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꽤 성숙해져 있었다. 여전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또한 더욱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그리고 깔보듯 말하는 그 모습은 그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이에 그녀는 반감이 생겼다.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고민서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저와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면서 너무 가까이 오지 마시죠!”
“너…”
말문이 막힌 신정연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동시에 그녀는 눈앞에 있는 고민서가 전과는 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의 고민서는 박씨 가문에서는 고개도 못 드는 고용인이었고, 늘 후줄근한 옷차림에 더러운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그녀는 깔끔하고 우아한 차림이었고, 아름다움 속에 고귀함을 머금고 있었으며,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감과 기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신데렐라가 고고한 여왕이 된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신정연은 고민서의 눈빛에 약간의 압박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고민서의 변화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빴다. 이에 내뱉는 말도 점점 더 각박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제는 허세까지 부려? 5년 못 본 사이에 꽤 많이 변했네. 예전에는 내 앞에서는 말 한마디 꺼낼 자격도 없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고상한 척까지 하는 걸 보니 지난 몇 년간 살기 편했나 봐…“
그녀는 말을 함과 동시에 손을 뻗어 고민서의 옷자락을 집어 들었다.
“이 옷 좀 봐. 질감부터 전이랑 다르잖아!”
그러자 고민서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단숨에 신정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칫하면 뼈까지 부러뜨릴 수 있을 만한 힘이었다.
“질감부터 다른 걸 안다면 만지지 마시죠. 당신 능력으론 배상하지 못할 물건이니!”
말을 마친 그녀는 신정연의 팔을 마치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듯 뿌리쳐냈다.
이에 신정연은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신씨 가문의 아가씨였고 미래의 박씨 가문 사모님이 될 몸이었다. 이제껏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는 삶을 살아온 그녀였는데, 지금 한 궁상스러운 고용인에게 옷 따위를 배상하지 못할 것이라며 조롱을 당했다는 사실이 신정연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고민서가 입고 있는 옷은 전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벌밖에 없는 옷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신정연은 더 듣기 거북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스폰서라도 하나 물었나 보네… 설마 네 옆에 있는 이 사람이니?”
그녀의 시선이 옆에 있는 임준형을 훑었다.
임준형은 말끔하고 기품 있는 생김새의 남자였다. 고민서의 곁에 서있는 그 모습 또한 훤칠하고 흔들림 없었으며 그 어떤 기백이 느껴졌다.
신정연은 아까부터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고, 지금은 당연하게도 그를 고민서의 스폰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임준형은 눈썹을 추켜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정연의 이런 식의 무차별적인 공격에는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느낄 뿐이었다.
‘멍청한 여자군.’
그의 두 눈에 경멸과 멸시가 드러났다.
고민서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
이에 신정연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하고는 더욱더 고민서를 깔보기 시작했다.
“하긴, 나랑 너 같은 사람 사이에 딱히 할 이야기가 없긴 하지. 다만 한 가지, 네가 알았으면 하는 게 있어. 박씨 가문에서 쫓겨났으면 주제 파악 좀 하고 다시는 가까이 오지 말았어야지! 나 태훈 씨랑 다음 달에 약혼해. 아무나 찾아와서 우리 기분을 망치지 않길 바라.”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더 힘이 실려 있었고, 표정 또한 자랑하듯 득의양양했다.
이에 고민서는 멈칫하더니 웃긴 말이라도 들은 듯 입을 열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제가 너무 바빠서요. 그래도 신정연 씨가 그렇게 말하셨으니 축하는 해드릴게요!”
신정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민서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이에 고민서와 신정연은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원 안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인영 하나가 서있었다. 남자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셔츠 단추는 끝까지 잠그고 있었다.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긴 다리는 세계적인 모델 못지않았고, 조각 같은 얼굴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으며, 꾹 다문 입술은 각박하고 매정해 보였다.
새까만 두 눈은 마치 구천에서 불어오는 한류처럼 그 어떤 온기도 담겨있지 않았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는 몸이 떨려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