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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그녀가 지휘관으로 복귀했다

버려진 그녀가 지휘관으로 복귀했다

Black Knight

Last update: 1970-01-01

제1화 돌아온 전신

  • 분만실.
  • 눈이 시릴 만큼 새하얀 조명이 천장을 뒤덮고 있었다.
  • 식은땀이 흘러내려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 그때, 철그랑. 화쇠사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 서하은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떨리고 있는 건... 자신의 손목이었다.
  • 아기의 울음소리는 단 한 번. 짧고, 희미했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그 소리는 그대로 침묵 속으로 삼켜졌다.
  • "...아이는요?"
  • 간호사는 끝내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태어났을 때부터... 숨이 없었습니다."
  • 서하은은 울지 않았다. 그저 가슴 한가운데가 통째로 뜯겨나간 것만 같았다.
  • 그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남았고, 바람만 스쳐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다.
  • 훗날 그녀는 알게 된다. 그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저 더 깊은 곳에 묻혀 있을 뿐.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 ……
  • 5년 후.
  • 비행기는 순항 고도를 유지한 채 조용히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구름, 마치 모든 것을 덮어 버릴 듯, 도시 위를 말없이 뒤덮고 있었다.
  • 서하은은 천천히 눈을 떴다. 지난 5년 동안 그녀가 배운 것은 단 하나. 감정은, 사람을 가장 쉽게 무너뜨린다는 것.
  • "곧 착륙합니다."
  • 차도현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말했다.
  •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그것이 그가 늘 지켜 온 선이었다.
  •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 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 감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던 그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구름 아래에는 동륙이 있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짓밟았던 도시.
  • 그리고 서하은이 다시 돌아왔다.
  • ……
  • 공항.
  • 기체 문이 열리자 뜨거운 열기가 활주로의 아스팔트 냄새를 실어 날랐다.
  • 검은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 손에 든 소총은 무광택 금속빛을 띠고 있었고, 멀리서는 헬기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가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서하은이 천천히 트랩을 내려왔다. 군화가 활주로를 디디는 소리는 바람에 묻혔다.
  • 하지만 그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 첫 번째 줄에서 시작된 경례는 물결처럼 뒤쪽으로 번져 나갔다.
  • 창락 동륙이 전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예우였다. 맨 앞에 선 장교가 고개를 숙였다.
  • "지휘관님."
  • 서하은은 옆에 서 있던 차도현을 바라봤다.
  • "분명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 목소리는 담담했다. 오히려 그 차분함이 더 서늘했다.
  • 차도현의 등이 순간 굳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 그녀는 정말 화가 났을 때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걸.
  • "죄송합니다, 장군님. 이런 환영식이 준비된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하은이 시선을 거뒀다.
  • "철수."
  • 몇 분 뒤. 헬기는 방향을 틀었고, 차량 행렬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 병사들 역시 빠르게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거대한 열병식 같던 활주로는 순식간에 적막만 남았다.
  •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 "교도소."
  • 차도현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정말 그곳으로 다시 가려는 건가.
  • 그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서하은은 결코 의미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 ……
  • 5년 전.
  • 서하은은 삭주성에서 가장 애매한 존재였다. 부모는 분명 친부모였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도, 기대도 없었다. 그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짐을 보는 것 같았다.
  •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그 짐에도 쓸모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 백진우와의 결혼. 백가는 삭주성을 대표하는 명문가였다.
  • 이 혼사가 성사되면 서가는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었다.
  • 서하은은 그 결혼을 받아들였다.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 적어도 마지막 한 번쯤은, 자신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결혼식 날.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베일이 내려오는 순간. 거울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날, 그것이 마지막 웃음이었다.
  • 수많은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진우가 그녀를 가리켰다.
  • "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닙니다."
  • 그 옆에는 서하영이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감싼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서하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하영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붉은 피가 치맛자락 아래로 번져 나왔다.
  • 순식간에 예식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누군가는 구급차를 부르라고 외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서하영은 배를 감싼 채 몸을 웅크리고 흐느꼈다.
  • "언니... 왜 나를 밀었어...?"
  • 서하은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발치에 흩어진 웨딩드레스 자락이 처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 "...난 안 했어."
  • 그녀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짧은 순간이. 그 어떤 모욕보다도 아팠다.
  • 고의 상해. 그리고 배 속 아이가 백진우의 친자가 아니라는 의혹.
  •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 치안대가 그녀의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 철컥. 그 순간. 누군가 울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 울음소리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었다.
  • ……
  • 교도소 독방은 비좁았다.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잘게 잘려 있었다.
  • 서하영은 단 한 번 면회를 왔다. 유리창 너머에서 배부른 고양이처럼 웃고 있었다.
  • "임신도 거짓말이었어."
  • 잠시 뜸을 들인 뒤 입꼬리를 올렸다.
  • "유산도...전부 다."
  • 서하은은 그대로 유리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톱이 유리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면회실 안을 가득 채웠다.
  • 그날 이후 그녀는 다시는 울지 않았다. 매일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움직임. 칠흑 같은 독방에서 그것만이 그녀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빛이었다.
  • 그리고 그 빛마저 사라졌다. 깊은 밤, 교도소 의무실. 고장 난 형광등 하나가 불안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 진통이 시작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죽는다는 게 이런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고통은 끝이 없었다.
  • "아이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 간호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서하은은 울지 않았다.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천장을 바라봤다.
  • 형광등은 계속 깜빡였다. 백진우는 아이의 시신만 데려갔다. 그녀는 끝내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다.
  • 그 무렵 이미 수비군 총사령부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총사령부 직인이 찍힌 극비 전출 명령서 한 장.
  • 그 문서와 함께 서하은이라는 죄수는 교도소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그날 이후 5년. 북부 변경 전선과 수많은 비밀 작전이 그녀를 다시 단련했다.
  • 전장은 그녀를 부수는 대신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국가 하나와도 맞설 수 있는 정보망을 손에 넣었다.
  • 하지만 깊은 밤 눈을 감을 때마다. 그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짧고. 희미했던. 단 한 번의 울음. 그리고 그 소리는 그 순간처럼 갑자기 끊겨 버렸다.
  • ……
  • 5년 후의 교도소 밖 주차장. 쏟아지는 햇빛에 아스팔트가 희게 달아올라 있었다. 서하은은 차에 기대 선 채 팔짱을 끼고 조용히 기다렸다.
  • 자신의 출소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그들이 아직도 예전의 서하은이라고 믿고 있는 자신을. 과연 어떻게 대할지. 그것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낯익은 차량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백진우. 그리고 서하영.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올 리가 없었다.
  • 길게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던 서하은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
  • 5년이 지났는데도.
  • 저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백진우가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조차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 "사인해."
  • "5억 원은 줄 테니까."
  • 서하은은 말없이 서류를 내려다봤다.
  • '아내.'
  • 그 칸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마치 거래를 앞둔 물건처럼 낯설었다.
  • 그녀가 옅게 웃었다.
  • "5억 원?"
  • 천천히 시선을 들어 백진우를 바라봤다.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눈빛이었다.
  • "내 침묵이."
  • "그 정도 값으로 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