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사신이 난제 세 개를 가지고 경성에 들어와?

  • 이 순간, 이정도, 오황자 이중기도, 팔공주 이향연도, 칠황자 이진도, 내관 왕련도 깜짝 놀라버렸다! 왕연지와 이문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 이준이 살짝 누르자 몇 천 근이 되는 정이 그대로 들어올려지다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 ‘몇 천 근의 정을 정말 가볍게 들어올렸어? 말도 안 돼! 세상에 전혀 없었던 일이야!’
  •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경악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입은 너무 떡 벌어져 입안이 마르는 것 같았다.
  • 이준이 정말 한 번 살짝 누른 것으로 정을 들어올리다니.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다!
  • 가장 먼저 정적을 깬 사람은 이문아였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이준이 짠 틀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여섯째야, 어떻게 한 것이냐?”
  • “누님을 뵙습니다!”
  • 이준은 덤덤하게 인사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기쁨으로 인한 흥분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 “누님, 이건 지렛대 원리라는 것인데 지렛점만 있으면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 이준을 보는 이문아의 눈빛에 당혹감이 스쳤다.
  • “여섯째가 일 년 사이에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노는 등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어. 전에는 네가 학업에는 뜻이 없이 놀기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누님이 몰라 봤던 거구나.”
  • 이문아는 발꿈치를 들어 자신보다 머리 하나 큰 이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순간 이준은 긴장에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 ‘이문아가 지금 날 걱정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일 년 사이에 변한 걸 알고 있어! 놀랍군! 아버지인 황제도 모르는 걸 누나인 이문아가 알고 있다니. 나한테 관심이 많나?!’
  • 그러나 이문아의 친밀감 넘치는 스킨십에 이준은 머쓱해졌다.
  •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저 황궁에서 시위들이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깨우친 것이니 대단한 걸 아는 게 아닙니다. 누님께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제가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 그의 말에 이문아가 활짝 웃었다. 그러자 주변의 모든 것이 색을 잃은 듯,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만 또렷하게 보였다.
  • “그래, 내 기필코 너한테 물어보러 갈게!”
  • 이문아도 황제가 이준의 무예를 시험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린전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준이 이렇게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 물론 이건 무예 재능이라고 할 수 없었다!
  • 이건 뛰어난 재치와 지혜였다!
  • 이문아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 “아바마마, 소자 정을 들어올렸습니다!”
  • 이준은 허리를 숙여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정을 바라보았다.
  • 겨우 정신을 차린 이정은 이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 “네가 무예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짐이 먼저 말했다시피 넌 이 정을 들어올린 것만으로 통과했느니라!”
  • ‘통과가 아닐 리 없잖아.’
  • “아바마마, 성은이 망극합니다!”
  • 한편, 오황자 이중기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 팔공주와 칠황자도 똥을 못 싼 듯 표정이 어두웠다.
  • 왜소한 몸집의 이준이 이렇게 손쉽게 황제의 시험을 통과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이건 속임수잖아!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사전에 그리해도 된다고 하셨으니 지금 뭐라고 할 수 없겠네!’
  • 그러나 의기양양한 이준의 표정을 보는 그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 특히 이중기는 이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이 자식이 지금 임순성에 가지 않으면 앞으로 이 자식을 상대하기 더욱 힘들어질 텐데. 정말 화가 나는군!’
  • 양충식은 이정이 통과라고 말하자 자신의 상전인 이준이 더 이상 황제의 괴롭힘을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 ‘마마, 너무 잘되었습니다!’
  • 이정은 핼쑥해진 얼굴로 손을 저었다.
  • “왕 총관, 짐이 좀 피곤하니 침궁까지 부축하거라.”
  • “네, 폐하!”
  • 정신을 번쩍 차린 왕련은 다급히 다른 내관을 지시해 이정을 침궁까지 모시게 했다.
  • 사람들은 황제가 자리를 뜰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 이정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황자와 공주들밖에 남지 않았다.
  • 다들 복잡한 눈빛으로 이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 오직 이중기만 자리에 남아 이준을 보며 빈정거렸다.
  • “어이, 아우야. 너한테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다들 네가 멍청하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아우 넌 하나도 멍청하지 않아.”
  • 이중기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거렸다.
  • 이준은 당연히 이중기의 말에 담긴 뜻을 알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 “칭찬 감사합니다. 저는 가진 재주가 없어서 이런 속임수밖에 쓸 줄 모르니 앞으로 형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황형들이란 작자를 보니 앞으로 잘 지내기는 글렀군.’
  • 하지만 21세기에서 온 이준이 그들을 무서워할 리 없었다. 그는 여차하면 형들을 혼내줄 생각이었다.
  • 이준은 표정이 살짝 굳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 “그럼, 넌 오늘도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게 많을 것 아니냐? 앞으로 나와 형님들이 널 잘 가르치마.”
  • 말을 마친 이중기는 이문아에게 예를 올리고는 기린전을 빠져나갔다.
  • 이준은 속으로 코웃음쳤다.
  • 이중기가 멍청이는 아니지만 똑똑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 ‘자식, 감히 날 협박해?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지 두고 보자고.’
  • “여섯째야, 오늘 보니 네가 다 큰 것 같구나.”
  • 이문아가 부드러운 얼굴로 이준을 보며 말했다. 따스한 관심이 담긴 그녀의 눈빛에 이준은 흠칫 놀랐다.
  • 이준의 기억을 살펴봐도 그는 이문아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문아가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온단 말인가?
  • ‘심상치 않은데. 왠지 일부러 날 주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설마 내가 원래의 이준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게 아니겠지?’
  • “누님, 예전에는 제가 철없는 모습으로 실망을 끼쳐드렸습니다. 만약 누님께서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 이문아는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시간이 된다면 내 침궁에도 놀러 오너라.”
  • “네, 꼭 그러겠습니다.”
  • 이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이문아의 뒤에 서 있는 왕연지를 힐끗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기린전을 빠져나갔다.
  • 둘이 멀어진 뒤, 왕연지가 앞으로 다가와 이준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설레는 소녀의 감성이 담겨 있었다.
  • “공주마마, 육황자는… 소문과 다르신 듯하옵니다.”
  • 이문아가 평온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 “그러게 말이다. 여섯째에게 정말 내가 모르는 변화가 생긴 것 같구나.”
  • 왕연지는 흠칫 놀랐다.
  • 이문아가 이준을 대한 마음이 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이문아는 다른 황자나 공주를 이준처럼 애틋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 이준과 양충식은 편전으로 돌아갔다.
  • 돌아가는 길 내내 양충식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이준을 칭찬했다.
  • 이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 “양 총관, 그래도 앞으로는 조용히 사는 게 좋을 것 같네. 요즘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나?”
  • “마마 말씀이 맞습니다. 마마 말씀이 다 맞습니다.”
  • 양충식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 그는 이준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 어제의 시가 이준이 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이렇게 완벽한 시를 어딘가에서 보고 와 적재적소에 사용한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 또 오늘 손쉽게 그 무거운 정을 들어올리지 않았는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 모시는 주인이 대단할수록 시종인 그는 기뻤다.
  • 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댈수록 먼저 매맞는 법이야.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야지.”
  • 그는 속으로 계속 이문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 ‘이문아, 좀 이상한데.’
  • 하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이상한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너무 이상하잖아!’
  • “참, 마마.”
  • 양충식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바로 말했다.
  • “어제 폐하 침궁의 우 내관이 성지를 전했는데 낭국(狼国)의 사신이 내일 경성에 들어와 마마들과 함께 조조에 참석할 거랍니다. 그 사신이 난제 세 개를 가져올 텐데 폐하께서는 그 문제를 마마들이 푸셔서 우리나라의 위엄을 떨치라고 하셨습니다.”
  • “난제 세 개?”
  • 이준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 ‘이건 또 무슨 꿍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