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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빚 독촉

  • 사내는 몸을 옆으로 돌리며 긴 팔을 휘둘렀다. 소지우는 순식간에 병아리처럼 그의 손에 잡혔다.
  • 곧이어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내는 잠깐 어리둥절해 있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 사내의 얼굴에는 여전히 염라대왕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 그에게서 사람의 숨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 “개자식, 역시 너였어!”
  • 소지우는 머리에 쓰고 있던 청포 두건을 벗고 그의 코끝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 “이놈아, 네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해쳤는지 알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았는지 알아?”
  • “너… 정말 4년 전의 그 여인이냐?”
  • 영진은 가면 속의 눈빛이 약간 복잡했다.
  • 그는 그녀가 4년 전의 그 여인일 줄은 몰랐다!
  • ‘어쩐지 그렇게 닮았다고 했더니.’
  • 4년 전, 그는 사실 나중에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게다가 그런 곳에서는 죽은 기생을 끌고 나가 아무렇게나 묻어 버리는 일이 흔하다.
  • 그래서 그는 그녀가 죽은 줄로 알았다.
  •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여인이 멀쩡하게 그의 앞에 서서 그의 코끝을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있다.
  • 영진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 그는 천천히 그녀를 잡은 손을 내렸다.
  • “너 4년 전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은 게 아니었느냐? 사내는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 “어떻게 마찬가지일 수가 있어?”
  • 소지우는 발끈했다.
  • “난 그날 남에게 음해당했고 넌 그 기회를 틈타 내 순결을 짓밟았어. 게다가 네가 그리 야만적으로 괴롭히는 바람에 난 다음 날에 하마터면 도망치지도 못할 뻔했어! 더더욱 괘씸한 건 네놈이 나한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은 거야! 설령 내가 기생이라고 해도 같이 잤으면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날 소지우는 정신을 차렸을 때 온몸이 쑤시고 아파 걸음도 걷기 힘들었다.
  • 다행히 의지가 강해서 이를 악물고 담을 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춘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 정말 몸을 파는 기생이 되었을 것이다!
  • 영진은 소지우의 말을 듣고 약간 거북했다.
  • 그는 사실 그날 밤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너무 예뻐서 욕구를 통제할 수 없었다.
  • 결국 그는 약효가 사라진 뒤에도 그녀를 몇 번 더 가졌다.
  • 소지우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 온몸이 가볍게 떨렸다.
  • 영진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이 순간 그의 눈빛은 4년 전보다 더 음흉했다.
  • 소지우는 아무 말 없이 자기를 지켜보기만 하는 그의 눈빛에 더더욱 화가 났다!
  • ‘방탕한 놈!’
  • 소지우는 한 걸음 물러서서 두 손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 “넌 내 순결을 짓밟아 날 다시는 시집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의지할 곳이 없게 된 나는 평생의 행복을 완전히 잃었어. 너 설마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거야? 나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 소지우는 눈물을 머금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영진은 멍하니 소지우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고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그… 그럼 너 어찌할 생각이냐?”
  • “최소한 그날 밤의 은자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 소지우는 억울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 “그런 빚도 갚지 않을 거야?”
  • “그러나 난 몸에 돈을 갖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야.”
  • 영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내일 사람을 시켜 보내 주마.”
  • “내일?”
  • 소지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 “난 오늘 저녁에 돈이 급히 필요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냥밖에 없던 은자마저도 남에게 빼앗겼단 말이야!”
  • “누가 네 돈을 빼앗았느냐?”
  • 영진은 대뜸 눈빛이 싸늘해졌다.
  • “그 두 말 사육사야.”
  • 소지우가 말했다.
  • “됐어. 말해도 넌 모를 거잖아. 얼른 돈을 내놔.”
  • “난 정말 돈이 없다!”
  • “뭐라고?”
  • 소지우는 다짜고짜 영진의 멱살을 부여잡고 쯧쯧 혀를 찼다.
  • “너한테 돈이 없다고? 이렇게 덩치 큰 놈이 어떻게 돈이 없어?! 금실 은실로 수놓은 이 두루마기만 해도 100냥은 되겠지? 자기가 한 짓을 책임지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 게 네 스타일이야? 난 여태껏 너처럼 뻔뻔한 인간은 본 적이 없어!”
  • 염라대왕 가면 속에서 사내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살기가 번뜩이었다.
  • “왜? 나를 죽이기까지 하겠다는 거야?”
  • 소지우는 경멸의 눈빛으로 말했다.
  • “하긴 내가 죽으면 네가 계집질하고 돈도 주지 않은 거 아무도 모르겠지? 이 일이 소문 나면 창피할 테니까 얼른 나를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