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확답을 들은 에반은 잠깐 놀라는 듯 했으나 금세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뒤로, 에반의 손에 이끌려 연구실을 빠져나왔고 길고 긴 복도를 지나 알아보기도 힘든 문양들이 바닥에 새겨져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건 워프포인트라고 해. 이제 우리는 지하로 갈 거야."
"아, 뭔지 알겠다. 포탈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음, 이동하는 부분은 같은데 포탈의 경우는 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워프포인트는 우리가 직접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거야. 눈이 부실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닥에 있는 문양에서 빛이 기둥을 이루며 솓아올랐고 그 빛은 역시나 내가 있던 세계에서 이 곳으로 이동했을 때, 그리고 사막에서 이 건물로 이동했을 때 나타났던 빛과 동일했다.
엄청난 빛을 발산하는 섬광이 잦아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감탄사를 뱉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실과 복도만 봤을 땐 정말 웹툰이나 만화영화에서 보던 흔한 배경과 구조였다면 지하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잘 세공된 조각상이 가운데 있는가 하면, 한 쪽 벽면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한 운동기구들도 꽤 존재했고 반대쪽 벽면에는 아까 워프포인트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문양이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근데, 저 운동기구들은 내가 살던 곳에서 보던 것들인 것 같은데…"
"우리라고 저런 것들이 없지는 않아. 다만 좀 다르긴 하지. 나야 뭐, 네가 사는 세계를 유심히 들여다 봤으니까."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하는 에반을 보자 문득 과거의 좋지 않았던 기억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한 때, 왜소한 내 몸에 대해서 자격지심을 크게 느꼈고 운동을 하자고 결심하고 헬스장을 한 달 등록한 적이 있었다.
물론 첫 날 운동하고 알이 베겨서 3일을 쉬었지만…
아무튼, 그 후로도 몇 번씩 나갔으나 헬스장 내에 존재하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사람들 덕분에 되려 자존감만 하락한 채 발길을 끊게 된 것이었다.
"그럼 그걸 참고하고 만들었다는 얘기네. 그럼 저건 뭐야?"
꽤 슬픈 과거는 다시 내 머리 속 깊은 곳에 박아두고 멋쩍게 웃으며 다른 질문을 던지자 에반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앞서나갔다.
"저 쪽이 근력과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면 이 쪽은 마법과 마나를 단련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무것도 없는데?"
"너도 보고 물어본 것 아니야?"
문양 앞에 선 에반은 손은 바닥을 가리켰고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후, 아까처럼 강렬한 빛은 발산되지 않았지만 빛 입자가 뭉치기 시작하더니 어떠한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 어?! 어억?!"
"아는 눈치네?"
"고, 고블린!!"
"키에에에에엑!!"
"정답! 바닥에 있는 것들은 모두 소환진이야. 그리고 이 소환진으로 생성된 마물들은 모두 다 마법강화 버프가 걸려있는 상태로 소환되기 때문에 마법을 단련하기에는 최적화 되어있어. 어지간해선 죽지도 않아."
"키에에에에에엑!!"
짙은 갈색 피부에 검붉은 눈.
그리고 구부정한 자세와 생각보다 탄탄해 보이는 육체.
소름끼치는 소리를 질러대는 고블린이 눈 앞에 있었다.
소설로만, 만화로만, 게임으로만 접했던 고블린이.
다행인 것은 소환진 밖으로는 이동할 수 없는 듯 했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소환진 안에서 그저 소리만 질러대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고블린은 보통 초록피부에 키는 요정도, 머리카락이 있었나?"
"그건 너희 세계에서 만들어낸 고블린이고 실제 고블린은 여러 피부색이 존재해 마치 사람처럼. 물론 그 쪽 세계에서의 영향이 없지는 않지. 이 곳에서 마물들이 나타나게 된 것들은 결국 인간들의 상상력도 한 몫 하거든."
"인간의 상상력으로 몬스터가.. 만들어져?"
"만들어진다기 보다… 그래, 기본 데이터를 인간의 상상력으로 뼈대를 잡아두는 거야. 그걸 생성시키는 것은 결국 사념체나 혹은 신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 잘 봐. 이제부터 이게 마법사야."
"마법사?"
에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도사가 아니었다.
마법사, 에반에게 여태 들었던 얘기에 의한다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엘리트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그 마법을 보여준다는 것이 특별한 것일 터였지만 마도사라는 것을 알고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렇게 큰 기대감은 들지 않았다.
그랬는데,
-둥실
'둥실?'
-화르륵
'화르륵?'
-파지직
'파지직?'
순식간에 눈 앞에서 물과 불 그리고 전기로 이루어진 구체들이 에반의 머리 위로 떠올랐고 게임덕후인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속성계열 마법이다!'
아주 잠깐 그 상태 그대로 떠있던 구체들은 에반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일제히 고블린을 향해 날아갔다.
-콰과광! 콰앙!
파이어 볼이 먼저 닿으며 폭발을 일으켰고, 불이 붙은 고블린의 몸에 워터 볼이 씌워져 곧바로 엄청난 양의 수증기를 일으키며 동시에 고블린을 홀딱 젖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라이트닝 볼이 터지며 물에 젖었던 고블린은 마치 전기의자에 앉아 고문을 당하듯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끼에에에엑!!!!
"헐."
"신기하지?"
"근데, 방금처럼 사용하면 속성의 합이 맞지 않아서 큰 타격을 못 줄 것 같은데. 차라리 물과 전기만 사용해도 됐지 않아?"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었으나 내 얘기를 들은 에반은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역시 또 다른 나야. 이건 너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고 네 말대로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마나를 아끼기에도, 효과적으로 적을 공략하기에도 적절한 방법이야. 마법에 연금술의 조합식을 더하면 그게 바로 마도학이고. 네가 말한 것은 그 첫 번째야. 아주 기본이 되는 것이지."
"어? 어…"
떨떠름했다.
요즘은 어린 아이들도 물을 묻힌 손으로 전기가 흐르는 선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마치 내가 대단한 것처럼 말을 하는 에반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멍하니 서있는 나와는 달리 에반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 빈사상태가 된 고블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후, 손을 뻗자 쓰러진 고블린이 땅 밑으로 꺼지기라도 하듯 소환진 아래로 사라졌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한 난 바보처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에반을 바라봤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내가 죽기 전까지 네가 적응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줄게."
"네?"
"뭐, 하루가 될 수도 있고 한 달이 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열심히 해보자. 걱정마. 쓰러지기 전까지만 할 거니까."
"네?? 아니, 선생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에반에게서 기억과 경험을 이어받으면 되는 줄만 알았다.
이 때는 이렇게 빡센 훈련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에반은 제대로 운동 한 번 해본 적 없던 내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알려줬고, 이어서 마법에 대한 이론과 실전 그리고 연금술과 조합식에 대한 것들.
결국 에반이 죽기 직전까지 내 힘으로 해낸 것이라고는 작은 불씨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에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를 해줬었다.
속성으로 진행된 두 달간의 교육, 그리고 에반은 시간이 다 된 듯 했다.
"생각보다.. 오래 버텼네."
"진짜.. 끝이야?"
"응, 이젠 더 버틸 힘이 없다. 마력,체력,기력 모두 바닥이야…"
방 전체에 그려진 마법진과 그 안에 누워있는 에반, 그리고 그의 옆에 내가 앉아있었다.
에반은 옅은 미소를 띄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마도사는.. 의지를 이을 자를 찾지 못하면 소멸 돼. 육체도 영혼도. 그래도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럼 너는 죽는거야?"
"으..음.. 여태 내가 살아온 시간은.. 300년이야. 그 시간동안... 온갖 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험했어. 그 안에는 마도사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고. 완전한 답을 찾아낼 순 없었지만 내 생각엔.. 완전한 죽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ㅎ.. 쿨럭! 쿨럭!!"
300년 동안 살아왔다는 얘기는 에반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처음 들었던 사실이었다.
그 긴 세월에 놀랐고, 그 시간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험을 했다는 것에 놀랐지만 기침을 하며 동시에 각혈을 하는 모습을 보며 제일 놀랐던 것 같다.
피를 닦아줄 틈도 없이 그가 먼저 말했다.
"이제.. 시작하자."
"…그래."
그는 마지막으로 정신을 집중했고, 방 전체를 두른 마법진에서는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관록. 경험. 기억."
에반이 한 단어를 말 할때 마다 에반의 몸에서 금빛의 오라가 뿜어져 나왔고 이 오라는 푸른 빛과 반응을 하는 듯 했다.
푸른 빛들은 곡선을 이루며 에반의 몸에서 나온 오라에 합쳐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마도사 에반 바르켄 테헤드의 의지일지니…"
에반이 죽기 일주일 전, 에반은 내게 이 세계에서 활동할 이름을 만들어줬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죽고 난 뒤, 최후의 마도사로서 활동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이름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렇게 만들어진 이 쪽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
"마도사 에반 바르켄 테헤드의 의지는 곧 마도사 오센 바르켄 클리드의 의지이리."
금빛의 오라는 순식간에 에반의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왔고 푸른 기운들과 함께 내 몸으로 들어왔다.
몸 안 쪽에서부터 가득 차오르는 마력이 느껴졌다.
그의 300년간의 기억들이 속속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의 기억에 덮여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내게 각인시켰다.
*
언제 정신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있던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방 전체에 둘러져있던 마법진도, 내 눈 앞에 누워있던 에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기억에서 알 수 있었다.
'에반의 가문…'
마도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반의 가문이 몰락한 이유를.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에반이 누워있던 자리를 보며 묵례를 하며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