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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안 씨 가문에서 나가

  • “허튼소리 할 거면 입 다물어라.”
  • 원래부터 구겨져 있던 안상진의 얼굴이 그 한마디로 인해 잔뜩 일그러졌다.
  • 안효은의 한심한 아버지는 그제야 마지못해 나와 상황을 정리하고 손님들을 먼저 보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동을 피우던 그 두 사람도 이미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심기가 불편한 안상진은 집안의 모든 잔들을 다 집어던질 기세였다. 이에 안효은은 가볍게 혀를 차며 짐짓 생각해 주는 척 그를 설득했다.
  • “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아니면 우선은 언니더러 안 씨 가문을 떠나 있으라고 하는 게 어떠세요?”
  • “나가라고 해. 지금 당장 꺼지라고. 그리고 영원히 안 씨 가문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해.”
  • 안상진의 한마디에 안지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안효은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삐죽였다. 아래를 향해 내리깐 두 눈이 그녀의 감정들을 잘 숨겨주고 있었다.
  • 안상진의 말은 안 씨 가문에서는 절대적이었다. 그의 한마디에 누구도 감히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었다.
  • 조희연은 울다 기절해 버렸고 안지윤은 그렇게 맨몸으로 집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 사람들에 의해 끌려나가던 안지윤은 마침 고개를 돌린 채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안효은을 발견했다. 이에 그녀는 흠칫 놀라며 다시 찬찬히 보려 했지만 안효은은 이미 고개를 돌린 뒤였다.
  • 하지만 안효은이 가장 의외라고 느꼈던 것은 그녀의 한심한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의 딸을, 그것도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워왔다는 사실에도 그는 조금도 분노하고 있지 않았다.
  • “너도 썩 나가.”
  • 안상진이 안효은을 가리키며 말했다.
  • ……
  • 안효은은 기회를 엿보다 조희연을 찾아가 협력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희연의 방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방 안에서는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어떠한 일로 인해 다투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각자 살아가던 두 사람이었기에 안효은은 그들이 왜 다투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 설마 자신의 한심한 아버지가 겉으로는 아내의 배신을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사실은 이미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 하지만 안효은은 실상 놀아나고 있던 것은 자신이었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 “당시 내가 당신이 지윤이를 데려오는 걸 허락했을 때 나한테 뭘 약속했었는지 잊지 마.”
  • 그가 조희연을 밀치며 사납게 말했다.
  • “당신의 그 사생아를 위해 안효은 그 계집애의 심장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요? 당신 마음속에는 그 천한 여자뿐이니까요.”
  • 밀쳐진 조희연은 순간 발끈하여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 “하지만 알아둬요. 만약 우리 지윤이한테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긴다면 당신과 그 천한 여자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도 무사할 생각 말아요.”
  • 다른 말들은 딱히 안효은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 마디 만은 똑똑히 들었다.
  •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한심한 아버지가 왜 전혀 분노하지 않았던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자신을 두고 거래를 했었던 것이었다.
  • ‘좋아! 무슨 수로 내 것을 가져가는지 지켜보겠어.’
  • 속상함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효은은 저릿저릿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 몸의 모든 모공이 역겨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안효은은 끝내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짜내며 문을 두드렸다.
  • 노크소리에 안에 있던 두 사람은 깜짝 놀란 듯했다. 문을 연 사람은 그녀의 한심한 아버지였다.
  • “네가 왜 여기 있어? 언제 온 거야?”
  • “방금이요! 아빠도 계셨네요. 전 엄마가 걱정이 돼서 살펴보러 온 거예요.”
  • 안효은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어 보였다. 이에 그녀의 한심한 아버지는 간단히 대꾸하고는 제 발 저린 듯 떠나갔다.
  • 방 안에 있는 조희연의 표정도 어딘가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몸상태가 좋지 않은 척하며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 예전의 안효은이었다면 현재 창백한 조희연의 얼굴을 보고 마음 아파했겠지만 지금의 안효은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 부근을 어루만졌다.
  • ‘그래… 차게 식어있네!’
  • 마음이 켕기고 부자연스러웠던 것도 잠시뿐이었다. 조희연은 잠깐 사이에 이미 스스로를 납득시켰고 이내 다시 자신의 딸을 지키고자 하는 위대한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그녀가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이 안효은이 아닐 뿐이었다.
  • “왜 왔어?”
  • 안효은을 보자 안지윤의 안타깝던 모습이 생각난 조희연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 “엄마와 언니를 도와드리려고 왔어요. 전 언니가 이대로 쫓겨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 ‘그럼 재미없잖아. 양어머니와 양딸로 살겠다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
  • 안효은은 속상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조희연이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그 모습은 마치 다정한 모녀같이 보였다.
  • “네가 웬일로? 전에 내가 너더러 지윤이를 대신해 장 대표한테 가라고 했을 때는 죽어도 싫다고 했었잖아. 내가 수를 쓰지 않았다면 네가 거길 갔겠어?”
  • 조희연은 안효은을 전혀 믿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안효은은 이를 신경 쓰며 갖은 방법을 대어 스스로를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상관없었다.
  • “그때는 지윤 언니가 내 친언니라는 걸 몰랐잖아요. 엄마가 왜 남을 도우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그저 이상했었죠…”
  • 안효은은 짐짓 잘 보이려는 듯 조희연에게 물을 따라다 주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안지윤을 돕고자 한다는 안효은의 말은 믿지 않으면서도 안효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조희연은 자연스레 안효은이 건넨 잔을 받아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 “너한테 무슨 방법이 있는데?”
  • “저한테 언니를 다시 안 씨 가문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어요. 게다가 앞으로도 예전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죠.”
  • 조희연이 물을 마신 것을 확인한 안효은은 무척이나 자상하게 물 잔을 다시 가져왔다.
  • “말해봐.”
  • 조희연은 만약 안효은의 방법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앞으로는 안효은에게 조금이나마 잘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하지만 엄마의 작은 무언가가 필요해요.”
  • 안효은이 손을 뻗어 제스처를 취했다.
  • “뭘 말이니?”
  • 조희연의 말투는 꽤나 불친절했다.
  • ‘대가를 요구하는 건 역시나 좋은 물건이 아니야. 우리 지윤이는 달라. 착하고 어른스럽고 다정하지.’
  • “엄마가 갖고 있는 사업들 중 몇 개를 저한테 주세요.”
  • ‘내가 맨 입으로 도와줄 줄 알았나요?’
  • 안효은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양도 서류를 꺼냈다.
  •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생각도 하지 마. 그건 내가 지윤이한테 물려줄 것들이라고. 넌 어쩜 애가 그렇게 악독하니? 네가 지윤이 것을 빼앗아가면 지윤이는 아무것도 없어.”
  • 그녀가 건넨 서류들을 본 조희연은 화가 난 듯 안효은을 밀어냈다. 그러자 그 충격에 안효은이 들고 있던 컵이 흔들리며 안에 담긴 물이 전부 조희연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 이에 안효은은 당황한 척 급히 조희연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와 함께 약간의 어이없음이 드러나 있었다.
  • “엄마, 조심 좀 하시지 그러셨어요. 다 쏟아졌잖아요.”
  • 그녀의 말은 무척이나 다정했지만 조희연은 그 속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자신의 딸이 며칠 못 본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았다.
  • “언니한테 주실 수 있죠. 하지만 저한테 주실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언니가 돌아오는 걸 제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엄마가 수를 써서 손에 넣은 언니의 혼사는 어떡하시려고요? 나 씨 가문에서 혼외자를 받아줄 것 같나요? 현준 오빠가 하겠다고 해도 나 씨 가문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할 거라고요.”
  • 안효은은 조희연의 얼굴을 다 닦아준 뒤 종이를 더 가져다 자신의 손을 닦았다. 그 모습은 마치 살인을 마친 뒤 손을 닦는 동작 같이 보였다.
  • 조희연의 마음속에는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본인이 대단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이에 그녀는 복잡한 마음에 안효은의 말에 반박조차도 하지 않았고 이로써 안효은은 이전의 그 일이 조희연의 계획이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손 끝을 가볍게 두드렸다.
  •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당신은 정말이지 모질군요! 둘 다 당신의 친 자식인데 어떻게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아니면 그 손가락이 없어지면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건가요?’
  • 그녀는 조희연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 손가락 중 하나를 잘라내어 아픈지 아닌지 조희연에게 느껴보라고 하고 싶었다.
  • “너 정말로 지윤이를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는 거니?”
  • 만약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조희연도 무언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는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 이에 그녀는 무척이나 조급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안지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안효은은 진심으로 조금은 부러워졌다.
  • 누구나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 하나쯤은 다 있는데 그녀는 영원히 혼자였다. 이에 그녀는 애정이나 증오와는 상관없이 그저 순수하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