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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 빌어먹을 집착과 소유욕

  • “……”
  • 그 말에 윤시우는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눈앞에 있는 이 소녀가 그는 꽤나 흥미로웠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자극하고 있는 이 소녀가 말이다.
  • 그는 사실 그날 밤에는 그녀가 일부러 기회를 틈타 자신에게 접근해 온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지난 며칠간 사람을 시켜 그녀를 지켜봤음에도 그 어떤 문제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 이에 윤시우는 비로소 그날 밤 호텔에서의 일은 분명한 사고였다고 단정 지었다. 게다가 그녀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한 방 먹인 일을 전해 듣고는 꽤나 재밌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왜 감당이 안되는데?”
  • 윤시우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이에 안효은은 귀가 간질거렸다. 이내 그녀는 그의 목덜미 쪽에 기대어 소곤거렸다.
  • “당신이 날 꼬시는 것 같아서요!”
  • 행여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봐 소곤거린 것이었지만 목소리 크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터라 주변이 조용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 본인은 취해있는 상태였고 의식이 또렷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 “……”
  • 윤시우의 입꼬리가 더 휘어져 올라가더니 그가 참지 못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 ‘정말이지 별난 여자군. 맞네, 부업으로 괴한짓까지 했었지.’
  • 다시 고개를 숙인 윤시우는 이미 잠들어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얌전해 보였다.
  • 그녀의 외모가 지나치게 매혹적인 탓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윤시우는 그녀를 안아 들고는 룸 안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 “이야기들 나누세요. 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 그가 떠나가자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보아하니 윤 회장님께선 저런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 “하지만 꽤 어려 보이던데요!”
  • “어리긴 하죠. 그래도 그런 얼굴을 어떤 남자가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어쨌든 저였다면… 아마 곧바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겁니다.”
  • 그 말이 끝나자 응큼한 웃음소리가 룸 안에 울려 퍼졌다.
  • “어찌 되었든 윤 회장님께서 좋아하시면 된 거죠. 비슷한 여자로 몇 명 찾아 보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
  • 차 안. 윤시우는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들어있는 소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깔끔하게 정산할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 정산이 되는지 아닌지는 오직 그가 그렇다고 해야만 그런 것이었다. 소녀의 볼을 조물거리던 그의 귓가에 조수석에 앉아있는 여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 씨 가문 말입니다. 형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 “뭐가 그렇게 급한 거지?”
  • 윤시우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마음에 드는지 기분이 썩 괜찮은 듯 작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우리가 다른 여러 재벌가들과 접촉했다는 걸 알고는 조급해진 모양입니다. 우리 쪽에서…”
  • 뒤를 돌아본 여민준은 소녀의 볼을 조물거리고 있는 윤시우의 모습에 순간 충격을 금치 못했다.
  • 윤시우가 누군가와 잠자리를 가졌고 관계가 격렬했던 나머지 그 상대가 병원까지 가게 됐다고 했던 남경호의 말이 생각난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 말이 도중에 끊어진 것이 이상했는지 윤시우가 고개를 들고 여민준을 쳐다보았다.
  • “이 세상에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는 호사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쪽에서 내가 원하는 성의를 보이지 않는데 내가 왜 그쪽 좋은 일을 해야 하지?”
  • 품 안의 소녀가 말소리를 듣고는 뒤척이기 시작했다.
  • 어떤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조용해지고 어떤 사람들은 취하면 시끄러워 지곤 한다. 그리고 안효은은 딱 그 중간이었다.
  • 초반에는 굉장히 얌전했지만 뒤로 가면… 굉장히 시끄러웠다. 그녀는 일어나 앉더니 자신의 볼을 조물거리던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 “예쁜 손이네요…”
  • 이에 윤시우는 그녀가 술이 깬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소녀는 곧이어 그의 얼굴을 감싸 안더니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 “당신 얼굴은 더 예뻐요.”
  • “……”
  • 여민준과 운전기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문 채 감히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 누군가가 자신의 얼굴을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에 대해 윤시우가 얼마나 치를 떠는지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에 그들은 소녀의 용기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 “……”
  • 윤시우 역시 자신의 참을성이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조금은 서늘한 미소이긴 했지만 말이다.
  • 하지만 안효은이 이를 알아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이 사람이 웃으니 더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다음 순간 안효은은 차에서 쫓겨나 길 한복판에 버려졌다. 어리둥절한 채 길가에 앉아있던 안효은은 문득 서러움이 몰려왔다.
  • ‘나 또 버려진 건가?’
  • 그것도 이렇듯 깜깜하고 가로등조차 어두침침한 곳에 말이다… 산채로 땅에 묻히던 순간의 기억이 떠오른 그녀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바보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 그러다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앞에 윤시우가 반쯤 쭈그려 앉았다. 그는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를 넘겨주며 재밌다는 듯 그녀를 향해 물었다.
  • “그렇게 속상했어?”
  • “……”
  • 이제껏 안효은의 눈물에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여 주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 그녀는 취한 상태였고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빛을 따라 자신을 향해 걸어오던 이 남자의 모습만은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당신은 유일하게 날 돌아봐 준 사람이에요!”
  • ‘나 아무래도 당신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을 지옥까지 함께 끌고 내려가고 싶을 만큼 말이에요.’
  • 안효은은 울음을 멈추고 배시시 미소 지었다.
  • 윤시우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지 눈가에 홍조를 머금고 있는 그녀의 동그란 두 눈이 굉장히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마치 버림받은 작은 동물 같았다.
  • “이렇게까지 불쌍했던가?”
  • 윤시우는 몸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황량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 방금 전 그녀를 차에서 쫓아냈던 건 그녀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춘 것도 모자라 그의 턱까지 깨물었기 때문이었다.
  • 이에 그는 그녀에게 겁을 주어 교훈을 주려 했을 뿐 진심으로 그녀를 이곳에 버리고 갈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녀가 이렇게까지 크게 울음을 터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안효은은 움직이지 않은 채 아까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윤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코를 훌쩍이며 어딘가 뒤죽박죽인 말들을 쏟아냈다.
  • “나 진짜 엄청 불쌍해요. 우리 엄마는 내 목숨을 가지고 우리 아빠와 거래를 했다고요. 그러니까… 난 불쌍해요! 하지만 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날 달래주는 사람 하나 없었죠.”
  • “……”
  • 그녀의 말에 윤시우는 순간 멈칫했다.
  • “그들 모두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게 내가 아닐 뿐이죠.”
  • 안효은은 말을 내뱉으며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술기운을 빌려 모든 감정들을 다 쏟아내려는 듯이.
  • “나도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날 아껴주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혹은 그저 달래주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 눈앞에서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안효은은 눈물을 닦아냈다. 아마도 충분히 다 운 모양이었다. 곧이어 그녀의 귓가에 남자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앞으로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 울지 마.”
  • 이에 안효은이 자신이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던 순간 또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계속 울 거야? 얼른 가자. 안 추워?”
  • “가요! 당신을 따라갈래요.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 안효은은 술에 취해 똑바로 걷지도 못했다. 그 지나치게 귀여운 모습에 윤시우는 웃음을 터트렸다.
  • “쯧…”
  • ‘바보 같기는.’
  • 그런 윤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안효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 차에 올라탄 윤시우는 소녀를 생각해 이제 막 한 모금 빨아들인 담배를 버렸다.
  • 하지만 안효은은 계속해서 윤시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두 눈 속에는 마치 빛이 담겨있는 듯했다.
  • 이에 윤시우는 고개를 돌려 잔뜩 취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 “뭘 봐?”
  • “당신이요. 당신은 예뻐요.”
  • ‘마음에 들어.’
  • 안효은은 바보같이 그의 손을 꼭 잡고는 굉장히 안심이 되는 듯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그녀가 잠들자 윤시우는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뽑아내며 안효은을 살피는 여민준을 쳐다보았다.
  • “넌 또 뭘 보는 거야?”
  • 그 말에 여민준은 시선을 거두었다.
  • ‘마음에 담으신 건가? 다른 사람은 보지도 못하게? 이 빌어먹을 집착과 소유욕 같으니라고!’
  • “?”
  • 윤시우는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하며 그런 여민준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정신을 차린 안효은은 코끝에 퍼져오는 익숙한 싱그러운 향기에 자신이 안고 있는 남성용 재킷을 바라보았다.
  • ‘누구 옷이지?’
  • 그녀는 일어나 앉아 주위를 살펴보았다. 커다란 방 안에는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서서 커튼을 젖히면 바로 창밖의 정원을 볼 수 있었다.
  • 이곳은 마당이 딸린 저택이었다. 그녀가 있는 방은 2층이라 시야가 확 트여있어 아래쪽의 상황이 한눈에 보였다.
  • 어젯밤 술에 취해있던 터라 그녀는 대부분의 기억이 없는 상태였다.
  •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윤시우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주려던 것과 실수로 그의 무릎 위에 앉아버린 것, 그리고 그 뒤로는… 오직 그 남자가 다시 자신을 찾으러 돌아오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다.
  • 그 반쯤은 밝고 반쯤은 어둡던 빛 속에서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 “형님, 그 꼬맹이가 왜 또 형님 침대에 있는 겁니까? 어젯밤 너무 격렬…”
  • 남경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