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연지는 단장을 바치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시녀 숙자와 함께 아침 일찍 황궁으로 향했다.
왕연지는 승상 왕수녕의 여식으로 경성 재녀로 불릴 만큼 똑똑했다. 그로 인해 그녀는 황제의 총애가 담긴 선물- 특사 어패를 받았다. 이것만 있으면 그녀는 허락을 구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황궁 출입이 가능했다.
“아씨,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숙자는 의아한 얼굴로 왕연지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왕연지: “숙자야, 오늘 장공주께서 나더러 침궁에 부르셨으니 지체하면 안 돼.”
“앗!”
숙자가 깜짝 놀랐다.
“장공주님께서요?”
장공주는 황제의 첫째로 태자와 같은 모친 소생이었다.
태자를 확립한 뒤, 다른 성인이 된 공주와 왕자는 모두 황궁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장공주는 태자와 같은 모친 소생이기에 경녕전(庆宁殿)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궁에 남아 있는 황자도 있었다. 바로 육황자 이준이었다.
장공주는 백성들도 잘 아는 공주였다. 천하 제일 미인답게 경국지색은 물론, 학식이 뛰어났다. 그녀가 지은 시 ‘청평부’는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공주 이문아가 세상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얼마나 똑똑하냐면 그녀가 여인만 아니었다면 태자의 자리가 남에게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로 인해 이문아는 천하 여인들이 숭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문아는 왕연지의 학식을 높이 사서 종종 그녀를 궁에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두 여인은 둘도 없는 친구로 되었다.
왕연지는 눈을 빛내는 숙자를 보면서 피식 미소를 지은 뒤, 살짝 훈계했다.
“숙자야, 궁에 들어가서 그렇게 제멋대로 굴면 안 돼. 지난번에 널 데리고 장공주를 뵈러 갔을 때 넌 계속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잖아. 장공주께서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그냥 지나갔지만 불경의 죄로 다스릴 수 있는 일이었어.”
“알았어요, 아씨…”
숙자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했다. 발그레한 볼이 유난히 귀엽게 비춰졌다.
지난번에 장공주를 만나러 갔을 때는 오랫동안 동경하던 사람을 눈앞에서 처음 보는 거라 속내를 그대로 내비쳤던 것이다.
“그래, 빨리 가자꾸나.”
두 여인은 황궁의 경녕전에 도착했다. 그러다 마침 장공주 이문아가 화려한 연노랑색 치마를 입고 가마에 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는 듯했다.
“소녀 왕연지,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쇤네 숙자,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왕연지와 숙자가 바로 예를 올렸다.
우아한 분위기의 이문아는 왕연지를 보더니 바로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연지 왔구나. 얼른 일어나. 마침 기린전에 가려고 했는데 연지도 함께 가자꾸나.”
왕연지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기린전? 기린전은 황자의 글공부나 무예를 시험하는 곳이 아니야? 공주마마께서 왜 거기로 가신다는 거지?’
왕연지는 거절하지 않고 바로 가마를 탔다. 그렇게 그녀는 이문아와 함께 기린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문아가 ‘호성설’에 대해 언급했다.
“연지야, 이 시 어떻게 생각해? 오늘 널 부른 건 네가 이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서였어.”
왕연지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호성설은 제가 최근에 들어본 시 중 가장 훌륭했어요. 절구 중에서도 완벽했고요. 심 태부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고 칭찬했는걸요. 특히 ‘홀로 얼어붙은 강의 눈을 낚고 있네’라는 부분이 마음에 박혔어요.”
왕연지는 어제 이준에게 특별히 시의 의미를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외로운 배 위에 있는 삿갓 쓴 나그네는,
홀로 얼어붙은 강의 눈을 낚고 있네!
이 ‘외롭다’와 ‘홀로’ 라는 글이 이준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 왕연지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준의 해석을 들은 뒤, 왕연지는 더더욱 이준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문아는 미소를 지었으나 눈빛이 복잡하기만 했다.
“여섯째가 어디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외워 왔는지 참… 이 시를 쓴 사람은 아주 학식이 뛰어난 것 같구나.”
왕연지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공주마마께서는 육황자가 직접 지은 시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인가요?”
“뭐?”
이문아는 왕연지보다 더욱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너는 정말 여섯째가 지은 거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같은 시각, 기린전.
이준은 시위를 시켜 나무토막을 가져오게 한 뒤, 그 나무토막을 묶어서 정보다 더 높은 틀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뭘 하려는 거지?’
황제인 이정은 보고 들은 게 많았지만 그도 이준이 지금 뭘 하려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여섯째가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저런 틀을 짜서 어쩌려는 거야?”
“오라버니가 이상한 행동을 하네요…”
“육황자는 대체 뭘 하시려는 거지? 궁금해 죽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묵묵히 틀을 만들었다.
그가 이곳에 타임슬립해 온 지 일 년이 지났기에 이 시기만 해도 지렛대 원리가 나오기 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걸 사용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민간에서 농민들이 무거운 것을 운반할 때, 무의식적으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는 것 말고는 가벼운 것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만약 그가 지렛대 원리를 이용한다면 손쉽게 정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고대에서 묵자(墨子)가 지렛대 원리를 제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황조는 전에 전국시기를 겪지 않았고 묵자가 나타난 적도 없었으나 지렛대 원리를 제기한 사람도 없었다.
‘아싸, 개이득! 이번에도 나를 위한 미션이군!’
위대한 철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긴 지렛대와 지렛목만 주면 지구라도 들어 올릴 수 있다.”
‘그래! 나 이준에게도 지렛대와 지렛점을 준다면 이 황궁을 들어 보이겠어!’
틀을 모두 완성한 이준은 정과 지렛대를 묶었다. 이제는 지렛대의 다른 한쪽을 살짝 들기만 하면 되었다.
바로 이때, 참다못한 이정이 입을 열었다.
“준아, 지금 뭘 하려는 것이냐?”
이준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아바마마, 소자 이 끝을 살짝 누르기만 하면 정을 들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준은 긴 지렛대를 가리키며 놀란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어떻게 살짝 누르기만 했는데 무거운 정을 들 수 있단 말이지? 아우 허풍이 지나친 거 아니야?”
이준의 말에 이중기가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말이야? 살짝 누르기만 해도 조정 제일 장군 왕승지도 들어올리지 못한 천 근짜리 정을 들어올린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팔공주 이향연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오라버니, 그걸 농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살짝 눌러서 이 거대한 정을 들어올릴 수 있다고요? 못 믿겠는데요.”
이준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양충식은 걱정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준이 또다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이준이 이 무거운 정을 손쉽게 들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준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이준이 즉각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소자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 정을 들어올린다면 통과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이정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네가 이 정을 들어올린다면 무슨 방법을 쓰든지 상관 없이 통과이니라. 짐은 더 이상 널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네, 소자 지금 바로 정을 들어올리겠습니다!”
이준은 지렛대 끝쪽으로 걸어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것을 누르려고 했다.
바로 이때, 장공주 이문아의 가마가 도착했다. 그리고 화려한 이문아와 왕연지가 앞뒤로 가마에서 내렸다.
이문아를 본 이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여인이 바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장공주 이문아란 말이야? 역시 포스가 장난이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