른다면, 제게 흥미가 떨어질 건가요?”
• 소녀가 내 뱉은 말은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를 웃게 만들었다.
• 민규한은 더욱 즐거워졌다. 멍청한 시골 아가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