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저한테는 시골뜨기 누나가 없어요!

  • “어머님, 저희가 도정이를 데려왔어요.”
  • 정은주는 우도정에게 여 노부인을 소개했다.
  • “도정아, 이분은 네 할머니셔.”
  • “할머니.”
  • 우도정은 담담하게 한마디 불렀다.
  • 여 노부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고용인에게 말했다.
  • “소옥아, 남은 제비집이 아직 따뜻할 때 가져다가 자운에게 먹여.”
  • “네.”
  • 소옥은 대답하고 곧바로 제비집 한 그릇을 가져왔다.
  • “할머니, 고마워요.”
  • 여자운은 달콤한 목소리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제비집을 자랑하듯이 쳐들었다가 한 모금을 먹었다.
  • “정말 맛있어요.”
  • “천천히 먹어. 누가 빼앗지 않아. 온종일 차를 타며 고생했으니 몸보신도 하고 얼굴도 좀 가꿔야 고 도련님이 너한테 변함이 없을 거잖아.”
  • 노부인은 애틋한 표정으로 여자운의 귓가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 “알았어요.”
  • 여자운은 달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는 한쪽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도정을 힐끗 곁눈질하며 더더욱 흐뭇하게 웃었다.
  • 정은주는 노부인이 일부러 우도정을 외면하는 태도에 기분이 언짢아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 “어머님…”
  • “응, 돌아왔어?”
  • 노부인은 그제야 이쪽에도 사람이 있는 줄을 알았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우도정을 훑어보았다.
  • 외가닥으로 곱게 땋은 머리에 단정한 용모, 하얀 피부에 아름다운 눈, 다만 차가운 눈빛과 얇은 입술은 정이 부족한 상이어서 훌륭한 신랑감을 낚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 곧 노부인은 눈길은 아래로 옮겨 더럽고 너덜너덜한 원피스, 낡은 천 가방, 흙먼지투성이가 된 하얀색 신발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이렇게 초라한 차림새만 보아도 시골뜨기가 분명하구나. 여씨 가문에 도움은커녕 돈만 낭비하게 생겼네.’
  • “소옥아, 쟤 신발을 바꿔 줘. 바깥의 더러운 먼지가 이탈리아에서 비행기로 가져온 양털 카펫을 더럽히게 하지 말고.”
  • 노부인은 고용인에게 말했다.
  • “네.”
  • 소옥은 바로 대답하고 얼른 슬리퍼를 가져다가 우도정에게 건넸다.
  • “아가씨, 신발을 바꿔 신으세요.”
  • “…”
  • 우도정은 기분이 잡쳤다.
  • 정은주는 노부인의 말과 행동에서 그녀가 우도정을 싫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 여씨 가문도 원래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여건명과 정은주가 사귈 무렵에 지하의 광산을 발견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 돈이 있게 되자 노부인은 곧바로 마음이 변했다. 그녀는 시골 사람을 업신여기며 그녀를 여건명과 헤어지게 핍박하고 온 가족과 함께 북의시로 이주했다.
  • 곧 여씨 가문은 북의시에서 회사를 차리고, 별장을 사고, 사치품을 사들이며 상류사회에 발을 붙이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 목적은 바로 여씨 가문이 벼락부자라는 불명예를 씻고 귀족 행렬에 끼어들기 위해서였다.
  • 애초에 여건명이 그녀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 데다가 그녀 또한 그때 마침 임신해 아들을 낳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도 여씨 가문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 정은주는 우도정도 자기와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은근히 마음이 괴로웠다.
  • 노부인은 우도정이 여자애이고 시골 출신이어서 더더욱 싫어할 것이다.
  • 정은주는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
  • “어머님, 시골은 가난해요. 도정이는 어릴 때부터 많은 고생을 했어요…”
  • “됐어. 그만해. 어서 데려가 씻게 하고 좀 체면이 서는 옷으로 갈아입혀.”
  • 노부인은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 정은주는 마지못해 우도정에게 말했다.
  • “도정아, 엄마가 방으로 데려다줄게.”
  • 우도정은 노부인의 시큰둥한 표정을 힐끗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여자운은 우도정의 비위를 맞추는 정은주의 모습에 짜증이 나서 손에 든 제비집도 맛이 없었다.
  • ‘그건 원래 내가 받을 모성애야. 도정이 뭔데 나한테서 모성애를 빼앗아?!’
  • 그녀는 달갑지 않아 게임을 하고 있는 여자청에게 눈길을 돌렸다.
  • “자청아, 너 인제 서재가 필요 없어?”
  • 여자운은 여자청에게 귀띔했다.
  • 방금 게임에서 지고 거친 욕설을 퍼붓던 여자청은 여자운의 말을 듣자마자 게임기를 버리고 곧장 3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 3층.
  • “엄마는 네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꾸몄어. 마음에 드는지, 뭐 더 추가할 게 없는지 자세히 살펴봐.”
  • 정은주는 방문을 열며 말했다.
  • 방은 서양식의 공주 방으로 꾸며져 소녀의 분위기가 가득했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우도정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 그러나 그녀는 정은주의 기대 어린 눈빛 앞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이러면 됐어요…”
  • 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그녀를 콱 밀쳐 비틀거리게 했다.
  • “나가. 여기는 내 서재야!”
  • 여자청은 곧 폭발할 것 같은 표정으로 우도정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 “도정아, 괜찮아?”
  • 정은주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자청아, 우리 이미 이 방을 누나에게 주기로 약속하지 않았어?”
  • 그녀는 막내아들의 뜬금없는 심술에 약간 당황했다.
  • 별장의 2층과 3층의 방에는 모두 사람이 들어 있고 1층의 고용인 방과 손님방만 비어 있었다.
  • 하지만 우도정도 어쨌든 여씨 가문의 아가씨이므로 1층에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 그래서 그녀는 막내아들과 상의해 그가 큰아들과 서재를 같이 쓰게 하고 그의 서재를 우도정에게 내주기로 약속했었다.
  • “저 여자는 우리 누나가 아니에요! 저한테는 시골뜨기 누나가 없어요!”
  • 여자청은 고함을 지르며 다시 우도정을 떠밀었다.
  • 그러나 이번에는 우도정이 가볍게 몸을 피했다.
  • 결국 허공을 짚은 여자청은 몸이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쏠리며 곧장 침대 발치에 탁 엎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