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그는 얄미워
- 정신을 차린 박강현의 눈앞에 있는 건 자신의 배 위에 앉아 한 손으로는 그의 잠옷 앞섶을 붙잡은 태 한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여자였다.
- 머리가 아팠다. 막 잠에서 깬 박강현의 잠긴 목소리는 낮고 굵직했다.
- “놔.”
- 박강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와 조금 전보다는 자신의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이 풀린 것을 느낀 안소율은 화난 다람쥐 같은 모습으로 두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소리쳤다.
- “먼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손부터 풀어요!”
- 그 말에 박강현은 손을 풀었다. 하지만 한소율의 목에는 이미 퍼렇게 졸린 자국이 나있었고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 그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 “누가 너더러 들어오래.”
- 그러자 안소율이 제 발 저린 듯 말했다.
- “이 시간까지 안 일어나길래 기절이라도 한 줄 알고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돼서 들어와 본 거죠.”
- 말을 마친 그녀는 괜히 더 마음이 켕겼다.
- 그녀가 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박강현은 분명 아무 문제 없이 잘 자고 있었다.
- 하지만 그녀가 들어온 뒤 박강현의 예쁜 얼굴에는 멍이 생겼고 입가에는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 이에 안소율은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무언가 더 할 말을 생각하려 머리를 굴렸다.
- 한편 박강현은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지나치게 높은 체온을 알아챘지만 그대로 자신의 배 위에 앉아있는 그녀로 인해 그는 끝내 표정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 “언제까지 내 위에 앉아있을 셈이야?”
- 한때 서울의 명문가 규수들이 한 가지 화제를 두고 토론을 벌인적이 있었다.
- 도대체 그 누가 무슨 짓을 해야 박강현이라는 이 대마왕을 진정으로 화나게 할 수 있는지 말이다.
- 그리고 만약 지금의 안소율이 그 토론현장에 있었다면 그녀는 아마 그녀들에게 그를 한 대 때려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 자신이 아직 박강현의 위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안소율은 황급히 그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 왜인지 모르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그녀는 그의 방에 들어왔고, 그의 침대 위에 올라갔으며, 그를 때렸다…
- 하지만 그녀는 위험이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반격을 했을 것이고 먼저 그녀의 목을 조른 것은 박강현이었다.
- 그녀의 행동은 그저 조건반사였을 뿐이다.
- 하지만 마음속으로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잘못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이에 그녀는 솔직하게 그에게 사과했다.
- “미안해요, 박강현 씨. 동의 없이 당신 방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거였어요.”
- 말을 마친 안소율은 급히 박강현의 방을 뛰쳐나갔다.
-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박강현은 원래부터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신혼 둘째 날부터 박강현을 때렸으니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 ……
- 방에 남아있는 박강현은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 그의 깊은 눈동자는 마치 고요한 호수에 누군가 돌멩이 하나를 던져 넣은 듯 잔잔한 파동이 일고 있었다.
- 그는 자신이 휴식을 취할 때 종래로 누군가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 본가의 사람들도 규칙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감히 그의 방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었고, 더 타운 저택에서는 더더욱 그럴 일이 없었다.
- 아무도 이곳에 묵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기에 그가 성인이 되고 권력을 잡은 뒤로는 더는 이 같은 상황은 벌어진 적이 없었다.
- 그가 또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 그는 그녀의 목의 졸린 자국을 똑똑히 보았고, 자신이 얼마나 강하게 그녀의 목을 졸랐는지 알 수 있었다.
- 하지만 그 꼬맹이는 그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도리어 자신이 그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 드물게 일어난 감정의 파동은 불면증으로 인한 짜증까지도 삼켜버렸다.
- 하지만 방을 뛰쳐나간 안소율은 박강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녀가 음식들을 다시 데워놓고도 조금 더 기다린 뒤에야 박강현이 느릿느릿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안소율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부러 침착한 척 진정성 어린 미소를 지었다.
- “아침 드세요, 박강현 씨.”
- 박강현은 그런 안소율을 힐긋 쳐다보았다.
- ‘저 녀석은 뒤끝이라고는 전혀 없는 건지 매번 만날 때마다 항상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있군.’
- 그의 시선이 그녀의 목에 난 검푸른 자국 위에 머물렀다. 그는 그것이 꽤나 눈에 거슬렸다.
- 안소율이 미소를 지은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 “박강현 씨, 할아버지께서 전화하셨는데, 주말에 이곳으로 식사하러 오신대요.”
- 안소율은 무언가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조금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녀는 자신에게 맞은 박강현이 화가 너무 많이 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박강현은 순간 온몸으로 한기를 뿜어냈다.
- ‘지금 할아버지를 가지고 날 협박하려는 건가?’
-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난 밖에서 사 온 음식은 먹지 않아. 넌 오늘 마당의 흙을 전부 고르고 잡초들을 뽑아 놔.”
- 말을 마친 박강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저택을 나섰다.
-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박강현의 모습에 안소율은 방금 전까지도 마음속에 남아있던 약간의 미안함이 전부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 그녀더러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라고 한 것 때문이 아닌, 그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자그마치 만 2 천 얼마나 주고 사 온 음식을, 돈이 아까워 자신 것은 차마 사지도 못한 그 음식을, 저 남자는 단 한마디 말로 거절해 버렸기 때문이았다.
- 그건 정말이지 너무 예의 없는 짓이었다. 그녀는 목이 졸린 것에 대해서는 딱히 화가 나지 않았다. 필경 그녀가 먼저 그의 방에 쳐들어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음식을 낭비하면 안 되지! 돈을 낭비하면 안 되는 거라고!’
- 그는 정말이지 얄미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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