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그녀가 박강현을 때렸다
- 저택을 청소하는 일은 평소 김미진이 몇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시키는 일이었다.
- 그런 일을 안소율 혼자서 하려니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 시작한 일이 끝마쳤을 때는 이미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있었다.
- 일을 마친 안소율은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스마트 욕조의 사용법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 김미진은 안소율에게 진공청소기의 사용방법과 세탁기의 사용방법은 알려줬지만 안소율이 살았던 산골에서는 가마솥에 물을 끓어 목욕을 했었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샤워기조차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그녀가 스마트 욕조의 사용법을 알리가 만무했다.
- 이에 안소율은 김미진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 늦은 시간에 어른의 휴식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 하지만 위층에 있는 남자를 생각해 보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분명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었다.
- 이에 한참을 이것저것 눌러보던 그녀는 차라리 찬물로 씻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건강한 사람이었고 찬물로 씻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씻고 나온 안소율은 재채기를 몇 번 하고는 너무 피곤했던 터라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
- 그녀의 방은 크고 예뻤다. 안소율은 단 한 번도 묵어본 적이 없는 그런 방이었다.
-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노라면 안소율의 짐은 그 큰방에서 고작 작은 서랍 하나 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았고 그녀 본인 역시 큰 침대의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잠들어있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사람처럼 애처로웠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안소율은 6시에 딱 맞춰 잠에서 깼다.
- 어제 찬물로 씻은 탓인지 약간 열이 나는 것도 같았지만 이제껏 건강했던 그녀는 이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녀는 세수를 마친 뒤 그럴듯한 아내처럼 곧바로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 하지만 주방으로 들어간 안소율은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 안에는 술과 음료수들만 들어있을 뿐 야채나 고기 같은 식재료들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 어제 김미진이 박강현은 신선한 것만 먹는다고 말해줬던 것이 생각난 그녀는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냉장고에 넣어둔 식재료는 신선하지 않은 거냐고 말이다.
-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 봤자 소용이 없었기에 안소율은 식재료들을 사기 위해 급히 문을 나섰다.
- 찬바람을 맞아가며 주위를 한 바퀴 돌았지만 근처에 있는 건물들은 전부 다 하나하나의 작은 주택들이었을 뿐 식재료를 살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그러다 결국 디저트 가게를 하나 찾아낸 그녀는 그곳에서 아침식사가 될 만한 것들을 조금 살 수 있었다.
- 하지만 빵 몇 개와 수프의 가격이 만 2 천얼마나 한다는 것을 발견한 안소율은 그 가격에 충격을 먹고는 박강현이 먹을 것만 샀다.
- 자신 것까지 사기에는 돈이 아까웠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휴게소에서 산 컵라면을 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 그렇게 아침을 사들고 급히 집으로 뛰어간 그녀는 얌전히 박강현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이마는 더욱 뜨거워져가고 있었다.
- 오전 열한 시가 되어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박강현에 바른생활 소녀였던 안소율은 지금 이 시간까지 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그녀는 점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박강현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닐지, 혹시 쓰러진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 이에 안소율은 눈 딱 감고 2층으로 향했다.
- 그녀는 자신의 그 쓸모없는 남편을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위층으로 올라가 박강현의 방앞에 도착한 안소율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 ‘역시 쓰러진 거였어! 확실히 쓰러진 것 같아!’
-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안소율은 곧바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 안으로 들어간 그녀의 눈에 보인 건 침대 위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박강현의 모습이었다.
- 그는 흰 이불속에 묻혀있었고 잠옷 아래단이 말려 올라가 그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허리가 일부분 드러나 있었다.
- 안소율은 커튼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줄기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단 한 번도 이토록 유혹적인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순박한 산골 소녀인 안소율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 아름다운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박강현이 쓰러진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힌 채 그를 살펴보던 안소율은 무의식 적으로 침을 삼켰다.
- 그 순간 박강현이 번쩍 눈을 뜨더니 사나운 기세로 곧바로 손을 뻗어 안소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 이 순간 이전까지만 해도 박강현에 대한 안소율의 인상은 그저 나태하고, 내뱉는 말이나 하는 행동 모두 거리낄 것이 없는, 박호진조차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내키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대마왕이었다.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어떤 위험을 느낄 수 있었다.
- 그것은 마치 독사 같은, 극한의 한기를 품고 있는 위험이었고, 멧돼지를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 위험한 느낌이었다.
-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마 이 같은 상황에 겁을 먹었겠지만 목이 졸린 안소율의 첫 반응은 반격이었다.
- 그녀는 박강현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그런 그녀보다 상대가 한 발 빨리 그녀를 잡아당긴 탓에 안소율은 힘을 잃고 그대로 박강현의 몸 위에 엎어졌다.
-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목을 조르는 손에는 더욱더 힘이 실려가고 있었다.
- 가슴에서 느껴지는 짓이겨지는 듯한 통증과 강렬한 숨 막힘에 안소율은 화가 났다.
- 그녀는 박강현의 몸 위에 올라타더니 심지어는 그의 손이 아직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박강현의 얼굴을 향해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 목숨이 위협을 당하는 상황에서 안소율의 눈에는 미남이나 멧돼지나 별다를 것이 없었다. 무조건 죽기 살기로 덤벼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얼굴 위로 내리 꽂힌 그녀의 주먹에 박강현은 완전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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