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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앞으로 민시혁은 내가 지킨다

  • “맞아.”
  • 소서영에 대한 비웃음을 꾹 참은 민규한이 말했다.
  • “만약 네가 고분고분히 내 옷을 벗기고 먼저 내게 키스를 한다면 정말 네게 흥미가 떨어질 지도 모르겠어.’
  • 소서영의 눈빛에 교활함이 스쳤다.
  • 하지만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당신 말에 따를 게요.”
  • 민규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으며 그녀를 잡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 “놓아줘, 놓아줘!”
  • 그는 이 시골 아가씨가 도대체 어디까지 멍청한 짓을 할 건지 두고 보고 싶었다.
  •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명령에 따라 소서영을 풀어주었다.
  •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서영을 보면서 민규한이 웃음을 지었다.
  • “건장한 남자가 세 명이나 있는데 꿍꿍이가 있다고 해도 도망가지 못할 거예요.”
  • 진지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은 소서영이 그에게 다가갔다.
  • “약속했어요. 일단 옷을 벗기고 키스를 해 줄게요.”
  • “만지지 마.”
  • 민규한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 “아래에 키스를 하는 거야. 입술이 아니라.”
  • 구역질을 간신히 참은 소서영은 그에게 잡힌 손을 빼내 천천히 그의 단추를 풀었다.
  • 하나, 둘.
  • 진지한 소녀의 옆모습은 민규한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 하지만 소서영이 직접 그의 품으로 안겨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에 그는 욕정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 하지만 그녀의 속도는 느려도 너무 느렸다.
  • 심지어 단추 하나를 풀 때마다 그녀는 꼼꼼하게 구겨진 옷을 펴주고 있었다.
  • 민규한은 인내심을 잃어버렸다.
  • 그가 막 소서영을 재촉하려던 순간, 갑자기 가슴팍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은 것이 느껴졌다.
  • 시선을 내린 남자의 눈빛에 당황함이 스쳤다.
  • 소서영이 작은 커터 칼을 그의 가슴팍에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제 소개를 해 보자면 의학을 배우고 있어요. 흉부 외과를 전공하고 있죠.”
  • 맑고 깨끗한 소서영의 목소리에 싸늘함이 더해졌다.
  • “각 학과의 올 a+ 성적으로 감히 약속하건대, 제가 칼을 당신의 가슴팍에 찔러 넣을 때 당신의 심장은 두동강이 날 거예요.”
  • 민규한은 순식간에 식은땀이 났다!
  •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그 누구에게도 말로 위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 이를 악물고 몸부림을 치려던 그는 외투가 어느새 소서영에 의해 풀리지 않는 매듭이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채게 되었다.
  • 이제 그에게는 몸부림을 칠 기회조차 없이 소서영이 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제수씨…”
  • 억지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인 민규한이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 “아무리 그래도 난 민시혁의 사촌 형이야. 그런 내게 칼을 휘둘렀다가 집안 사람들에겐 어떻게 설명하려고…”
  • “진정해…”
  • “내가 제수씨라는 걸 기억하고는 있었군요.”
  • 소서영이 냉소를 지었다.
  • “방금 전 내게 한 그 짓들은 가족에게 어떻게 설명할 예정이었어요?”
  • 민규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난…”
  • “민시혁 씨가 민 씨 집안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미미하기 때문에 내게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죠?”
  • “장님에다가 실권은 하나도 쥐고 있지 않으니 당신에게 해코지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거죠?”
  • 가슴팍에서 빛나고 있는 칼날을 보며 민규한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그래…”
  • 소서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 어제 밤 본가의 정원에서 휠체어에 앉은 남자가 달을 보며 그에겐 가족이 없다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 그 외로운 목소리는 매번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 “앞으로 민시혁 씨는 제가 지킬 거예요.”
  • 깊은 숨을 들이 쉰 소녀가 정중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 “비록 제가 멍청하고 당신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 “전 제가 아주 훌륭한 의과생이라 생각해요.”
  • 그녀는 아주 험악한 척을 하며 손에 들고 있는 칼날을 움직였다.
  •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당신의 심장을 절반으로 가를 수 있는 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심장을 세 토막으로 나눌 수 있는지도 배워서 알고 있어요.”
  • 민규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소서영의 눈에 비친 악독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방금 전까지도 순진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그의 옷을 벗기던 여자가 다음 순간 이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볼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그녀의 모든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너무나도 진지한 나머지 앞으로 다시 한번 민시혁을 건드린다면 그녀가 이 칼을 들고 쫓아와 그의 심장을 찌를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 무서워…
  • 성적이 뛰어난 의과생은 너무 무서워…
  • 소서영이 깊은 숨을 들이 마셨다.
  • 해야 할 말은 다 했고, 위협도 하고 겁도 주었으니 이제 어떻게 벗어난담?
  • 밖에는 온통 민규한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 민규한을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당이함이 아직 민규한의 수하들에게 잡혀 있었다.
  • 그들은 당이함을 인질로 민규한을 풀어주라 그녀를 위협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당이함을 위해 민규한을 풀어준다면 아무런 무기도 쥐고 있지 않은 여자 두 명으로는 민규한의 수하들과 싸워 이길 수 없을 것이다.
  • 그렇게 된다면 민규한의 태도는 더욱 악랄해 질 것이다.
  • 하지만 당이함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 생각에 잠긴 소서영은 손에 쥐고 있는 칼날의 끝이 민규한의 가슴 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 민규한은 온 몸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 소서영은 지금 어떻게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을 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 무서운 나머지 그는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 날 때부터 황루루와 민동철 부부의 사랑만 받고 자라 온 민규한은 서른이 되도록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었다.
  • 다른 사람의 칼날이 심장을 향해 있는 지금 그는 두려운 나머지 당장 눈물이라도 터뜨릴 것 같았다.
  • “펑--!”
  • 갑자기 누군가 자습실의 문을 발로 차 열어 버렸다.
  • 문 밖에는 주 기사와 백 집사가 서 있었다.
  • 백 집사의 앞에는 휠체어에 앉은 민시혁이 있었다.
  • 민시혁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 그의 몸을 금빛으로 감싸 주었다.
  • 소서영은 눈에 검은 비단을 두른 남자를 보고 심장이 쿵쾅쿵쾅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 그가…그녀를 구하러 온 것일까?
  • “아--! 사람 살려! 사람 죽어!”
  • 갑자기 그녀의 앞에 서있던 민규한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미간을 찌푸린 소서영이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가 들고 있던 칼날이 이미 민규한의 가슴팍의 옷을 찢어버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 그의 하얀 셔츠 너머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고 민규한은 그 핏자국을 움켜쥐고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소서영의 이마 위로 핏줄이 솟아올랐다.
  • 흘러나온 피의 양으로 보건대 아주 작은 상처일 텐데 이렇게 크게 비명을 지를 필요가 있나?
  • 게다가 그녀는 칼을 움직인 적도 없는데…
  • “병원으로 데려가.”
  • 미간을 찌푸린 민시혁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 백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서영을 위로했다.
  • “사모님, 자책하실 필요 없어요.”
  • “방금 전 사모님이 부주의한 틈을 타 도망을 치려다 위치를 잘못 잡아 스스로 칼에 베인 거예요.”
  • 소서영: “…”
  • 민규한이 이정도로 멍청하다고?
  • 일분 뒤 미친 듯이 울부짖던 민규한은 주 기사의 품에 안겨 병원으로 향했다.
  • “출혈 양으로 보건대 상처가 깊지 않을 거예요.”
  • 소서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 “내장을 찌르지도 않았을 거고요.”
  • 그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민시혁의 등 뒤에 섰다.
  • “민규한에게 상처를 입혔으니…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겠죠?”
  • “무서워?”
  •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 “무섭지 않아요. 제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요.”
  • 민시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 “넌 다친데 없지?”
  • “전 괜찮아요.”
  • 소서영이 커터 칼을 접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 “언제 온 거예요?”
  • “네가 민시혁을 지킨다고 말했을 때.”
  • 소서영: “…”
  • 작게 헛기침을 한 그녀는 책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가 지켜낸 물건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어 두었다.
  • “레몬아, 괜찮아?”
  • 눈가가 붉어진 당이함이 그녀와 함께 물건을 정리하며 물었다.
  • “방금 전은 그가 널 어떻게 할까 봐 정말 무서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