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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그녀

달콤 살벌한 그녀

정소은

Last update: 2024-04-08

제1화 괴한

  • “어딜 도망가? 이 같잖은 년아! 넌 오늘 밤 아무 데도 못 가. 내 욕구가 해소되면 네년과 안 씨 가문에도 적잖이 한몫 챙겨줄게.”
  • 호텔 스위트룸, 한 젊은 남자가 거칠게 소녀를 자신의 몸 아래에 깔아뭉갠 채 만족스럽게 웃었다.
  • 그 순간, 안효은은 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뜬 그녀의 앞에는 자신의 옷을 헤치고 있는 남자와 그의 손에 들려있는 반쯤 남은 주사기가 보였다.
  • 그녀는 다리를 들어 올려 남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찬 뒤 곧바로 침대 머리맡의 재떨이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 남자가 비틀거리며 침대 위로 쓰러지자 침대 위의 핏자국을 바라보던 안효은은 재빨리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온몸의 피가 들끓는 것만 같았다.
  • 그녀는 이왕 죽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같이 죽겠다는 생각으로 아직 반 정도 약물이 남아있는 주사기를 집어 들어 전부 다 남자의 팔뚝에 주사했다.
  • 하지만 빈 주사기를 내던져버린 뒤에야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왜 호텔방에 있는 거냐고! 난 분명 산채로 땅속에 묻혔는데?’
  •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친어머니에 의해 약물을 투여당한 채 짐승 같은 남자의 침대로 보내졌던 그날로 말이다.
  • 하지만 그녀는 지금 당장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빨리 도망가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다 이 남자의 부하들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었다.
  • 이에 그녀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티 테이블 위에 있던 과도를 챙겨 들고 그곳을 벗어났다.
  • ……
  • 호텔 복도는 어둡고 고요했다.
  • 안효은은 벽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지만 그녀는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뒤쪽에서 어렴풋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 남자의 부하들이 그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더더욱 이곳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었다.
  • 그때 마침 한 방문이 열리며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 이에 그녀는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과도를 움켜쥔 채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끌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여자를 붙잡았다.
  • 안효은은 남자의 멱살을 부여잡은 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손에 쥐고 있는 칼은 그의 목에 가져다 댄 채였다.
  • 그녀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 “제발 도와주세요. 금방 갈게요.”
  •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애원이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차라리 협박에 가까웠다.
  • 커다란 남자의 키는 172cm인 안효은도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가 힘에 부칠 정도였다.
  • 문밖에서는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방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지 않으면 억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듯했다.
  • 품 안의 소녀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한듯한 상황에 윤시우는 안효은을 바라보았다.
  • 소녀의 긴치마는 찢어져 있었고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붉었으며 의식 또한 그다지 또렷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손에 들려있는 칼은 여전히 그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안효은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남자를 끌고 침대를 향해 걸어가며 명령했다.
  • “옷 벗고 올라가세요.”
  • 윤시우는 안효은의 손에 들려있는 과도를 바라보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 옷 단추를 풀어내려 갔다.
  • 하지만 안효은은 그 조차도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단숨에 그의 옷을 벗겨냈다. 이에 윤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 떨어진 재킷과 셔츠를 힐긋 쳐다보았다.
  • ‘괴한이 따로 없군!’
  •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의 상체를 바라보던 안효은은 깊게 파인 쇄골과 선명하게 드러난 근육에 순간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 하지만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에, 안효은은 이불을 끌어올려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 손에 들고 있던 과도는 이불아래 숨긴 채 여전히 남자의 목에 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던 그때 들려온 노크 소리에 안효은은 무의식적으로 흠칫 손을 떨었다.
  • “잘 잡아.”
  • 그 나직하면서도 매력적인 목소리에는 조금의 어이없음이 담겨있었다.
  • 윤시우는 그녀가 실수로 자신을 다치게 할까 걱정되기라도 하듯 과도를 잡고 있는 안효은의 손을 잡아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안효은은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섹시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그의 이목구비는 그려놓은 듯 정교했고 눈매는 살짝 길고 날카로웠으며 엷은 입술은 얼핏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침대에서 뒹구는 것도 이런 식은 아니지.”
  • 윤시우는 그녀의 칼을 빼앗지도 않고 그저 반항하는 그녀의 힘만 제압한 채 자신의 몸을 그녀의 위로 포개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긴치마를 한 번 더 찢어놓았다.
  • 그런 그의 행동에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한가득 드러났다. 마치 복수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다정한 말이 흘러나왔다.
  • “신음소리를 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쳐들어온 사람들이 내가 시체와 뒹굴고 있다고 생각할 거야.”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효은은 자신의 허리를 꼬집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 “으읏…”
  • 그 소리에 윤시우도 손을 멈추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군가가 강하게 방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 안으로 쳐들어온 사람은 바닥에 널려있는 옷가지들과 침대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반라 상태로 무언가 하고 있는 듯하던 남자는 그들이 들어오자 재빨리 이불을 잡아당겨 여자를 가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 살짝 내리깐 두 눈으로 인해 반쯤 가려진 그의 동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처럼 검고도 짙게 깔려있었다.
  • 거기에 더해 그의 늘어뜨린 긴 머리를 발견한 침입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 그들은 윤시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본인들이 먼저 그를 향해 사과했다.
  • “윤 회장님! 회장님께서 여기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당장 나가보겠습니다.”
  • 말을 마친 그들은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그들이 나가고 고개를 돌려 안효은을 바라보던 윤시우는 어딘가 이상한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 시뻘건 눈을 한 채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 “어떡하죠? 저 좀 도와주세요!”
  • 살짝 추켜올린 발그레한 눈가에서는 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에 윤시우는 얼굴을 굳히며 몸을 일으켜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 그녀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그녀와 바짝 붙은 순간 그 역시도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 다만 그는 앞에 있는 이 괴한이 내뱉은 말이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 ‘도와달라고?’
  • “안돼!”
  • 원래부터 낮게 깔려있던 목소리를 더욱 내려 깔며 말하는 그의 말투는 정말이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다만 그가 내뱉은 말이 너무도 단호한 거절이었을 뿐이었다.
  • 하지만 약기운으로 인해 이성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던 안효은은 거칠게 남자를 다시 침대로 끌어당겼다.
  • 윤시우가 멍하니 미처 반항도 하기 전에 안효은이 그의 몸 위로 올라타자 그는 분노를 억누르며 냉소 지었다.
  • “막무가내군!”
  • “절 도와주셔야 해요…”
  • 살짝 올려 뜬 그녀의 동그란 두 눈가에는 유혹적인 홍조가 번져있었고 나긋나긋한 그녀의 말에는 살상력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칼은 그런 것들과는 정반대였다.
  •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그녀의 반쯤 감겨있는 두 눈에는 색기가 가득했고 나직한 목소리는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엽기도, 얄밉기도 했다.
  • “……”
  • 윤시우는 이 소녀가 제멋대로인 데다 막무가내이기까지 하다고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어 소녀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았다.
  • “넌 너무 어려.”
  • 그녀는 이제 고작 열아홉 정도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짐승이 아니었다.
  • “얌전하게 굴어. 그럼 도와줄게.”
  • 분명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였지만 그녀의 행동은 그토록 난폭했다.
  • 윤시우는 그녀를 욕실로 데리고 간 뒤 찬 물을 틀고 그녀를 그 차가운 물줄기 속에 밀어 넣었다.
  • “사실 네가 조금만 얌전하게 굴었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 원래는 꽤 참을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안효은은 그가 내뱉은 말과 욕조 옆에 서서 웃음기까지 머금은 채로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순간 머릿속에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 ‘당신도 당해봐!’
  • 곧이어 그녀는 단숨에 그를 샤워기 아래로 끌어당겼다.
  • 이에 윤시우는 어안이 벙벙한 듯 그녀를 쏘아보며 분노를 누른 채 입을 열었다.
  • “난 널 도와주고 있는 거야.”
  • “그럼 착한 오빠가 제, 제대로, 도와달라고요…”
  • 추위에 겨우 말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말투에는 이루 말로는 다 표현 못할 편집스러움과 광기가 담겨있었다.
  • 이에 윤시우가 멈칫하자 곧이어 그녀는 윤시우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녀는 입안에 퍼지는 피맛을 느끼며 그의 목덜미를 한번 핥았다.
  • 이에 남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안효은을 밀어냈다. 그의 눈빛 속에 혈기가 번졌다.
  • “아주 제대로 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