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윽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해결할 수 있어."
도대체 무얼 해결한다고?
이미 벌어져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서, 내가 원래있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않는 것을 보며 에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도, 틀어져 버린 일들을 바로 잡을 수도 있어. 너라면 지금 내 말을 이해 했을거라 생각해."
"그게 무슨, 설마…"
허황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에반이 말하는 의도를 추려보자면 결국 이 대화의 끝에는 내가 돌아갈 방법도, 내가 가족을 잃기 전으로 그러니까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얘기인 것으로 들렸다.
"그래,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아까 말한 '이상'을 실현시켜야 해. 네가 이 차원의 지구로 불려오게 된 것. 엄연히 따지자면 내가 너를 불러들인거지만…"
"거지만?"
"하아, 내가 본 너는 그 세상에서 더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어. 물론 내 생명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고, 내가 말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너가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야. 그러나 형제도 없고 소심한 성격과 더불어 왜소한 몸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지도 못해서 친구조차 없던 네게 부모님까지 사라졌어. 넌 더 이상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어하지 않는게 내 눈엔 보였어."
에반은 조심스레 말을 꺼내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유지했고 내가 듣기 편하도록 아니, 이건 착각인가?
아무튼 일정한 톤으로 천천히 얘기를 꺼냈다.
'뭘 얘기하는지 알겠는데…'
선뜻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왜, 어째서 내가 이 세계에 왔는지 모두 이해가 되었다고.
'이해했어.' 라는 한 마디가 입에서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사고 당일, 정신을 잃어가는 내게 보였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나를 어루만지려던 엄마의 손이.
그리고 들렸었다.
마지막으로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강..윤아. 꼭, 꼭… 살아야.. 해.. 미안하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까지 얼마나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냈는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지켜봐온 에반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자살시도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럴 때 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목소리가 떠올라 그만뒀으니까.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는 나를 기다려주기라도 하듯 에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똑같이 생긴 나를 묵묵히 바라봐줬다.
나는 난잡하게 머리를 흐트리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심호흡을 한 뒤 겨우 입을 열었다.
"이해했어. 그래,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겠어. 근데 너를 노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고 사역마의 대리라는 건 뭔데?"
"그래, 하나씩 설명해줄게."
다른 대답은 없었다.
그저 내 질문에 내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줬고 점차 나는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에반을 노리는 자들은 앞서 얘기했듯이 당연하게 다수였고 그들을 부르는 명칭은 '세례자들' 이었다.
이 세계에는 신이 여럿 존재했고 대표적인 신들을 나타내자면 '악신' , '마신' , '천신' 등이 있었고 애초에 게임과 웹툰을 즐겨하던 내게 이런 엄청난 얘기들을 듣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악신 - 살아있는 지성체들의 모든 악이 모여 만들어진 신
마신 - 인간계,천계를 제한 마계를 관장하는 신
천신 - 하늘의 기운들이 뭉쳐 하늘 그 자체가 인격화된 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고,
'세례자들'은 위 신들을 섬기지 않으며 악인 1,000명과 역사적 영웅 10명의 사념이 뭉쳐져 생겨난 '흉괴'(凶怪)를 섬기는 단체였다.
사념이 뭉쳐져 생겨난 흉괴는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았으나, 그 외의 다른 모든 종족들을 닥치는대로 잡아먹을 정도로 흉포했고 이는 신들조차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곳 사람들은 그것을 파괴신이라 부른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데 뭐가 문제냐고?
예외가 있었다.
바로,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마법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흉괴는 마법을 부리는 자들과 그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먹는데다 잡아 먹을수록 힘이 강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더불어 세례자들은 흉괴를 섬긴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권능을 부여받았고 그 권능은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을 척살하는 것에 맞춰져 있는 권능이었다.
그러나 신도 아닌 자들이 가진 권능, 신이 부여한 것이 아닌 권능 그것은 매우 불완전했고 불안정했다.
하물며, 이 쪽 세상에서 마법의 극의를 깨우친 자 혹은 한 분야의 극의를 깨우친 자 역시 권능을 부여할 수 있다지만 그 수준에 도달하는 인간이 나오는 것 역시 100년에 1명이 나올까 말까한 사례라고 한다.
때문에 종종 폭주하는 세례자들도 있었으나 현재는 세례자들이 이념이 같은 자들을 끌어모아 세례를 함으로써 그 권능의 불완전한 힘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듯 했다.
세례자들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로 나타낼 수 있고, 이들이 에반을 노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건 바로…
"그러니까, 네가 세상에 몇 없는 직업이다?"
"응, 그런 셈이지."
"마법사는 그럼 약한가?"
"아니. 소국이라도 군대에 마법부대는 무조건적으로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엄청나지."
"그럼 마법사들을 양산해서 흉괴라는 것과 세례자들을 잡아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애초에 마법사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또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라는 것이 필요하고 마나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 수치가 정해져 있으니까."
"다른 방법은 없는거야?"
"있어. 이 쪽 세상에는 총 네 명의 대현자가 있어. 대현자가 뭐냐면…"
"아, 그건 알아."
"그럼 다행이네. 마법의 끝에 다다른 대현자 1명이 마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일반인에게 마나를 부여할 수 있어. 그렇게 마법사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 그런데…"
잘 말하다가 말을 흐리는 에반을 보며 이미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간 나는 그 뒷내용이 궁금해서 미칠것 같았다.
똥 마려운 개마냥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니, 자리에서 일어난 에반이 손가락을 튕겼고 그가 서있던 오른쪽의 벽에 마치 프레젠테이션을 켠 것처럼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에는 그림동화같이 그림과 설명이 적혀있었고 나는 에반의 이야기와 더불어 벽에 나타난 그림에 집중했다.
"결국 마나가 1이라도 존재하면 그것을 할 수 없어. 대현자가 마나를 부여하기 위해선 마나가 전혀 없는 일반인이어야 한다는 것이야. 물론 네 말대로 마법사를 우후죽순 늘리면 되지않냐 하는데 이것도 그럴 수 없어. 마나를 개통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나를 깎아내며 나눠주는 것과 같은 이치거든."
"그럼 어떻게… 의미가 없잖아."
"간혹, 마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마치 부싯돌을 튕겨 불을 내듯 아주 조그마한 불씨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어. 재능이지. 대현자들은 그런 자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마나를 부여해. 엘리트만을 추려낸다는 것이지."
"아… 근데 너는 뭐라고 했지? 너도 마법사야?"
"내가 말 안 했나?"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의 입가엔 아주 작게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난 마도사야."
"마도..사?"
"응, 마도사는 연금술도 할 줄 알아야 하며 마법에 조합식을 더할 줄 알아야 해. 일반적인 마법도 역시 다룰 줄 알아야 하고."
"그럼 엄청난 거 아니야? 너 혼자서도 다 쓸어버린다거나."
순전히 힘의 크기에만 집중하던 내 말에 에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흉괴는 애초에 누구도 없애지 못했고 없애는 방법또한 아무도 몰라. 지금 상태는 '봉인' 상태라고 봐야겠지. 네 명의 대현자가 모여 간신히 흉괴를 제압했고, 흉괴가 기운을 되찾기 전에 바로 봉인을 해버렸어. 마법의 끝에 다다른 자들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흉괴야. 나라고 그 방법을 아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 상태 역시 최악이고."
"그렇구나…"
"물었지? 그들이 왜 나를 죽이려 하는지. 앞서 얘기한 것들을 종합하면 마법 자체가 큰 위협이 되는거야. 마법사는 그래도 몇 십, 몇 백만 명은 될 텐데 마도사는… 두 명 뿐이야."
"뭐?!"
"그리고 그 한 명 마저 영면에 빠졌어. 그는 나처럼 의지를 이을 자를 찾아내지 못했고 그 탓에 마력과 생명력이 급속도로 바닥을 보였어. 그 때, 그가 한 선택은 영면이야. 아주 깊은 영면. 언제 깰 지 모르는 그 영면이 끝나고 자연스레 눈이 떠질 쯤엔 어느정도의 마력이 회복되었다는 얘기거든. 해서! 지금은 나 뿐이야. 세례자들이 나를 죽이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마도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대현자들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이거든."
여기까지 듣고나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그들은 에반, 이 한 사람이 무서워서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였을지 모르는 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왜그래? 갑자기 몸을 왜이리 떨어?"
"어, 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슬펐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분노한 것이었다.
나 역시 혼자였고, 혼자라는 그 감정을 매우 잘 알았고 에반과 마찬가지로 내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저쪽 세상에서 존재했으니까.
너무 잘 알았다.
너무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에반."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부르자 에반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의식얘기를 했다가, 지식과 모든 것이라고 얘기했다가 의지라고 얘기했던 그것이 정확히 뭐야?"
"너무 횡설수설했나. 사실 전부 다야. 그렇다고 내가 니 몸에서 기생하는 건 아니야. 그저 내 기억들과 경험들이 네게 넘겨지는 것 뿐이야. 지금의 마도사들은 그렇게 대를 이어가고있어.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싶지만… 이것도 역시 내가 죽게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내용이야."
"혹시 내가 죽을 수도 있어?"
"아니, 절대. 네가 죽는다면 굳이 내가 너를 부를 이유가 없지."
"…그럼 하자. 네가 말한대로."
에반은 아까보다 더 커진 눈을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깐 없었던 것 같은 창문이 언제부턴가 열려있었고 거기서 불어온 산들바람은 에반의 하얀 머리칼을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