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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쿠키와 고백

  • 집으로 향하는 길은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다.
  • 신호에 걸릴 때마다, 저택으로 이어지는 굽은 길을 지날 때마다 그는 마치 원하지도 않는 장례식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 누군가의 장례식이 아니었다.
  • 오늘 끝나게 될 건, 지난 6년 동안 자신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마지막 희망이었다.
  • 하정우는 말없이 운전대를 힘껏 움켜쥐었다.
  • 사무실 서랍 속 결혼증명서에는 이름 두 개만 적혀 있었다.
  • 사신.
  • 그리고 야묘.
  • 성도, 주소도, 연락처도 없었다.
  • 남아 있는 건 ‘야묘’라는 이름 하나뿐.
  • 6년 동안 찾아 헤맨 끝에 손에 쥔 것도 고작 그것뿐이었다. 술에 취한 채 남긴 서명과 흐릿한 기억, 헬기 좌석에 남아 있던 핏자국, 그리고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그녀의 체온뿐이었다.
  • 저택의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 반듯한 직선과 회색 석재, 완벽할 만큼 좌우가 맞춰진 대칭 구조.
  • 품위 있으면서도 차가운 그 저택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짊어진 가문과 꼭 닮아 있었다.
  • 차를 정원 옆에 세운 하정우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 달콤한 버터 향이 먼저 코끝을 스쳤다.
  • 박영숙은 쿠키를 굽고 있었다.
  • 따뜻한 조명이 비추는 주방 한가운데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반죽을 만지는 모습은 태양그룹을 움직이는 실세라기보다 평범한 할머니에 가까웠다.
  • “왔구나.”
  • 박영숙은 환하게 웃으며 하정우를 끌어안았다.
  • 라벤더와 꿀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 그 품에 안기면 그는 언제나 태양그룹 대표가 아니라 열두 살 손자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 “안 올 줄 알았는데.”
  • 박영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 모델 아가씨랑 데이트라도 있는 줄 알았지.”
  • 역시 그 이야기였다.
  • 달콤하게 웃으며 던지는 말이었지만, 결국은 그 여자와 관계를 정리하라는 뜻이었다.
  • 하정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주방 맞은편에 서 있던 하지원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오빠를 바라봤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 박영숙은 다시 반죽을 치대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 “정우야, 그 모델이랑은 이제 정리해야 한다.”
  • 하정우는 잠시 굳은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 “사람 붙이셨어요?”
  • 박영숙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저었다.
  • “그럴 리가.”
  • 하정우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 할머니가 거느린 정보망은 웬만한 정보기관보다 촘촘했다.
  • 모를 리가 없었다.
  •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 그는 아일랜드 식탁에 가볍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 박영숙은 손을 씻고 앞치마를 벗었다.
  • “지원아, 오븐 좀 보고 있어.”
  • “네, 할머니.”
  • 하지원이 조용히 대답했다.
  • 박영숙은 하정우를 데리고 유리 온실로 향했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 “좋은 소식부터 들을래요, 나쁜 소식부터 들을래요?”
  • “나쁜 소식부터.”
  • 박영숙은 망설이지 않았다.
  • “가문의 반지를 잃어버렸습니다.”
  • 박영숙은 놀라지도, 다그치지도 않았다.
  •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 계속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 “죄송합니다. 사무실도 뒤지고 차 안도 다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 “누군가 그 반지를 팔려고 했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내 귀에는 들어온다.”
  • 박영숙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 “아무 연락도 없었으니 반지는 안전해. 네 방이든 차 안이든 어딘가에 있을 거다.”
  • 하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천천히 뒷목을 쓸어내렸다.
  • 반지는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 6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자신의 아내가 된 그 여자가 가져갔고, 지금도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 “그럼 좋은 소식은?”
  • 박영숙의 말에 하정우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 “강씨 가문과 결혼하겠습니다.”
  • 박영숙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 놀라서가 아니었다.
  • 결국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전화기로 향했다.
  • “바로 연락해야겠구나.”
  • 짧게 말한 뒤 그대로 온실을 나갔다.
  • 홀로 남은 하정우는 창밖 정원을 바라봤다.
  • 유리에 비친 자신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반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가락 위에 있었다.
  • 6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한 여자와 결혼했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얼굴도, 목소리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녀가 자신의 반지를 가져갔다는 사실뿐이었다.
  • 그 뒤로 6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
  • 전화도 없었고, 편지 한 통도, 문을 두드리는 일도 없었다.
  • 그는 지금도 그녀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 하정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떠오른 건 조각난 기억뿐이었다.
  • 희미한 목소리와 귓가를 스치던 숨결, 시트에 번져 있던 피, 그리고 그녀의 웃음.
  •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는 다시 창가 앞으로 걸어갔다.
  • 유리에 비친 자신의 손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 반지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 그녀의 손가락 위였다.
  •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