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납치
- 다음 날.
- 서하은은 시간을 확인했다. 인현수가 탄 비행기가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 "차도현."
- "넌 여기 남아."
- "난 공항에 가서 인현수 선생님을 모셔 올게."
- 차도현은 바로 대답했다.
-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 하지만 서하은은 차 문을 열며 고개를 저었다.
- "어제 박성웅을 건드렸어."
- "그 사람은 절대 가만있을 성격이 아니야."
- "넌 집에 남아서 엄마랑 지호를 지켜."
- 차도현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 ……
- 공항.
- 비행기에서 내린 인현수는 휴대전화를 꺼내 서하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얘야, 다 왔냐?"
- "길이 조금 막혀요. 5분이면 도착할 거예요."
-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 전화를 끊은 인현수는 의자에 기대 앉아 심심한 듯 휴대전화를 넘겼다.
- 몇 번 화면을 넘기지도 않았을 때였다.
- 누군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 인현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 "이제야 왔..."
- 하지만 말끝이 끊겼다.
-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서하은이 아니었다.
- 키가 큰 남자.
- 날카롭게 조각된 듯한 이목구비와 깔끔한 짙은색 정장.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
- 인현수는 미간을 좁혔다.
- "누구시죠?"
- "구서진입니다."
-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인현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 제요그룹의 구서진.
- 인현수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비웃듯 말했다.
- "대단하군."
- "내 비행 일정까지 알아낼 줄은 몰랐는데."
- 구서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 하지만 곧 어린 아들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 턱에 힘이 들어갔지만, 결국 감정을 억눌렀다.
- ……
- 구서진은 인현수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 "제 아들이 위독합니다."
- "찾을 수 있는 전문의는 모두 찾아봤습니다."
- "하지만 아무도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 "당신을 찾아온 건 첫 번째 선택이 아닙니다."
- "이제 남은 방법이 이것뿐입니다."
- "아이는 이제 겨우 네 살입니다."
- "조건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 하지만 인현수는 다리를 꼰 채 휴대전화만 바라볼 뿐이었다.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 "그런 말."
-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듣네."
- "내 대답은 이미 들었을 텐데."
- "안 해."
- 옆에 있던 구현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 그가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구서진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 구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 "제 아들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 하지만 인현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 구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 "실례하겠습니다."
- 그가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 그 뜻을 알아챈 구현수는 곧바로 인현수에게 다가갔다.
- 순간 인현수의 표정이 변했다.
- "지금 뭐 하는 겁니까?!"
-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피하려 했지만, 나이가 있는 그가 구현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 "이거 안 놔?!"
- "들리나?! 놓으라고!"
-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쳐도 소용없었다.
- 결국 인현수는 그대로 검은 차량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 ……
- 그때.
- 서하은이 공항 도착 구역으로 차를 몰고 들어왔다.
- 그리고 눈앞의 장면을 목격했다.
- 인현수가 검은 승용차 안으로 억지로 끌려가고 있었다.
- 서하은의 동공이 순간 수축했다.
- 납치?
- 그녀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 곧바로 액셀을 밟았다.
- 검은 지프가 튕겨 나가듯 도로 위를 질주했다.
- 눈앞의 차량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바짝 따라붙었다.
- ……
- 차 안.
- 구현수가 룸미러를 힐끗 확인했다.
- "대표님. 뒤에 따라붙은 차가 있습니다."
- 인현수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 검은 지프.
-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 "왔군."
- 그는 곧바로 몸을 바로 세웠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초라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잃었던 여유와 자신감이 다시 돌아왔다.
- "젊은 친구."
- "충고 하나 하지."
- "지금이라도 날 내려줘. 아까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
- "하지만 내 친구가 여기까지 따라온다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
- 서하은이 왔다.
- 이제 걱정할 것은 없었다.
- 동륙 최정상급 전력, 흑요 부대의 지휘관.
- 인현수는 단 한 번도 그녀가 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 물론 구현수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하은과 비교한다면 애초에 상대가 될 수 없었다.
- 구서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 차창 밖으로 스며든 햇빛이 비스듬히 그의 차가운 옆얼굴을 비추며 선명한 명암을 만들었다.
- 인현수는 그런 그를 힐끗 바라봤다.
- 속으로는 은근한 감탄이 일었다.
- '역시 구가를 이끌 만한 인물이군.'
-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약해질 생각은 없었다.
- "떼어내."
- "날 억지로 끌고 간다고 해도, 치료해 줄 생각은 없으니까."
- ……
- 5분 후.
- 구현수는 다시 한번 룸미러를 확인했다.
- 여전히 있었다.
- "떼어내지 못했습니다."
- 그가 낮게 말했다.
- 구서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 검은 지프.
-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 "떼어내."
- 구현수는 곧바로 속도를 높였다.
- 차량이 순간적으로 튀어나가듯 앞으로 치고 나갔다.
- 그 순간.
- 쾅!
- 굉음과 함께 차량이 크게 흔들렸다.
- 뒤따라오던 검은 지프가 그대로 차체를 들이받은 것이다.
- 구현수는 그녀가 어떻게 따라붙었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 이 속도를 따라온다고?
- 아니.
- 애초에 자신보다 빠르다는 게 말이 되는가?
- 구현수는 핸들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올라왔다.
- 프로 레이서인가?
- 그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수준이라고?
- 불가능했다.
- 구서진의 눈빛에도 처음으로 미묘한 놀람이 스쳤다.
- 그는 구현수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이 정도 추격전에서 밀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 "더 밟아."
- 구현수는 다시 속도를 끌어올렸다.
- 동시에 무전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 앞쪽에 있던 두 대의 차량이 빠르게 차선을 변경하며 좁은 커브 진입로를 막아섰다.
- 서하은은 눈을 가늘게 떴다.
- 고작 이 정도인가.
- 그녀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 핸들을 단단히 움켜쥔 채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
- 차체는 두 차량 사이의 좁은 틈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 망설임 하나 없는 움직임이었다.
-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종이를 가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정확했다.
- "저 사람……"
- 구현수는 룸미러 너머 검은 지프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닦았다.
- "진짜 보통이 아니군."
- 인현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아이처럼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 "내가 뭐라고 했나."
- "그녀를 막을 사람은 없다고 했잖아."
- 구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검은 지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 그 안에는 의문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인가.
- 인현수는 구서진의 표정을 힐끗 살피더니 혀를 찼다.
- "그러니까 날 보내줬어야 했어."
- "우리 그 아가씨 성격을 네가 몰라서 그래."
- "괜히 건드렸다가……"
- "그 잘생긴 얼굴, 멀쩡히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 구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 그는 좌석에 몸을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인현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 '제법이군. 꽤 단단한 놈이야.'
- 그는 다시 뒤를 돌아 쫓아오는 검은 지프를 바라봤다.
-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 두 사람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 말없이 풍기는 무게감도.
-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도.
- 마치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같은 종류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 ……
- 차가 병원 앞에 멈춰 섰다. 인현수는 차에서 끌려 내려와 그대로 병원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구서진은 계단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뒤, 고개를 살짝 돌려 구현수에게 말했다.
- "다치게 하지 마."
- "막기만 해."
- "알겠습니다."
- 한편 병원 밖에서는 서하은의 지프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주차 공간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는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운전석에서 뛰어내렸고, 곧바로 검은 정장을 입은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몰려와 병원 입구 앞을 가로막듯 벽을 만들었다.
- "비켜."
- 서하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선두에 있던 경호원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움켜쥔 채 낮은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말했다.
- "대표님 지시다."
- "다치게 하지 말고, 막기만 한다."
- 서하은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 "안 비켜?"
- 그녀가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경호원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서하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 빨랐다. 눈앞에 있던 사람이 사라졌다고 느끼기도 전에 이미 바로 앞까지 파고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둔탁한 충돌음과 함께 경호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고,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 서하은이 움직임을 멈췄을 때, 그녀의 뒤에는 더 이상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들 역시 결코 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 명만으로도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 하지만 방금 전까지도 그들은 그녀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 그때 병원 안쪽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 서하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마치 종이로 만든 문을 하나씩 통과하는 것처럼, 그녀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