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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뭇산의 새들이 씨가 마른다고?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시군!

  • 뭇산의 새들이 씨가 마르고,
  • 길가를 둘러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구나!
  • 외로운 배 위에 있는 삿갓 쓴 나그네는,
  • 홀로 얼어붙은 강의 눈을 낚고 있네!
  • 호성하(护城河) 위의 것이 바로 흩날리는 하얀 눈이 아닌가? 또 외로이 떠 있는 배 위에서 삿갓 쓴 나그네가 홀로 낚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 앞의 두 구절은 경성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뒤의 두 구절은 호성하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 이것이 바로 풍경을 보고 즉석에서 시를 지은 게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 이준의 말이 끝나자 문곡관 전체도 정적에 휩싸였다.
  •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일곱 걸음만에 시를 짓다니!
  • 그게 정말 가능하다니!
  • ‘육황자가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시를 지을 수 있는 거지?’
  •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학식이 뛰어난 선비이기에 이 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 이준의 시는 아름다우면서도 눈앞의 풍경을 그려넣은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 아주 완벽한 시였다!
  • 사람들은 이준이 방금 지은 시를 속으로 음미하면 할수록 이 시의 절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왕연지 역시 아름다운 눈을 깜박이며 시를 다시 읊어 보았다.
  •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기분이었다.
  • “뭇산의 새들이 씨가 마르고 길가를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눈 온 뒤의 텅 빈 세상을 보여주는구나. 꼭 마치 텅 빈 세상에서 오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 “하지만 뒤의 두 구절이야말로 중점이야. 시의 주제를 명확하게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롭고 우울한 기분을 풍경에 대입했어. 아주 절묘하지!”
  •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 왕연지는 경성에서 내로라하는 재녀였다. 그런 그녀도 이 시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폐인으로 소문난 이준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기 어려웠다.
  • “그럴 리가?”
  • “그럴 리 없어…”
  • 삼황자 이겸과 오황자 이중기의 얼굴은 진작에 사색이 된 지 오래였다. 그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 황자인 그들은 태학원의 태두학사(泰斗学士)의 지도를 받고 있어 시문학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어찌 이 시의 수준을 몰라 보겠는가?
  • 하지만!
  • ‘이준은 학식이면 학식, 무예면 무예,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멍청이인데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인고? 절대 그럴 리 없어!’
  • 둘은 지금 상황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 이때, 옆에 있던 심학선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시를 반복해 음미해 보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이 시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시입니다!”
  • 쿠궁!
  • 완벽한 시라니!
  • 그의 말은 우레처럼 문곡관에 울려퍼졌다.
  • 심학선이 어떤 사람인가?
  • 태부인 그는 태자의 스승이자 천하 문인이 우러러보는 학자로 수많은 문인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했다.
  • 방금 그가 한 평가는 그대로 역사 서적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시라니!
  • 현재 문인들 중 이런 시를 지은 사람은 없었다.
  • 단 한 명도!
  • 심학선 역시 요즘 시를 두고 이렇게 높은 평가를 한 적이 없었다!
  • 이준이 그 선례를 깬 것이다!
  • 이겸과 이중기는 순식간에 벌레 씹은 얼굴이 되고 말았다.
  •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 그러나 심학선이 어떤 사람인가?
  • 황제도 매일 학문에 대해 묻는 사람이었다. 또 세상의 학식을 열로 나눈다고 했을 때, 세상 모든 문인들의 학식을 합해서 하나라고 한다면, 심학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여덟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남국 대학사 서지국의 것이었다!
  • 과장을 보탠 말이기는 했지만 심학선의 재주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 심학선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고 했다면 그게 맞았다.
  • ‘그런데 이 멍청이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시를 지었단 말이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 왕연지 역시 어여쁜 얼굴에 놀란 표정을 담고 있었다.
  •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니… 너무나 높은 평가야! 육황자 이준이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는 거지?’
  • 이준은 심학선의 평가를 듣고 피식 냉소했다.
  • 이 시 ‘강설’은 당조 시인 류종원의 걸작으로 천 년 동안 전해져온 것이었다. 역사상에서 이미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절묘한 시라고 평가를 받았다!
  • ‘심학선 이 자도 진짜 재주가 있는 사람이군. 괜히 유명한 게 아니야!’
  • 현재 조대의 관직은 이준이 공부했던 관직과 다르지만 태부라는 걸 봐서 심학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 고대에서 태부는 황제의 스승을 가리켰다!
  • ‘이중기도 참, 왜 하필 이런 문제를 내서… 마침 딱 맞아떨어지는 시가 있었잖아. 단번에 엄청난 시인이 되었네.’
  • 이준은 속으로 피식 웃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두 황형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 “형님들, 시를 다 지었습니다. 심 태부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다행스럽게 통과한 것 같은데 두분께서 달리 하실 말씀이 없다면 전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 이겸과 이중기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들은 이게 이준의 머리에서 나온 시라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이준이 사람들 앞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라 그들은 도무지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 이준은 슬쩍 미소를 짓고 문곡관에서 빠져나왔다.
  •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어 그는 너무 불편했다.
  • 왕연지 역시 아름다운 눈으로 문곡관에서 나가는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육황자가 평소 보여준 무능력한 모습은 모두 연기란 말인가? 지금까지 숨긴 거야?! 정말 그렇다면 육황자는 너무 무서운 사람인데! 엄청난 학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은 채로 17년을 버티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 왕연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있는 숙자에게 말했다.
  • “숙자야, 이만 가자꾸나!”
  • 시녀 숙자도 방금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왕연지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 “아씨, 육황자 너무 대단한데요…”
  • 숙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겸 형제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 문곡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양충식은 이준이 어두운 얼굴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시를 짓지 못했다고 생각해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했다.
  • “마마, 시라는 것은 원래 일반인이 짓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마께서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마마께서 임순성이든, 어디를 가시든 제가 마마의 옆을 지키겠습니다!”
  • 이준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양충식을 보자 약간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 “양 총관, 그동안 내 시중을 드느라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난 임순성에 가지 않아도 되네.”
  • “네?”
  • 양충식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내가 완벽한 시를 지어서 통과했지 뭔가!”
  •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양충식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 “마마, 소인에게 농을 하지 마십시오…”
  • ‘마마께서 완벽한 시를 지었다고? 이게 농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마마께서는 대구법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인데…’
  • 그러나 다음 순간, 양충식은 왕연지가 시녀 숙자와 함께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리기 전에 왕연지가 빠른 걸음으로 이준의 앞에 서더니 예를 올리고 말했다.
  • “소녀 왕연지, 육황자 마마를 뵙사옵니다! 육황자 마마의 글재주에 소녀 오늘 깜짝 놀랐지 뭡니까. 소녀 평소 시를 좋아하는데 오늘 육황자 마마의 시를 듣고 크게 감탄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소녀 감히 육황자 마마께 이 시의 뜻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소녀의 소원입니다!”
  • ‘뭐라고?’
  • 양충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 ‘마마에게 글재주가 있었다고? 무슨 글재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경성 제일 재녀 왕연지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 마마께 학문에 대해 묻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