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아이는 고민서의 목을 끌어안으며 다시 한번 그녀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던 그때, 고민서가 입을 열었다.
“취소해. 일단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 최대한 빨리 지낼만한 집을 알아봐. 아무래도 한동안은 국내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
그녀의 결정에 그곳에 있던 모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민서가 어떠한 결정을 내렸을 때는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던 임준형은 더 묻지 않았다.
장건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독 준이만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잘됐어! 드디어 이곳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됐으니, 아빠를 또 만날 수 있겠어!’
……
임준형의 일 처리 속도는 늘 그렇듯 굉장히 빨랐다. 불과 3일도 안 되어 적당한 집을 몇 채 알아보았다.
준이와 함께 집들을 돌아본 고민서는 결국 한적한 곳에 위치한 베이 타운이라는 단독주택 구역으로 결정했다.
중개인은 그들이 해외에서 돌아왔다는 말에 이때가 기회다 싶어 바가지를 씌우려 들었다.
“이곳은 지지난해에 지은 신축 단지입니다. 주변 환경도 조용하고 시 중심과 가까워서 편리한 교통과 상권, 그리고 학군까지 다 갖추고 있는 데다, 생활이나 오락을 즐기기에도 굉장히 편리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서 창밖으로 강이 보이는 집은 눈독을 들이시는 분들이 꽤 많죠. 여러분은 운이 좋으신 겁니다. 집주인분께서 급히 외국에 나가시면서 싼값에 내놓으셨어요. 풀 옵션으로 구매하시면 약 60억 정도 됩니다.”
그 말에 고민서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살포시 웃는 듯싶더니 흥정을 시작했다.
“56억으로 하시죠! 그럼 지금 당장 계약할게요.”
그러자 중개인은 깜짝 놀랐다. 흥정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가격을 깎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 지금 장난해요? 집이 무슨 배추도 아니고, 무슨 흥정을 그렇게 합니까! 60억이면 이미 충분히 낮게 드리는 겁니다!”
고민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매력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가 해외에 있다가 돌아왔다고 하니까 쉽게 속을 것 같아 보였나요? 국내 집값이 어느 정도인지 다 조사해 보고 왔어요. 56억이면 이미 그쪽에게 순이윤만 해도 4천만 원이 떨어지게 될 텐데요! 그 정도 돈이면 다른 중개인들과 비교해도 많은 수준 아닌가요! 그런데 바로 60억을 부르시면…”
고민서는 눈을 찡그렸다.
“한마디만 하시면 돼요. 팔 거예요 말 거예요? 팔 거라면 바로 사인하고, 안 팔 거면 다른 중개사가 내놓은 매물 중에 고를게요.”
그녀의 엄청난 기세에 중개인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옆에 있던 임준형이 한마디 귀띔했다.
“멍청하게 서있지 마시죠. 저희 누님께선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중개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진행시키죠.”
그 뒤로 계약에서부터 전입신고까지 고작 며칠 만에 순식간에 끝이 났다.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준이는 그제야 고민서가 진심으로 국내에 정착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에 아이는 굉장히 신이 났다.
“잘됐다. 앞으로는 엄마랑 국내에서 지낼 수 있게 됐잖아.”
“엄마랑 여기서 지낼 수 있어서 좋은 거야,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좋은 거야?”
고민서가 준이를 흘겨보며 의미하는 바가 있는 듯 물었다. 준이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당연히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은 거지.”
“퍽이나!”
고민서는 그저 고개를 저었을 뿐 더는 따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임준형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누님,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돌아오시기로 하신 겁니까?”
고민서를 따른 지도 오래된 그였기에 그녀의 과거에 대해 그 역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재 그녀의 결정이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제야 고민서도 임준형에게 이곳에서 지내기로 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그에게 간단히 일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
“어차피 준이랑 나는 결국 이 나라 사람이니까 언제가 됐든 돌아올 생각이었어. 이번 기회에 미리 적응하는 셈 치는 거지 뭐.”
이에 임준형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
……
같은 시각, 태산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방금 한 무더기 서류의 검토를 마친 박태훈은 미간을 주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은호가 커피를 한잔 들고 들어와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대표님, 커피 좀 드시죠.”
그러자 박태훈은 손을 내리며 나직이 답하고는 커피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 퍼져가는 쌉싸름한 맛에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가 딱히 신경 쓰고 있지는 않다는 듯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