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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리는 너를 수양딸로 공개할 거야

  • “산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졌어요.”
  • 우도정은 눈을 내리깔았다.
  • 긴 속눈썹이 차가운 눈빛을 가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 같았다.
  • 여건명은 그녀의 작고 예쁜 얼굴이 정은주를 닮은 데다가 태도까지 좋게 보여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 “조심성이 부족한가 보구나. 자, 가자. 차에 타.”
  • 그는 한마디를 던지고 바로 돌아서서 나갔다. 이곳에 한순간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 “도정아, 난 네 엄마야. 엄마가 좀 보자.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
  • 정은주는 우도정의 손을 잡고 그녀가 다치지 않았는지 자세히 훑어보았다.
  • 우도정은 기품 있는 여자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바라보며 자애로운 양어머니를 떠올렸다.
  •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 “괜찮아요. 고마워요.”
  • “엄마, 빨리 가요. 아빠가 기다리게 하지 말고.”
  • 여자운이 다가와 정은주를 잡아끌었다.
  • “알았어.”
  • 정은주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서 있는 우도정을 바라보았다.
  • “도정아, 우리 집에 가자. 아빠가 기다리셔.”
  • 우도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우 노부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 정은주는 줄곧 우도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운은 짜증이 나서 또 일부러 힘껏 잡아끌었다. 그러나 정은주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여자운은 더더욱 불쾌했다.
  • 바로 그녀가 홧김에 정은주를 놓고 여건명에게 가려고 할 때 우 노부인이 그녀를 불렀다.
  • “자운아, 정말 남지 않기로 마음먹은 거야?”
  • 우 노부인은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우도정은 그제야 여자운에게 눈길을 돌렸다. 까맣고 긴 생머리를 폭포처럼 드리운 그녀는 외모가 보통이지만, 온몸을 감은 명품만 보면 분명히 엄친딸이었다.
  • “아니요.”
  • 여자운은 전혀 망설임 없이 거절했다.
  • 다행히 마음속의 비웃음을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 ‘내가 그렇게 멍청이로 보이나? 누가 호화로운 삶을 버리고 이렇게 외진 시골에 와서 고생하겠어?’
  • 우 노부인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럼 돌아가.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 가서 네 아빠를 만나 봐.”
  • 여자운은 친아버지에 대한 말이 나오자마자 표정이 굳어졌다.
  • 그들이 오기 전에 여씨 가문에서 이미 그녀의 친부모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녀의 친아버지는 살인범이었다!
  • 지금 감옥에서 무기징역으로 복역하는 중이었다.
  • “우리 아빠는 여건명 한 사람뿐이에요.”
  • 여자운은 말을 마치고 정은주를 억지로 끌고 갔다.
  • “…”
  • 우도정은 어이가 없었다.
  • 우 노부인은 여자운의 단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우도정에게 눈길을 돌렸다.
  • “도정아, 가거라.”
  • “네.”
  • 우도정은 우 노부인을 끌어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었다.
  • “제가 아빠를 보러 갈게요. 그리고 아빠의 억울함을 밝힐 거예요. 저도 아빠를 도와줄 수 있어요.”
  • 그녀는 말을 마친 뒤 우 노부인이 설득할 틈도 없이 천 가방을 들고 돌아서서 떠났다.
  • 마당에는 이미 차 한 대만 남았고 운전기사가 문 옆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녀가 다가가자 운전기사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그녀가 앉은 뒷좌석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 차가 시동을 걸자마자 먼저 차에 타고 있던 여건명이 입을 열었다.
  • “어떤 일은 너도 미리 알아야 해. 북의시에 돌아가면 우리는 너를 여씨 가문의 수양딸로 공개할 거야.”
  • 우도정은 고개를 들어 여건명을 바라보았다. 여건명은 전화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 그녀는 대뜸 눈빛이 싸늘해졌다. 소름 끼치게 싸늘했다. 조금 전의 얌전한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 여건명은 그녀의 눈빛에 마음이 불편했다.
  • 역시 친자식도 직접 키우지 않으면 낯설 수밖에 없다.
  • 그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며 퉁명스럽게 설명했다.
  • “우리 여씨 가문의 사업은 줄곧 고씨 가문의 지원에 의지해 오늘날까지 발전하게 된 거야. 지금 고씨 가문의 도련님이 자운에게 반했고 그래서 두 사람이 진작 혼약을 맺었으니 두 가문의 이익을 위해 네 신분을 억울하게 할 수밖에 없어.”
  • 이 말은 고씨 가문에서 진실을 알게 되면 시골뜨기 친딸 때문에 정략혼인이 깨질까 봐 두렵다는 뜻이었다.
  • “네.”
  • 우도정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 그리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게임을 켜고 이 일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게임을 시작했다.
  • 여건명은 그녀의 이 모습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 ‘산속에서 자란 사람은 단순해서 다루기가 쉽군.’
  • 그는 원래 우도정의 신분이 누군가에게 들켜 여씨 가문의 명예에 불리한 일이 생길까 봐 두려운 데다가 아내의 간청까지 있어서 이번 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그녀를 여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 그는 다시 우도정을 힐끗 보았다. 우도정은 몸을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고 눈을 내리깐 채 열심히 휴대폰을 놀고 있었다.
  • 단지 두 엄지손가락만 화면에서 능숙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딱 봐도 휴대폰을 자주 갖고 논 자세였다.
  • 여건명은 눈살을 찌푸리고 일부러 그녀의 휴대폰 화면을 곁눈질했다.
  • 게임도 아주 격이 떨어지는 퍼즐이었다. 순간 그는 이 딸에게 약간 애틋하던 마음도 말끔히 사라졌다.
  • 그는 심지어 그녀를 데리러 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예의도 없고, 게임에 빠져서 꿈도 없는 사람이 언제 밖에 나가 여씨 가문의 체면을 구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여건명은 그녀의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게임이 기억 퍼즐 포인트라는 것을 여겨보지 못했다.
  • 99쌍의 같은 아이콘이 흐트러진 채 1분간 모습을 드러내는 사이에 아이콘의 위치를 모두 기억하고 같은 아이콘을 두 개씩 클릭해 제거하는 게임이었다.
  • 이 코스에서 그녀는 10초 동안만 기억하고 시작을 눌러 48초 만에 완성했다. 결과 오류율이 1퍼센트밖에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