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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독

  • VIP 병실 안. 인현수는 사람들에게 떠밀리듯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걸음을 멈추기도 전에 몸을 돌려 구서진을 노려봤다.
  • "배짱 하나는 좋군. 그래, 계속 그렇게 굴어 봐. 그 아가씨가 올라오면 후회해도 늦을 테니까."
  • 구현수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아래층에는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특수부대급 전력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병실 문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였다.
  • 하지만 구서진은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침대 앞으로 걸어갔다.
  • 침대 위의 구서우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은 가늘고 불규칙했다. 밤새도록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 "인현수 선생님."
  • 구서진이 낮게 입을 열었다.
  • "아까는 제가 무례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 "하지만 제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 인현수는 코웃음을 쳤다.
  • "말했잖아. 안 한다고."
  •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침대 위 아이에게 향했다. 그리고 순간, 그의 표정이 굳었다.
  • 이 아이…… 왜 이렇게 서하은과 닮았지?
  • 인현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구서진을 바라봤다가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 설마……?
  •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병실 밖에서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 이렇게 빨리?
  • 구현수가 재빨리 몸을 돌렸고, 구서진의 눈빛 역시 순간 날카롭게 굳었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 쾅!
  • 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경호원 한 명이 문짝과 함께 병실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 구현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 백 명이다.
  • 그런데 채 삼 분도 걸리지 않았다.
  • 자신이 직접 나섰다고 해도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서하은이 부서진 문 앞에 서 있었다.
  • 순간, 방 안에 있던 두 사람 모두 말을 잃었다.
  • "……당신이었습니까?"
  • 구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 서하은 역시 잠시 멈칫했다.
  • 왜 하필 이 남자야?
  • 인현수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번갈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침대 위 아이를 바라봤다.
  • 이건 너무 우연 아닌가.
  • 구서진의 시선도 서하은의 얼굴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멈췄다.
  • 손등에는 희미한 상처가 나 있었다.
  •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피부 위로 번져 나온 핏방울 하나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 구서진은 거의 생각할 틈도 없이 한 걸음 다가갔다.
  •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 인현수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 재밌는데.
  • 서하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에 반 박자 늦게 멈칫했다. 손을 빼려던 순간—
  • "다치셨습니다."
  • 구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 서하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저 가벼운 찰과상일 뿐이었다. 서하은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보다 훨씬 심한 부상도 견뎌왔다.
  • "괜찮습니다."
  • 그녀는 손을 빼냈다. 하지만 구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상처에 머물러 있었다. 눈썹 사이가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 인현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쪽을 보고, 저쪽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 "잠깐만. 너희 둘, 무슨 사이야?"
  • 구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 서하은이 미간을 찌푸렸다.
  • "무슨 뜻이야?"
  • 인현수는 침대 쪽으로 턱짓했다.
  • "저 아이 말이야."
  • "설마 결혼도 안 하고 애부터 낳은 건 아니겠지?"
  • 서하은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착각하지 마. 그냥 우연히 나랑 닮았을 뿐이야."
  • 인현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 "정말 확실해?"
  • "응. 확실해."
  • 서하은이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그녀의 시선은 이미 침대 위 아이에게 향해 있었다.
  • 아이의 얼굴은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숨도 가늘고 가빴다. 서하은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 만약 정말 자신의 아이였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 서하은은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구서우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 손바닥이 닿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 너무 뜨거웠다.
  • 어제보다 훨씬 심했다.
  • 서하은이 고개를 돌려 구서진을 바라봤다.
  • "열이 계속 안 내렸습니까?"
  • 구서진의 턱선이 굳어졌다.
  • "네."
  • "의사는…… 이대로 가면 버티기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 서하은은 손을 거두고 인현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 "할아버지, 아직도 거기 서 있어? 사람부터 살려."
  • 의사도 아니었다.
  • 선생님도 아니었다.
  • 그저 ‘할아버지’.
  • 마치 자기 할아버지를 부르듯 자연스럽고 거리낌 없는 호칭이었다.
  • 구서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 그녀는 구현수를 상대해도 밀리지 않았다. 혼자서 거의 백 명에 가까운 경호원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인현수에게는 저런 말투로 말한다.
  •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 이 여자는 평범하지 않았다.
  • 그녀가 구서우를 구해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그 얼굴 때문만도 아니었다.
  •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 굳이 표현하자면—
  • 마치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인연처럼.
  • 그때 침대 위에서 작은 움직임이 들려왔다.
  • 구서우가 눈을 떴다. 아직 눈꺼풀은 완전히 올라가지 않았고, 의식도 흐릿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녀를 알아봤다.
  • "……엄마……"
  • 갈라진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었다.
  • 작은 손이 이불 밖으로 천천히 나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서하은의 소매 끝을 붙잡았다.
  • 놓지 않았다.
  • 서하은은 어제 자신이 아이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 된다고.
  • 그래서 아이는 참고 있었다.
  • 이렇게 열이 오르고 힘든데도 참고 있었다.
  •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 그런데도 끝까지 울지 않았다. 서하은의 가슴이 순간 세게 조여 왔다. 그녀는 손을 뒤집어 작은 손을 감싸 쥐었다. 작고 여렸다. 그리고 너무 뜨거웠다.
  • "...엄마… 가지 마…"
  • "...구서우 말 잘 들을게…"
  • "엄마가 하라는 거 다 할게…"
  • "가지 마…"
  • "응…?"
  • 서하은의 목이 순간 막힌 듯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 "그래."
  • 그녀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안 가."
  • "나 여기 있어."
  • 그녀는 아이의 이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했다. 이번에는 더 작게, 마치 약속하듯.
  • "내가 여기 있을게."
  • 구서우는 그녀의 손을 잡은 힘을 아주 조금 풀었다. 작은 얼굴 위로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마치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은 어린 고양이처럼.
  • 그 옆에서 인현수는 맥을 짚으면서도 몇 번이나 두 사람 쪽을 힐끗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아이는 그녀에게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하은 역시 밀어내지 않았다. '엄마'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녀가 받아들이는 모습 또한 너무 익숙했다.
  • 하지만 인현수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진지하게 맥을 살폈다.
  • 그리고 순간, 그의 표정이 변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로 청진기를 대고 한참 동안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던 그는 이내 얼굴 전체를 차갑게 굳혔다.
  • "누가 한 짓이야?"
  • 방 안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인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차갑게 식은 목소리가 조용히 떨어졌다.
  • "이 아이는 단순한 고열이 아니야."
  • "누군가에게 독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