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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녀의 가족

  • 차 안, 뒷좌석.
  • 구서진은 서하은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
  •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 신상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걸."
  • 구현수는 짧게 고개를 숙였다.
  • "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이런 명령은 그에게도 의외였다. 구서진은 지금까지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왜 하필 그녀일까. 단순히 얼굴이 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 구서진은 품에 안긴 구서우를 내려다봤다. 아이의 피부는 손이 데일 만큼 뜨거웠고 숨은 얕고 가빴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숨이었다.
  •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 4년 전, 쓰레기통 안에서 구서우를 발견했을 때 아이는 이미 죽기 직전이었다. 중독이 너무 심해 목숨을 건진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몸속에 남은 독소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고, 그날 이후 고열은 반복해서 찾아왔다. 그리고 발작은 갈수록 심해졌다.
  • 의사는 이미 분명하게 말했다.
  • "이대로라면 아이가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 구현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인현수 선생님 쪽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설령 찾는다 해도 선생님께서 직접 나서 주신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 구서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찾아."
  • 잠시 정적이 흘렀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 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구현수는 말없이 핸들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 "알겠습니다."
  • 그때 품 안의 구서우가 작게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마... 마미..."
  • 구서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는 아이가 누구를 부르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을 낳은 여자가 아니었다.
  • 서하은이었다.
  • 구서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다.
  • 그리고 이번에는...
  • 절대 놓치지 않는다.
  • ……
  • 밤이 깊어졌다.
  • 커다란 고목의 짙은 그늘 아래 오래된 집 한 채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 서하은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한 통증이 가슴 깊은 곳에서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가슴을 눌렀다.
  •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차도현의 물음에 서하은은 가볍게 손을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 "아무것도 아니야."
  • 그녀는 눈앞의 낡은 대문을 조용히 바라봤다.
  • 어머니가 재혼한 뒤 그녀는 시골에 홀로 남겨졌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는 그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관심이 없었고, 어느 날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문 씨 가족이 그녀를 거두어 주지 않았다면 진작 굶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그녀를 친딸처럼 보살폈고, 문지호는 언제나 친누나처럼 그녀를 지켜 주었다. 그 시절은 서하은의 인생에서 가장 따뜻하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 하지만 5년 전 친어머니가 다시 그녀를 데려갔고, 그 후 문 씨 가족은 시골을 떠나 교외로 이사했다.
  • 5년 만의 귀향이었다.
  • 서하은은 천천히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 "하은아!"
  • 문이 열리자 장은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게 환해졌던 얼굴은 이내 당황과 미안함으로 물들었다.
  • "미안해... 오늘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 "괜찮아. 저도 이제 어린애 아니잖아."
  • 서하은은 가볍게 웃으며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몇 걸음 떼던 그녀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
  • 뒤집힌 의자와 산산이 깨진 화분, 그리고 흙바닥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끌려간 자국이 한눈에 들어왔다.
  • "무슨 일 있었어?"
  • 장은미는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 "일단 들어와. 지호부터 봐."
  • 서하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문지호가 집에 있다면 왜 직접 나오지 않는 걸까.
  • 그 순간, 금속 바퀴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조용한 집 안을 울렸다.
  • 희미한 거실 불빛 아래 복도 끝에서 문지호가 휠체어를 탄 채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누군가가 말없이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 서하은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지호야?"
  • 서하은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무릎을 덮고 있는 담요를 바라보던 그녀는 두 걸음 만에 문지호 앞까지 다가가 손을 뻗었다.
  • "하지 마."
  • 문지호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 "볼 필요 없어."
  • "놔."
  • "하은아..."
  • "놓으라고."
  •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부탁이 아니었다.
  • 문지호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놓고 고개를 돌렸다.
  • 서하은은 말없이 담요를 걷어냈다.
  • 그 순간 그녀의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의 다리는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뒤틀려 있었다. 얼핏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치료를 못 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구도 제대로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기만 해도 고통이 전해질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 "누가 그랬어."
  •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판결을 내린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 문지호는 다시 담요를 끌어올렸다.
  • "됐어. 우리는 상대할 수 없어."
  • 서하은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 "이 세상에 내가 상대하지 못할 사람은 없어. 말해. 누군지."
  • "이번에는 달라. 너 이제 막 돌아왔잖아. 괜히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마. 우리는 그냥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살면 돼."
  • 문지호의 말은 진심이었다. 장은미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서하은이 또다시 위험한 일에 뛰어들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 그 마음을 알아차린 서하은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다시 그의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 "...치료할 수 있어?"
  • 문지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 "볼 수 있는 전문의는 다 만나 봤어. 다들 똑같은 말만 하더라. 평생 다시는 못 일어난다고."
  •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끝내 감추지 못했다.
  • "내가 아는 사람이 있어."
  • 서하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 "이 세상에서 아직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뿐이야. 다른 의사들과는 달라."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차도현을 바라봤다.
  • "인현수 선생님을 모셔 와."
  • 차도현이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 "아니."
  • 서하은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 "내가 직접 할게."
  • 몇 번의 연결음 끝에 전화가 연결됐다.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야, 별일이네. 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는데."
  • "어디 계세요?"
  • "왜?"
  • "와주셔야 합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다친 거냐?"
  • "아니에요."
  • 서하은은 문지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 "지호예요. 제 동생이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오늘 밤까지 삭주성으로 와주세요."
  • "오늘 밤? 나 지금 해외에 있어. 지금 출발해도..."
  • 서하은은 차도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군용기 준비해."
  •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 "...무리하지 마. 내가 직접 비행기를 알아보마.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갈 테니까. 사람 보내지는 마."
  • 말을 마치자 통화는 끊겼다.
  • 한편,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현수의 비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 "선생님, 제요그룹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개인 진료를 요청해 왔습니다."
  • 인현수는 이미 외투를 챙겨 입으며 고개를 저었다.
  • "시간 없어. 가야 할 곳이 있다."
  • "그럼 거절하겠습니다?"
  • "그래."
  • 그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 "삭주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부터 알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