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아빠가 엄마를 속상하게 한 거지?
- 고민서는 시선을 들어 올려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 그녀는 아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나긋나긋하게 말을 내뱉었다.
-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해. 다 엄마 탓이야… 하지만 저 사람은 정말로 준이 아빠가 아니야. 준이가 잘못 안 거야. 엄마랑 같이 돌아가자, 응?”
- 준이가 놀란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 ‘아빠가 아닐 리가 없잖아? 어젯밤에 내가 아빠를 안았을 때 전혀 싫어하지 않았는 걸. 심지어는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았단 말이야.’
- “말 들어.”
- 고민서는 준이를 놓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듯 말했다.
- 멀지 않은 곳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박태훈은 분노가 한결 누그러드는 것을 느꼈다.
- 동시에 그는 당혹스러웠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은 그로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것이었다.
- 그의 머릿속에는 고민서에 대한 수많은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 겁이 많았던 모습, 소심했던 모습, 초조해하던 모습, 분노하던 모습… 수도 없이 많았다.
- 하지만 오늘 보았던 강하고 차가운 모습만은 그의 기억 속에 없었다.
- 그녀는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더는 그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 준이의 앞에서만 그녀는 비로소 다정한 모습이 얼핏 내비쳤다.
- 이에 박태훈은 그런 그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끝을 알 수 없는 깊고도 짙은 눈빛으로 앞에 있는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고민서는 방금 전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준이를 데려가려는 생각만은 굉장히 확고했다.
- 이를 알아챈 준이는 어쩔 수 없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총명했던 아이는 분명 엄마와 아빠 사이에 어떠한 모순이 있기에 그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고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 이에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타협하듯 말했다.
- “알겠어. 엄마랑 같이 돌아가면 되잖아… 당장 할아버지더러 짐 챙기라고 할게.”
- 말을 마치자, 아이는 몸을 돌려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그렇게 박태훈의 곁을 지나치던 아이는 그에게 달려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 이를 본 고민서는 바로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했다.
- 잠시 뒤 준이와 장건우가 나오자, 그녀는 그들을 데리고 곧바로 박씨 저택을 떠나갔다.
-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 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고민서는 뒷좌석에 기대어 있었다. 마치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 열몇 시간 비행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데다 도착한 뒤로는 박태훈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심각한 감정 기복까지 겪었으니, 현재 그 긴장이 풀리자, 말도 못 할 정도의 피곤이 몰려왔다.
-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장건우는 미안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죄송합니다, 아가씨. 동의도 없이 도련님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해서는 돌아간 뒤 기꺼이 처벌받겠습니다.”
- “됐어요. 아저씨 탓이 아니잖아요.”
- 고민서는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따질 생각이 없었다. 만약 준이가 부추긴 것이 아니었다면 장건우는 절대 이렇듯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준이 역시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는 것을 아는 듯 냉큼 그녀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 “화내지 마, 엄마. 내가 잘못했어.”
- “그걸 알긴 알아?”
- 고민서는 아이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하고는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들어 올려 아이의 이마를 한번 튕겼다.
- 하지만 힘은 실려있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님이 분명했다.
- 준이 역시 이를 느끼고는 다시 배짱이 생겨 참지 못하고 물었다.
- “왜 거짓말한 거야, 엄마? 그 사람 분명 우리 아빠 맞잖아. 아니야? 어린이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엄마가 그랬잖아. 그럼 어른도 직접 모범을 보여야지!”
- 정곡을 찔린 고민서는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초롱초롱한 두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그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 “넌 아직 어려서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아주 많아.”
- “나도 다 알아!”
- 준이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나더러 아빠라고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분명 아빠가 뭔가 나쁜 짓을 저질러서 엄마를 화나게 해서 그런 거잖아! 그런 거라면 준이는 아빠 없어도 돼. 엄마만 날 좋아해 주면 돼…”
- 여기까지 말하던 아이는 가까이 다가가 고민서를 끌어안았다. 품 안에 안겨든 아이의 포근한 체온에 고민서는 마음이 따듯해져 왔다.
- 하지만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음 한편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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