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7화 혼자서만 그를 소유하고 싶어

  • 하지만 고민서는 이미 예전의, 그의 앞에서 우물쭈물해야 했던 어린 메이드가 아니었다.
  • 그해 그의 입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내뱉은 이상 더더욱 그러했다.
  • 이에 고민서는 원래 서있던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침착하게 말을 내뱉었다.
  • “저와 박 대표님 사이에 할 얘기 같은 건 없을 텐데요.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준이는 박 대표님의 아이가 아니에요.”
  • 담담하게 말을 내뱉는 그녀와는 달리 박태훈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를 에워싼 공기까지 급속도로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 “내 아이가 아니면 누구 아이라는 거지?”
  •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옆에 있는 임준형을 위아래로 훑더니 조롱하듯 말을 이어갔다.
  • “저 자식 아이인가?”
  • 처음부터 수호자처럼 그녀의 옆에 서있는 그 남자가 박태훈은 정말이지 굉장히 거슬렸다.
  • 이에 애초부터 차갑기만 했던 그의 시선이 이제는 아예 얼음장 같은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 하지만 뜬금없이 공격을 당한 임준형은 침착하기만 했다.
  • 고민서는 깊게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대꾸했다.
  • “누구 아이이던 제가 그런 것까지 박 대표님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러니 이만 제 아이를 돌려주시죠!”
  • 그녀의 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차가웠고, 날이 잔뜩 서있었다.
  • 이에 박태훈의 얼굴은 음침해 보일 정도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는 확실히 키가 조금 자라 있었고 성격도 변해있었다.
  • 예전에는 자신의 앞에 서면 항상 우물쭈물하며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그녀가 이제는 입만 열면 ‘박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극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이었다.
  • 분위기가 어딘가 딱딱해져 있던 그때, 갑자기 저택 문이 열리더니 준이가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 조그만 인영은 마치 숲속으로 날아드는 작은 새 같았다.
  • “엄마, 드디어 왔네!”
  • 귀여운 목소리로 외치는 아이의 말투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가득했다.
  • 그 소리에 고민서와 박태훈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서로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옮겨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 고민서는 행여라도 아이가 넘어질까 무의식적으로 준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에 그녀의 품 안으로 뛰어든 준이가 귀엽게 옹알거렸다.
  • “엄마, 보고 싶었어~”
  • 괜스레 애교를 부리는 아이의 모습에 고민서는 순간 화가 났다.
  • 이에 그녀는 손을 들어 올려 아이의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 “고성준, 넌 혼 좀 나야 해! 엄마 허락도 없이 혼자서 이 먼 곳까지 오다니, 잘못했어 안 했어?”
  • 굳은 얼굴로 혼을 내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의 손에는 전혀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 그리고 준이는 굉장히 똑똑한 아이였다. 또한 애교를 부릴 줄도 아는 아이였다.
  • 이에 준이는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친근하게 사과했다.
  • “잘못했어, 엄마. 화내지 마. 다신 안 그럴게.”
  • 말을 그렇게 했지만, 고민서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전에도 매번 그렇게 약속을 해놓고도 그 뒤로도 똑같이 가출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 준이는 어리긴 해도 대담하기가 이를 데 없었고, 지능도 엄청 뛰어나 어디를 나가도 속고 다닐 걱정 같은 건 없었다.
  •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에 그녀는 기분을 가라앉힌 뒤 단호하게 말했다.
  • “가서 짐 챙겨. 당장 엄마랑 같이 돌아가자.”
  • 그 말에 애교를 부리던 준이의 얼굴에 곧장 망설임이 드러났다.
  • 아이는 시선을 들어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 고민서를 바라보다 또 시선을 옮겨 한쪽에서 차가운 얼굴을 한 채 서있는 박태훈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엄마, 안 돌아가면 안 돼? 나… 나 아빠를 찾았단 말이야…”
  •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있고 싶었다.
  • “아빠라니?”
  • 고민서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 “누가 저 사람이 네 아빠라고 그래?”
  • “내가 다 조사해 봤어!”
  • 준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서러운 듯 말을 이어갔다.
  • “내가 유전자 검사도 다 해봤다고. 틀림없어.”
  • 아이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더니 고민서의 옷자락을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 속상한 듯 말을 내뱉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 “엄마, 나 아빠가 갖고 싶어.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나더러 아빠 없는 애라면서 놀린단 말이야. 이제 겨우 아빠를 찾았으니까 나한테도 아빠가 생긴 거잖아!”
  • 그 말에 고민서는 마음 한편이 마치 누군가가 강하게 쥐어짜는 듯 아파왔다.
  • 지난 시간 그녀는 혼자서 준이를 키워왔었다. 굉장히 바빴지만 가능한 한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쏟아부으려 했었고 최대한 아이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려고 노력했었다.
  • 그리고 아이는 무척이나 강하게 자라주었다. 굉장히 총명했고, 성격 또한 성숙하고 철든 아이로 자라주었다.
  • 매번 그녀가 지치고 힘들 때면 알맞은 때에 달려와 그녀를 다독여 주었었지만,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 그랬던 준이가 현재 갑자기 자신을 올려다보며 아빠를 원한다고 말하니 그녀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 알고 보니 전에 매일 같이 가출했던 이유가 아빠를 찾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아무리 철이 들었다고 해도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여전히 굉장히 예민했었던 것이었다.
  • 고민서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오롯이 혼자서만 아이를 소유하고 싶었다.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