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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왜 우리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거야?

  • 그녀는 은침으로 남자의 혈을 두세 번 찔러 피를 멎게 했다.
  • 그리고 자기 원피스 자락을 쭉 찢어 상처를 싸매 주었다.
  •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니 총알까지 빼 줄 수는 없었다.
  • 진호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사라지고 그냥 저리기만 했다.
  • 어렴풋한 가운데 누군가의 두 손이 가슴을 더듬는 느낌이 들었다. 위기의식은 그를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 우도정은 그의 상처를 다 싸매자마자 커다란 손에 오른손을 잡혔다.
  • “긴장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 당신의 상처를 처치하고 있어요.”
  • 그녀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 진호연은 마침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로 멍해졌다.
  • “너… 설매?!”
  • 우도정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녀는 수채를 가득 칠한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발딱 일어나 멀찌감치 피했다.
  • 그녀의 이 이름은 진씨 가문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 이 남자가 진씨 가문의 사람일까?!
  • 바로 그녀가 깜짝 놀라 어쩔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사람들이 그를 찾으러 온 것이었다.
  • 그녀는 머리 위에 멈춰 선 헬기를 올려다보았다.
  • 헬기 문이 열리며 먼저 밧줄 사다리가 내려오고 역시 위장복 차림의 남자가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바로 돌아서서 도망쳤다.
  • 진호연은 몸을 약간 일으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 “너 여태껏 여기 숨어 있었구나. 반드시 너를 찾으러 다시 올 거야…”
  • 산 아래의 한 허름한 기와집.
  • 마당에 검은색 BMW 두 대가 서 있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했다.
  • 집 안의 거실에서는 우 노부인이 북의시에서 온 여씨 가문의 사람들을 접대하고 있었다.
  • 여건명, 정은주, 그리고 우도정과 바뀐 딸 여자운이었다.
  • 세 사람은 옷차림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각종 약초가 여기저기 가득 쌓인 허름한 거실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 여자운은 낡고 더러운 찻잔을 힐끗 보고 마음속으로 몹시 언짢았다.
  • 다시 거실을 둘러보니 얼룩덜룩한 벽, 어지럽게 쌓인 약초, 그리고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머리 위에서 낡아빠진 천장 선풍기 한 대만 삐걱삐걱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렸다.
  • 그녀가 어찌 이렇게 초라한 가문의 딸일 수 있겠는가?
  • 그녀는 여씨 가문의 귀한 아가씨다!
  • “아빠, 너무 더워요. 우도정은 아마도 저를 만나고 싶지 않나 봐요. 제가 엄마 아빠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 여자운은 여건명의 팔짱을 끼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릴 때 바뀐 게 네 잘못도 아닌데 어떻게 너를 탓할 수 있어?!”
  • 여건명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기 전에 그들은 이미 전화를 걸어 우도정을 여씨 가문에 데려가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여자운도 17년 동안 키우며 인제 정이 들 만큼 들었으므로 계속 여씨 가문에서 키우기로 했다.
  • 여자운은 더더욱 애꿎은 표정을 지었다.
  • “그런데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예요…”
  •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우 노부인에게 말했다.
  • “저기요, 어디 가서 우도정을 데려올 수 없나요? 좀 빨리요.”
  • 비록 그냥 묻는 말이지만, 호칭도 없는 말투가 고용인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딱딱했다.
  • 줄곧 여자운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고 있던 우 노부인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여건명이 입을 열었다.
  • “찾으러 갈 필요가 없어요. 5분만 더 기다려서 안 오면 우리는 먼저 돌아갈게요.”
  • 정은주는 남편의 말에 당황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렵게 찾은 친딸을 어떻게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밖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외할머니, 저 돌아왔어요.”
  • 모든 사람이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몸매가 늘씬한 소녀가 빛을 등지고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녀는 온몸에 맑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며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우 노부인은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맨 먼저 그녀의 찢어진 원피스에 눈길이 갔다.
  • “도정아, 무슨 일이 있었어?”
  • 우 노부인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 우도정은 우 노부인을 부축했다.
  • “외할머니, 별일 없었어요.”
  • 그녀는 자기 원피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 “옷이… 실수로 찢어졌어요…”
  • 사람들은 이때야 그녀의 원피스가 더러울 뿐만 아니라 너덜너덜하게 찢어진 것을 보았다.
  • 여자운은 그녀의 이 모습을 보고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 ‘이 외진 시골에 살면서 그럴듯한 옷 한 벌도 없다니! 난 앞으로 절대 이 더러운 곳에 오지 않을 거야!’
  • “찢어지면 찢어졌지. 외할머니가 또 한 벌 해 주면 되잖아.”
  • 우 노부인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사람들을 소개했다.
  • “이리 와. 이쪽은 네 아빠, 엄마와 너랑 바뀐 자매야.”
  • 우도정은 고개를 들고 먼저 여건명을 바라보았다.
  • 정장 차림에 머리카락이 까맣고 몸매가 푼더분한 여건명은 5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40대 초반처럼 젊어 보였다.
  • 여건명은 이 덥고 허름한 곳에서 30분 넘게 기다려서야 나타난 딸이 누더기 차림인 데다가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예의도 없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속으로 더더욱 짜증이 났다.
  • 그는 불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왜 우리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