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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녀를 지키는 남자

  • 고민서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깜짝 놀란 듯해 보이기도,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다.
  •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 신정연 역시 꽤 긴장한 듯했다. 조금 전 그녀가 내뱉은 조롱들을 박태훈이 어디까지 들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박씨 가문이 고민서에게 품고 있는 원한과, 거기에 더해 자신과 박태훈이 곧 약혼할 사이라는 것이 생각난 그녀는 이내 다시 배짱이 생긴 듯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 그러더니 친근하게 그에게 팔짱을 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태훈 씨, 왜 나왔어요? 내가 올 줄 알고 일부러 마중 나온 거예요?”
  • 박태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 그의 깊은 두 눈은 줄곧 문밖에 서있는 한 아름다운 인영에 고정되어 있었다.
  • 그녀는 조금 야위었고, 키는 조금 더 자란 것 같았으며, 한결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 또한 조금 전 집에서 나올 때 마침 듣게 된 그 축하 인사는 경쾌했고, 담담했다.
  • 그녀는 기억 속의 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훤칠한 체격의 남자까지 한 명 서있었다.
  • 그는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꽤나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반듯한 자세로 그녀의 몇 걸음 뒤에 서있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박태훈은 그 모습이 굉장히 눈에 거슬렸고, 극도로 심기가 불편했다.
  • 이에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말투로 말을 내뱉었다.
  • “왜? 문도 못 알아보는 건가? 내가 직접 나와서 모시고 들어가야 하는 거야?”
  • 그 말에 고민서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 아까 멍하니 있는 사이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을 새겨놓은 상태였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아마 살갗을 뚫고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하지만 현재 마음이 진정되자 표정 또한 다시 차가워졌다.
  • “박씨 가문 저택에 발을 들일 생각 없어요. 그러니 박 대표님께서 준이를 데리고 나와주시죠. 준이만 데리고 바로 갈 거예요.”
  • 그녀의 말투는 서먹하고 차가웠다. 또한 서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 그녀가 자신을 부른 호칭에 박태훈의 동공이 순간 격하게 흔들렸다. 또한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그의 눈빛은 더욱더 깊게 가라앉았다.
  •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 “내가 준이만 데려가라고 너더러 오라고 한 줄 알아? 준이가 내 앞에 나타난 이상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
  • 그 말에 고민서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그 말은 나한테서 준이를 빼앗아 가겠다는 건가?’
  • 그녀는 박태훈에게 그의 약혼녀가 아직 옆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 했다.
  • 하지만 신정연이 먼저 초조해진 듯 박태훈의 팔을 꽉 움켜잡으며 물었다.
  • “태훈 씨, 두 사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조금 전 그 짧은 대화를 통해 그녀는 중요한 정보를 집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민서는 박태훈이 불러서 온 것이라는 것, 그리고 두 사람이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
  • 이에 그녀는 초조했다. 그녀는 이런 소외되는 듯한 느낌이 싫었다.
  • 박태훈은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눈치챈 듯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 이에 신정연은 주눅 든 얼굴로 사뭇 속상한 척하며 말했다.
  • “난… 난 태훈 씨랑 아침 식사를 같이하려고 왔죠.”
  • “일단 돌아가. 난 따로 할 일이 있어.”
  • 박태훈은 그녀를 상대해 줄 마음이 없는 듯 바로 그녀에게서 자신의 손을 뽑아내며 명령하듯 말했다.
  • 이에 신정연은 순간 자신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또한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 ‘내가 왜 가야 하는데? 내가 가고 나면 둘이 회포라도 풀려고? 그건 절대 용납 못 하지!’
  • “태훈 씨, 나 여기 있을래요. 우리 오늘 약혼식 때 입을 예복 피팅하러 가기로 했잖아요. 잊었어요?”
  • 그녀의 말투에는 애교가 섞여 있었다.
  • 하지만 박태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심지어 약간의 짜증이 스쳤다.
  • “다른 날로 미뤄. 운전기사더러 데려다주라고 할게.”
  • 말을 마친 그는 반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집사를 불렀다.
  • “먼저 정연이를 집에 데려다주도록 해.”
  • 일단 박태훈이 무언가를 결정하면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신정연은 그가 원망스러웠다.
  • 그는 고민서를 증오하면서도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매번 그녀에 관한 것들을 1순위에 두고 있었다.
  • 이에 그녀는 미친 듯이 질투가 났지만 감히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얌전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
  • “알겠어요.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친근한 동작으로 박태훈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마치 현모양처같이, 다정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말이다.
  • 그런 다음에야 그녀는 돌아서서 차를 타고 떠나갔다.
  • 이내 그곳에는 다시 박태훈과 고민서, 그리고 임준형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 “이제 제대로 얘기할 수 있겠지?”
  • 박태훈은 여전히 예전의 그 오만한 말투로 마치 모든 것들이 그의 통제하에 있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