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하(护城河) 위의 것이 바로 흩날리는 하얀 눈이 아닌가? 또 외로이 떠 있는 배 위에서 삿갓 쓴 나그네가 홀로 낚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앞의 두 구절은 경성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뒤의 두 구절은 호성하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풍경을 보고 즉석에서 시를 지은 게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이준의 말이 끝나자 문곡관 전체도 정적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모두 경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일곱 걸음만에 시를 짓다니!
그게 정말 가능하다니!
‘육황자가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시를 지을 수 있는 거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들 학식이 뛰어난 선비이기에 이 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의 시는 아름다우면서도 눈앞의 풍경을 그려넣은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아주 완벽한 시였다!
사람들은 이준이 방금 지은 시를 속으로 음미하면 할수록 이 시의 절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연지 역시 아름다운 눈을 깜박이며 시를 다시 읊어 보았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가 치는 기분이었다.
“뭇산의 새들이 씨가 마르고 길가를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눈 온 뒤의 텅 빈 세상을 보여주는구나. 꼭 마치 텅 빈 세상에서 오는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 같아…”
“하지만 뒤의 두 구절이야말로 중점이야. 시의 주제를 명확하게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롭고 우울한 기분을 풍경에 대입했어. 아주 절묘하지!”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것만 같았다!
왕연지는 경성에서 내로라하는 재녀였다. 그런 그녀도 이 시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폐인으로 소문난 이준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기 어려웠다.
“그럴 리가?”
“그럴 리 없어…”
삼황자 이겸과 오황자 이중기의 얼굴은 진작에 사색이 된 지 오래였다. 그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황자인 그들은 태학원의 태두학사(泰斗学士)의 지도를 받고 있어 시문학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어찌 이 시의 수준을 몰라 보겠는가?
하지만!
‘이준은 학식이면 학식, 무예면 무예,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멍청이인데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는 말인고? 절대 그럴 리 없어!’
둘은 지금 상황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이때, 옆에 있던 심학선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시를 반복해 음미해 보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시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시입니다!”
쿠궁!
완벽한 시라니!
그의 말은 우레처럼 문곡관에 울려퍼졌다.
심학선이 어떤 사람인가?
태부인 그는 태자의 스승이자 천하 문인이 우러러보는 학자로 수많은 문인들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했다.
방금 그가 한 평가는 그대로 역사 서적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완벽한 시라니!
현재 문인들 중 이런 시를 지은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도!
심학선 역시 요즘 시를 두고 이렇게 높은 평가를 한 적이 없었다!
이준이 그 선례를 깬 것이다!
이겸과 이중기는 순식간에 벌레 씹은 얼굴이 되고 말았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나 심학선이 어떤 사람인가?
황제도 매일 학문에 대해 묻는 사람이었다. 또 세상의 학식을 열로 나눈다고 했을 때, 세상 모든 문인들의 학식을 합해서 하나라고 한다면, 심학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여덟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남국 대학사 서지국의 것이었다!
과장을 보탠 말이기는 했지만 심학선의 재주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심학선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고 했다면 그게 맞았다.
‘그런데 이 멍청이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시를 지었단 말이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왕연지 역시 어여쁜 얼굴에 놀란 표정을 담고 있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시라니… 너무나 높은 평가야! 육황자 이준이 어떻게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는 거지?’
이준은 심학선의 평가를 듣고 피식 냉소했다.
이 시 ‘강설’은 당조 시인 류종원의 걸작으로 천 년 동안 전해져온 것이었다. 역사상에서 이미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절묘한 시라고 평가를 받았다!
‘심학선 이 자도 진짜 재주가 있는 사람이군. 괜히 유명한 게 아니야!’
현재 조대의 관직은 이준이 공부했던 관직과 다르지만 태부라는 걸 봐서 심학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고대에서 태부는 황제의 스승을 가리켰다!
‘이중기도 참, 왜 하필 이런 문제를 내서… 마침 딱 맞아떨어지는 시가 있었잖아. 단번에 엄청난 시인이 되었네.’
이준은 속으로 피식 웃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두 황형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형님들, 시를 다 지었습니다. 심 태부의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다행스럽게 통과한 것 같은데 두분께서 달리 하실 말씀이 없다면 전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이겸과 이중기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게 이준의 머리에서 나온 시라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이준이 사람들 앞에서 즉석에서 지은 시라 그들은 도무지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준은 슬쩍 미소를 짓고 문곡관에서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려 있어 그는 너무 불편했다.
왕연지 역시 아름다운 눈으로 문곡관에서 나가는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육황자가 평소 보여준 무능력한 모습은 모두 연기란 말인가? 지금까지 숨긴 거야?! 정말 그렇다면 육황자는 너무 무서운 사람인데! 엄청난 학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티를 내지 않은 채로 17년을 버티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왕연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에 있는 숙자에게 말했다.
“숙자야, 이만 가자꾸나!”
시녀 숙자도 방금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왕연지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씨, 육황자 너무 대단한데요…”
숙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사람 모두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겸 형제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문곡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양충식은 이준이 어두운 얼굴로 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시를 짓지 못했다고 생각해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했다.
“마마, 시라는 것은 원래 일반인이 짓기 어려운 것입니다. 마마께서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마마께서 임순성이든, 어디를 가시든 제가 마마의 옆을 지키겠습니다!”
이준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 양충식을 보자 약간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양 총관, 그동안 내 시중을 드느라 고생이 많았네. 하지만 난 임순성에 가지 않아도 되네.”
“네?”
양충식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완벽한 시를 지어서 통과했지 뭔가!”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충식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마, 소인에게 농을 하지 마십시오…”
‘마마께서 완벽한 시를 지었다고? 이게 농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마마께서는 대구법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인데…’
그러나 다음 순간, 양충식은 왕연지가 시녀 숙자와 함께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앞으로 다가가 예를 올리기 전에 왕연지가 빠른 걸음으로 이준의 앞에 서더니 예를 올리고 말했다.
“소녀 왕연지, 육황자 마마를 뵙사옵니다! 육황자 마마의 글재주에 소녀 오늘 깜짝 놀랐지 뭡니까. 소녀 평소 시를 좋아하는데 오늘 육황자 마마의 시를 듣고 크게 감탄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소녀 감히 육황자 마마께 이 시의 뜻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소녀의 소원입니다!”
‘뭐라고?’
양충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마에게 글재주가 있었다고? 무슨 글재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경성 제일 재녀 왕연지가 사람들 앞에서 우리 마마께 학문에 대해 묻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