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 박강현은 그저 그렇게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았다. 습관적으로 찌푸린 그의 두 눈 아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 이내 해열제가 작용하기 시작하며 안소율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더니 서서히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
• 그녀는 어렴풋이 옆집 오빠의 모습이 박강현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 안소율이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다음날 오후 1시였다.
• 지난밤 내내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날이 밝고 열이 내린 뒤, 오후까지 자다가 배가 고파 깨어난 것이었다.
• 안소율은 확실히 꽤나 건강했다. 고열로 쓰러졌음에도 약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 침대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재빨리 마당으로 달려 나가 난초들의 상태를 살폈다. 난초들이 아무 문제 없이 심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 현재 굉장히 배가 고픈 상태였지만 어제저녁에 차려놓은 음식들은 치워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 그녀는 국수를 삶았다. 하지만 차마 계란은 넣지 못했다. 현재 그녀는 박강현을 먹여 살려야 했고 난초 값 또한 물어줘야 했기에 단 한 푼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 국수가 한창 삶아지고 있을 때, 박호진이 안소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가 궁금한 듯 물었다.
• “여보세요? 소율아, 요즘 어떻게 지내니? 그 자식이 괴롭히지는 않던? 기분 나쁜 일 같은 거 있으면 꼭 이 할아버지한테 말하거라.”
• 안소율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고아인 그녀는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한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 그러다 그녀는 문득 어젯밤 어렴풋이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박강현이 아픈 그녀를 보살펴 주었던 것이다.
• 안소율은 누군가 자신에게 하나만큼 잘해주더라도 그것을 열 만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이에 그녀는 진지하게 답했다.
• “전 엄청 잘 지내요. 박강현 씨가 절 괴롭힌 적도 없고요.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 그런 안소율의 대답에 박호진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래 그래, 착하구나. 그 녀석을 보살피느라 네가 고생이 많다.”
• 자신의 손자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박호진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 이에 박강현이 결혼한 사실을 숨겨야겠다는 그의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가문의 그 누구도 이 두 사람을 방해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박호진과 몇 마디 말을 더 주고받은 뒤 전화를 끊은 안소율은 계단 어구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박강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휴대폰을 육수 안에 빠트릴 뻔했다.
• “박강현 씨, 출… 출근한 거 아니었어요?”
• 박강현의 입가에 아직 남아있는 멍자국에 안소율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더 타운에 온 지 고작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첫날에는 박강현을 때렸고, 둘째 날에는 박강현의 마당을 망쳐놓기까지 했음에도 박강현은 아픈 그녀를 보살펴 주었다.
• 안소율이 보기에 자신이 남의 물건을 망가뜨려 놓았으니 배상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 그렇기에 박강현의 태도가 아무리 악랄하더라도 그녀는 박강현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그녀가 박강현에게 가장 크게 불만을 품고 있는 점은 아마도 음식을 낭비한 것에 대한 것일 것이다.
• 박강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의 국수를 바라보다 또 현재 시간을 생각한 안소율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저기, 박강현 씨, 국수를 삶고 있는데 드실래요?”
• 안소율은 박강현이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어제의 음식들에 대해서도 그는 개도 안 먹을 음식이라고 평가했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박강현은 곧게 주방을 향해 걸어오더니 식탁 앞에 앉는 것이었다. 안소율은 깜짝 놀랐다.
• ‘먹겠다는 뜻인가?’
• 이에 안소율은 국수를 조금 더 삶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 박강현을 위해 계란 프라이도 하나 만들었다. 하얀 국수에 파릇파릇한 야채를 곁들인 뒤, 계란 프라이를 얹고, 그 위에 다진 파를 조금 뿌렸다.
• 그녀의 국수는 그렇듯 단출했고, 평소 박강현이 먹는 그 산해진미를 우려낸 육수로 만든 국수와는 전혀 달랐다.
• 하지만 한 입 먹어보던 박강현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 밖에 꽤나 맛있었다.
• 박강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안소율은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그제야 안도하며 자신도 먹기 시작했다.
• 그녀의 그릇에는 계란이 없이 그저 야채뿐이었다. 박강현 역시 이를 발견했지만 그는 이에 대해 딱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그저 이 꼬맹이는 계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 박강현의 입장에서는 돈 때문에 계란 하나를 아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