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괴물
- 황혼이 내려앉을 무렵.
- 거리는 고요했다. 바람만이 가끔 낙엽을 굴리며 스쳐 지나갔다.
- "...엄마."
- 그 한마디가 서하은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심장이 한 박자 멎는 것 같았다. 순간 분만실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단 한 번 울었던 아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진 작은 생명.
- 만약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쯤 저 아이만큼 자랐겠지.
- 가슴 한쪽이 천천히 조여 왔다. 서하은은 눈앞의 아이를 내려다봤다. 차갑기만 하던 눈빛이 조금씩 풀어졌고, 가슴 깊숙이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 그리움과 죄책감, 후회.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까지. 모든 감정이 뒤섞여 그녀를 흔들었다.
- 차도현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서하은과 아이를 번갈아 오갔다. 두 사람의 얼굴을 몇 번이고 비교하던 그는 결국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Boss..."
- "설마... Boss 아이입니까?"
-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던 차도현이 말을 이었다.
- "너무 닮았습니다. 눈도 그렇고 얼굴형도 그렇고... 정말 빼다 박았습니다."
- 흑요부대의 지휘관. 암흑가에서조차 이름만으로 공포를 불러오는 전설적인 인물에게 아이가 있다고?
- 이 사실이 퍼지는 순간 암흑가는 뒤집어질 게 분명했다.
- 서하은이 차도현을 한 번 바라봤다.
- "아니다."
- 담담한 목소리였다.
- "모른다. 놀라서 착각한 모양이군."
-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다시 아이에게 향했다.
- 정말 많이 닮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 아이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작은 얼굴에서 기대가 사라졌고, 반짝이던 눈동자도 조용히 빛을 잃었다.
- "어디 다친 곳 없는지 보자."
- 서하은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 그녀가 손을 뻗기도 전이었다.
- "저기 있다! 잡아!"
- 뒤에서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 작은 몸이 순간 굳어졌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뜬 채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공포에 질린 눈빛이었다. 그리고 거의 본능적으로 서하은의 뒤로 몸을 숨겼다.
- "괜찮아."
- 서하은은 한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 위에 살며시 올렸다.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가 전해졌다.
- "내가 여기 있어.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해."
- 그 온기에 아이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안전하다는 것. 마치 이 사람이 곁에 있기만 하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어렵게 손에 넣은 그 따뜻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의 곁에 바짝 붙었다.
- 서하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조금 전의 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 "이리 와!"
- 앞장선 남자는 얼굴에 긴 흉터가 있는 사내였다. 그가 아이를 향해 소리치자 아이는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두 팔로 서하은의 다리를 꽉 끌어안은 채 얼굴을 그녀의 다리 옆에 묻고는 끝내 놓지 않았다.
- 바로 그 순간, 서하은의 눈에 아이의 팔이 들어왔다. 곳곳에 남아 있는 멍 자국. 목에는 이제 막 딱지가 앉은 상처가 있었고, 아직 피가 배어 나오는 곳도 여러 군데였다.
- 서하은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주변의 공기마저 온기를 잃은 듯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차가운 기운이 퍼져 나갔다.
-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손을 댔다고?
- 죽고 싶은 건가.
- "눈치가 있으면 꺼져."
- 흉터 난 남자가 비웃듯 웃으며 서하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마. 안 그러면 너도 같이 처리해 버린다."
- 차도현은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 처리한다고?
- 이 세상에 서하은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그가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서하은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 "내가 하지."
-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다. 불필요한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마치 판결을 내리기 직전, 심판자가 망치를 들어 올린 순간 같았다.
- 그 아이를 잃었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 하지만 지금은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게 두지 않을 것이다.
- 차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 표정에는 묘한 감정이 스쳤다.
- "Boss.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시려고요? 이런 놈들한테는 너무 과분한데요."
- 서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아 차도현 쪽으로 데려간 뒤 작게 말했다.
- "잠깐만 기다려."
- 그리고 아이를 차도현에게 맡기며 덧붙였다.
- "잘 지켜."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무 빨랐다. 누구도 반응할 틈이 없었다. 이미 그녀는 그들 앞에 서 있었다.
- 서하은의 다리가 움직였다.
- 퍽.
-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녀의 발차기가 가장 앞에 있던 남자의 가슴을 정확히 강타했다. 옷 너머로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 남자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입에서 피 섞인 침이 터져 나왔고, 눈동자가 뒤집힌 채 그대로 쓰러졌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남은 사람들은 모두 굳어 버렸다. 차가운 공포가 등골을 타고 흘렀다.
- '대체 이 여자는 뭐야?'
-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 서하은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 "누가 그 아이를 건드렸지?"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했다.
- "스스로 손을 부러뜨려."
- 너무나도 오만한 말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 흉터 난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수치심과 분노를 참지 못한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을 휘둘렀다.
- "젠장! 다 같이 덤벼! 아무리 강해도 한 명일 뿐이야. 뭐가 무서워?"
- 그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 "의뢰인이 말했다! 그 꼬맹이를 데려가면 한 사람당 1억 원이다!"
- 돈 이야기가 나오자 그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 탐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 "맞습니다, 형님!"
- "혼자서 뭘 어쩌겠습니까?"
- "가자!"
- 쇠파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몇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서하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 아이의 작은 주먹이 꽉 쥐어졌다. 온몸이 잔뜩 긴장한 채 포위된 서하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작은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 하지만 서하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목을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를 풀었다.
- 딱.
- 딱.
- 조용한 거리에는 뼈 마디가 울리는 소리만 퍼졌다.
- 쇠파이프 하나가 서하은의 머리 위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것을 받아냈다. 정확하게, 흔들림 하나 없이. 마치 내리꽂히는 쇠파이프를 막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 건네준 젓가락을 받아 든 것처럼.
- 쇠파이프를 쥔 남자는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 휘익!
-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가 떨어졌지만, 서하은이 붙잡는 순간 그녀의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에 남자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 그리고 그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그다음이었다.
- 서하은의 손가락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
- 끼이익—
- 쇠파이프가 비명을 질렀다.
-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쇠파이프는 조금씩 휘어지기 시작했다.
- 마침내.
- 90도로 완전히 꺾였다. 듣기만 해도 이가 시릴 정도의 소리였다.
- 사람들은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더 이상 누구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딛지 못했다.
- 서하은은 남자의 손에서 쇠파이프를 빼앗아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던졌다.
- 쾅.
- 그 소리는 모두의 심장을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 죽음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침을 삼켰고,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 "괴물..."
- "도망쳐! 빨리 도망쳐!"
-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다리라도 하나 더 달렸으면 하는 듯 필사적이었다.
- 서하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머릿속에는 아이의 팔에 남아 있던 멍과 상처가 스쳐 지나갔고, 이내 자신의 아이가 떠올랐다.
-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저 아이만 했을 것이다.
- 서하은은 눈을 가늘게 떴다.
- 도망쳐?
- 꿈도 꾸지 마.
- 그녀는 허리를 숙여 바닥의 자갈 몇 개를 집어 들고 손목을 가볍게 털었다.
- 쉭, 쉭, 쉭—
-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자갈들이 날아갔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정확했다.
-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도망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졌고, 다리를 부여잡은 채 뒹굴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 댔다.
- 아이의 눈이 번쩍 빛났다.
- 너무 대단했다.
- 이렇게 강하고,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의 엄마일 것이다.
- 아이에게는 기억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쁜 사람들이 자신을 쫓아왔고, 그때 엄마가 나타나 지금처럼 자신을 구해 주었다.
- 바로 그 순간.
- 바닥에 쓰러져 있던 흉터 난 남자가 몰래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총이 들려 있었고, 검은 총구는 서하은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 "엄마! 조심해!"
-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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