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당신들은 정말이지 무례하군요
- 의심할 여지 없이 단호한 나가라는 한마디에 안소율은 깜짝 놀라 순간 물통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 그녀는 박강현이 결혼을 못하고 있었던 것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 그는 굉장히 잘생겼지만 무척이나 사나웠다.
- 하지만 그녀는 박강현을 잘 보살피겠노라 박호진과 약속을 했었기에 그런 그를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 이에 잠시 생각을 굴리던 안소율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 “저 요리 잘해요. 집안 일도 알뜰하게 잘하고요. 사람도 잘 보살펴요.”
- 소파 위에 앉아있는 박강현의 모습은 마치 겨울날 마을의 지붕 처마 끝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만큼이나 차가웠다.
- 아름답지만 다치기도 쉬웠다. 하지만 안소율은 두렵지 않았다. 어릴 적 간식거리가 필요할 때면 그녀는 고드름마저도 따다가 아이스크림처럼 오독오독 씹어먹곤 했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그런 차가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한 사람은 앉은 채, 한 사람은 선 채로, 그렇게 두 사람은 말없이 있었다.
- 그 순간 갑자기 박강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박강현이 기다란 손가락을 휴대폰 위에서 되는대로 움직이자, 수화기 너머에서 박호진의 경고가 흘러나왔다.
- “아내를 잘 보살펴 주거라. 앞으로 그 아이도 더 타운에서 지내게 될 거다. 만약 네 아내를 쫓아내거나 한다면… 영원히 그 여자를 박 씨 가문에 들일 생각하지 말거라!”
- 이에 박강현이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 말을 마친 박강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안소율을 바라보았다.
- “날 보살피겠다고?”
- 안소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박강현의 눈가에 있는, 마치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 작은 점으로 향했다.
- 그때 갑자기 박강현이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는 마치 대마왕이 사냥감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듯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 “이곳에 남겠다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주지!”
- ‘지내기 편한 곳은 아닐 거야. 감히 그 늙은이가 날 협박해 혼인신고를 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젠 내 집에 발까지 들일 생각이라면 그 후과 역시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할 거야.’
- 하지만 이 결혼이 순전히 박호진의 협박 아래 이루어진 결과이며 박강현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안소율은 이곳에 남아도 된다는 박강현의 말에 얼굴 한가득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 달처럼 휘어진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에는 순수하게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박강현의 음산한 눈빛이 순간 괜스레 멈칫했다.
- 그러는 와중 안소율은 이미 짐을 챙겨 들고 다른 한쪽 발까지 저택 안으로 내딛고 있었다.
- “박 대표, 어디서 이런… 특별한 미인을 데려온 거야?”
- 현관을 들어서던 안소율은 하마터면 꽃무늬 셔츠를 입은 한 남자와 부딪칠 뻔했다.
- 그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가볍기 그지없는 한마디에 그녀는 그제야 이 저택에 박강현 말고도 여러 명의 남녀가 더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거실 여기저기에는 술들이 널려있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 하지만 박강현의 주변에만 마치 장벽이라도 쳐져 있는 듯 그는 혼자 다른 한쪽에 앉아있었고 방금 전 박강현이 말을 하고 있을 때에는 다들 조용히 있었던 데다 안소율은 문 밖에 서있었던 터라 그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 그리고 현재 열몇 쌍의 눈동자들이 전부 안소율에게 향해 있었다.
- 현관 안으로 들어선 안소율을 발견한 그들은 술 냄새를 풍기며 안소율을 둘러싸더니 그녀를 위아래로 평가해 대기 시작했다.
- “하하, 꽤 특별하긴 하네. 촌스러운 꼴을 보니 얼마 전 발굴해 낸 유물인가?”
- “박 대표 취향이 바뀐 거야? 유아같이 예쁜 여자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이런 초라한 애를 마음에 들어 할 수가 있는 거지?”
- “생긴 건 꽤 예쁘장하긴 한데, 다 자란 건 맞는 거야?”
- 안소율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지만 박강현은 그들을 저지하기는커녕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가만히 있는 박강현의 모습에 그들은 더욱더 거리낌 없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 만약 보통의 여자였다면 이렇게 많은, 그것도 다들 번듯하게 차려입고 있는 남녀들에게 둘러싸인 채 놀림거리가 되어버린 상황에 그저 자비감과 패닉에 휩싸였을 것이다.
- 하지만 안소율은 달랐다. 온갖 고생을 겪으며 자라온 소녀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굳세기 그지없었다.
-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사람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내뱉었다.
- “당신들은 정말이지 무례하군요.”
유료회차
결제 방식을 선택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