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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남기로 했다

  • 그 말에 준이는 꽤나 당황한 듯했다.
  • ‘정말로 돌아가는 거야?’
  • 이에 아이는 고민서의 목을 끌어안으며 다시 한번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고민서가 입을 열었다.
  • “취소해. 일단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 최대한 빨리 지낼만한 집을 알아봐. 아무래도 한동안은 국내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
  • 그녀의 결정에 그곳에 있던 모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고민서가 어떠한 결정을 내렸을 때는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던 임준형은 더 묻지 않았다.
  • 장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 유독 준이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 ‘잘됐어! 드디어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됐으니, 아빠를 또 만날 수 있겠어!’
  • ……
  • 임준형의 일 처리 속도는 늘 그렇듯 굉장히 빨랐다. 불과 3일도 안 되어 적당한 집을 몇 채 알아보았다.
  • 준이와 함께 집들을 돌아본 고민서는 결국 한적한 곳에 위치한 베이 타운이라는 단독주택 구역으로 결정했다.
  • 중개인은 그들이 해외에서 돌아왔다는 말에 이때가 기회다 싶어 바가지를 씌우려 들었다.
  • “이곳은 지지난해에 지은 신축 단지입니다. 주변 환경도 조용하고 시 중심과 가까워서 편리한 교통과 상권, 그리고 학군까지 다 갖추고 있는 데다, 생활이나 오락을 즐기기에도 굉장히 편리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서 창밖으로 강이 보이는 집은 눈독을 들이시는 분들이 꽤 많죠. 여러분은 운이 좋으신 겁니다. 집주인분께서 급히 외국에 나가시면서 싼값에 내놓으셨어요. 풀 옵션으로 구매하시면 약 60억 정도 됩니다.”
  • 그 말에 고민서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살포시 웃는 듯싶더니 흥정을 시작했다.
  • “56억으로 하시죠! 그럼 지금 당장 계약할게요.”
  • 그러자 중개인은 깜짝 놀랐다. 흥정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가격을 깎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아가씨, 지금 장난해요? 집이 무슨 배추도 아니고, 무슨 흥정을 그렇게 합니까! 60억이면 이미 충분히 낮게 드리는 겁니다!”
  • 고민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매력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제가 해외에 있다가 돌아왔다고 하니까 쉽게 속을 것 같아 보였나요? 국내 집값이 어느 정도인지 다 조사해 보고 왔어요. 56억이면 이미 그쪽에게 순이윤만 해도 4천만 원이 떨어지게 될 텐데요! 그 정도 돈이면 다른 중개인들과 비교해도 많은 수준 아닌가요! 그런데 바로 60억을 부르시면…”
  • 고민서는 눈을 찡그렸다.
  • “한마디만 하시면 돼요. 팔 거예요 말 거예요? 팔 거라면 바로 사인하고, 안 팔 거면 다른 중개사가 내놓은 매물 중에 고를게요.”
  • 그녀의 엄청난 기세에 중개인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옆에 있던 임준형이 한마디 귀띔했다.
  • “멍청하게 서있지 마시죠. 저희 누님께선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 중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진행시키죠.”
  • 그 뒤로 계약에서부터 전입신고까지 고작 며칠 만에 순식간에 끝이 났다.
  •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준이는 그제야 고민서가 진심으로 국내에 정착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에 아이는 굉장히 신이 났다.
  • “잘됐다. 앞으로는 엄마랑 국내에서 지낼 수 있게 됐잖아.”
  • “엄마랑 여기서 지낼 수 있어서 좋은 거야,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좋은 거야?”
  • 고민서가 준이를 흘겨보며 의미하는 바가 있는 듯 물었다. 준이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 “당연히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은 거지.”
  • “퍽이나!”
  • 고민서는 그저 고개를 저었을 뿐 더는 따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임준형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 “누님,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돌아오시기로 하신 겁니까?”
  • 고민서를 따른 지도 오래된 그였기에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재 그녀의 결정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 그제야 고민서도 임준형에게 이곳에서 지내기로 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에게 간단히 일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
  • “어차피 준이랑 나는 결국 이 나라 사람이니까 언제가 됐든 돌아올 생각이었어. 이번 기회에 미리 적응하는 셈 치는 거지 뭐.”
  • 이에 임준형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
  • ……
  • 같은 시각, 태산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 방금 한 무더기 서류의 검토를 마친 박태훈은 미간을 주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안은호가 커피를 한잔 들고 들어와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 “대표님, 커피 좀 드시죠.”
  • 그러자 박태훈은 손을 내리며 나직이 답하고는 커피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 퍼져가는 쌉싸름한 맛에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가 딱히 신경 쓰고 있지는 않다는 듯 물었다.
  • “조사해 보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