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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귀여운 꼬맹이의 주작

  • 그녀는 잠시간의 혼란하던 감정을 뒤로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 “비행기 티켓 끊어. 당장 가서 준이를 데려올 거야.”
  • “알겠습니다.”
  • 임준형은 그녀의 지시를 받고 방을 나갔다.
  • 같은 시각 한국, 서울.
  • 우뚝 솟은 태산그룹 건물 맞은편의 한 카페 안에서는 고성준 어린이가 창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두 다리를 구르고 있었다.
  • 아이의 앞에 놓여있는 노트북 화면 위에는 수많은 코드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 옆에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는 장건우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탄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 소문에 의하면 태산그룹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해킹이 어려운 방어 시스템을 갖고 있어 일반 해커들은 절대 뚫지 못한다고 했었다.
  • 하지만 현재 이 어린아이 앞에서 그 시스템이 마치 종잇장처럼 한 겹 한 겹 소리 없이 뚫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 이제 4살을 조금 넘긴 꼬마는 괴물같이 놀라운 총명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 띵-
  • 그때, 화면에 침입에 성공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 “오예, 됐다!”
  • 준이가 기쁜 듯 외치며 손뼉을 쳤다. 이에 장건우는 고개를 내밀어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
  • “빠르군요!”
  • “당연하죠! 이 프로그램은 엄마가 가르쳐 준 거라고요! X국의 국방 시스템도 뚫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비록 태산의 방어 시스템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프로그램은 막을 수 없죠!”
  • 아이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 그러더니 의자에서 내려와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백팩을 챙겨 들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아이는 떠나기 전 한마디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여기서 제 소식을 기다리고 계세요. 꼭 아빠를 찾을 거니까요!”
  • “가보세요! 건투를 빌겠습니다.”
  • 장건우는 아이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 이내 준이는 길을 건너 태산으로 들어갔다.
  • 건물 안으로 들어온 아이는 대표이사만 사용이 가능한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이 엘리베이터는 지문과 비밀번호가 필요했기에 아이는 은근한 기대를 품은 채 해킹을 시작했다.
  • “곧 아빠를 만날 수 있겠어!”
  • ‘아빠가 날 보면 놀라실까? 아니면 기뻐하실까?’
  • 생각을 하는 사이 성공적으로 비밀번호를 풀어낸 아이는 기대에 차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그리고 이내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꼭대기 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꼭대기 층의 회의실 안에 있는 박태훈은 방금 막 3개의 원격회의를 마치고 피곤한 얼굴로 미간을 주무르고 있었다.
  • 멋들어지게 뻗어나간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는 그의 안색은 좋아 보인다고 할 수는 없었고, 홀릴 만큼 잘생긴 얼굴은 전보다 훨씬 더 차가워 보였다.
  • 비서인 안은호가 다음 회의에 필요한 자료들을 건네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 “대표님, 잠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최근 회사는 이런저런 업무들로 정신없이 바빴고, 워커홀릭이었던 그의 상사는 일단 일을 시작하면 마치 일 하는 기계처럼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에 몰두했다.
  • 그리고 그런 그를 보좌하는 자신 역시 함께 쉴 새 없이 돌아치다 보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 하지만 박태훈은 손을 내젓고는 서류를 건네받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 “필요 없어.”
  • 이날 하루 종일 회의가 잡혀 있는 데다 저녁에는 두 차례의 해외 미팅까지 있었기에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 이에 안은호는 군말 없이 그저 눈 딱 감고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그러던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비서인 이세영이 급히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 “대… 대표님, 밖에 어떤 꼬마가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자기가… 대표님 아들이라고 합니다.”
  • 박태훈은 원래부터 일을 하고 있을 때 방해를 받는 것을 싫어했기에 이렇듯 회의실 안으로 무작정 들이닥치는 비서의 섣부른 행동은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게다가 그녀가 내뱉은 말은 더욱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 이에 박태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 안은호 역시 순간 깜짝 놀란 듯하더니 이내 비서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 “이세영 씨,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 ‘대표님께서는 아직 결혼도 안 하셨는데, 아들은 무슨 아들이야?’
  • “저… 그게…”
  • 이세영은 겁에 질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하지만 그런 그녀의 뒤에서 작은 인영 하나가 튀어나와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이내, 아이의 시선이 박태훈에게 고정되더니 잔뜩 흥분한 듯 그를 향해 달려갔다.
  • “찾았다! 정말 잘 됐어. 아빠… 내가 드디어 아빠를 찾아냈어요!”
  • 꼬마 아이가 나는 듯이 달려와 두 손으로 박태훈의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찬란하게 웃었다.
  • “……”
  • 갑자기 다리에 달라붙은 부속품 하나에 박태훈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 그리고 그 모습에 안은호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의 오너는 낯선 이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반쯤 뻗었던 손을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아이는 정교한 이목구비에 예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 생기 넘치는 두 볼은 살짝만 꼬집어도 물이 스며 나올 것만 같았고 새까맣게 반짝이는 두 눈은 총기가 흘러넘치고 있었으며, 그 눈빛 속에는 마치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아이의 그런 올망졸망한 생김새는 그의 오너와 어딘가 꽤 닮아있었다. 이에 안은호는 깜짝 놀란 듯 입을 열었다.
  • “대표님, 저…”
  • 그의 부름에 박태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의 누 눈에 한기가 감돌더니 온몸으로 짙은 불쾌감을 뿜어냈다.
  • “뭐하고 서있어? 얼른 데리고 나가! 부모 더러 와서 데리고 가라고 해. 누가 데리고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당장 내보내!”
  • “어… 알겠습니다!”
  • 그의 호통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안은호는 그제야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다.
  • 그의 오너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굉장히 금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큰 아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 이에 그는 분명 자신이 순간 머리가 어떻게 되어 이 꼬마가 박태훈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라 여겼다.
  • 안은호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아이를 떼어내려 했다.
  • “꼬마야, 부모님이 누구시니? 여긴 네가 노는 곳이 아니야! 가자, 삼촌이랑 나가서…”
  •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준이는 박태훈의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고개를 저었다.
  • “전 안 나가요. 제 부모님은 박태훈이라고요! 겨우 아빠를 찾았단 말이에요…”
  • 아이는 속상한 듯 박태훈의 어떤 온기도 담겨 있지 않은 얼굴을 바라보며 옹알거렸다.
  • “아빠, 제 이름은 고성준이에요. 가족들은 절 준이라고 부르고요, 올해 4살 하고도 3개월 됐어요! 아빠의 친 아들이라고요! 유전자 검사 결과도 있어요. 믿지 못하시겠으면 보여드릴게요.”
  • 아이는 말을 내뱉으며 박태훈의 다리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고 재빨리 자신의 백팩에서 검사지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 하지만 박태훈은 이를 향해 손조차 뻗지 않았다.
  • 그는 그저 이 이상한 꼬마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상황이 황당하기 그지없다 느낄 뿐이었다.
  • 그의 안색은 더욱 차가워져 갔다. 주위의 온도마저도 덩달아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 이에 안은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 하지만 그는 속으로 몰래 찬탄할 수밖에 없었다.
  • 이 상황이 주작이라면 정말이지 꽤나 전문적인 주작이라고 말이다.
  • ‘유전자 검사 결과까지 들고 오다니! 가짜겠지?’
  • 그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재빨리 아이의 손에 들린 검사지를 훑어보았다.
  • 하지만 그 검사지에 적혀있는 박태훈의 정보와 혈액형, 나이까지도 전부 실제와 일치했다.
  • 게다가 두 사람이 친자관계일 확률은 무려 99.9%라고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