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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마탑, 헬리오스

  • 마탑, 마탑이란 마력이 가득한 탑을 의미하기도 하며 마력이 응집된 곳을 가르키기도 한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예외로 다룰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도사가 직접 만든 '탑'이다.
  • "뭘 해야 하지?"
  • 갓 마도사가 된 오센은 몇 대에 걸친 경험과 기억을 전수받으며 자신이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 할 지 헷갈려하고 있었다.
  • "흐음…."
  • 그렇게 고민하길 1시간.
  • 그가 처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서재였다.
  • 분명 기억에 의하면 그는 모든 기억을 전해받았을 터였고 마도사의 모든 기록과 역사를 단 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 그런데 오센이 한 행동은 꽤나 의아한 행동이었다.
  • 'F열… 13번째.'
  • 직접 에반의 가문인 바르켄 가의 역사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 굳이 그러지 않아도 에반이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오센에게 흘러들어왔을 터였지만 오센은 거기에 한 술 더 떠 생각했다.
  • '확실히, 마치 내가 겪었던 과거인 것처럼 기억이 나지만 그걸론 부족해.'
  • 이 넓은 공간의 서재에서 직접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
  • 마도사 에반조차도 몰랐던 정보를 자잘한 것이라도 좋으니 알아내는 것, 그것이 오센이 바라는 것이었다.
  • F열 13번째 책장에서 꺼내든 첫 번째 책은 '초대 마도사 헨즈'의 자서전이었다.
  • 초대 마도사인 만큼 그에 대한 정보는 물론 빠삭하게 알고있었다.
  • 하지만 역시 '만에 하나'라는 경우를 두고 다시 한 번 정독을 하기로 한 것이고 그 결과.
  • "사고와 인식. 시간의 가속. 인 헤이스트."
  • 일반적으로 헤이스트라는 스킬이 외적인 부분, 행동적인 부분에 속도를 올려주는 버프 마법이라고 한다.
  • 인 헤이스트는 그와는 반대로 내적인 부분, 시전자의 물체를 인식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이해하고 습득하는 사고에 필요한 시간을 대폭 줄여주는 버프 마법이다.
  • 그리고 인 헤이스트를 사용한 상태에서 800페이지에 달하는 자서전을 30분도 안 걸려 모두 읽어냈지만 오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듯 했다.
  • '기억과 다른 부분이 없네.'
  • 자리에서 일어난 오센이 그 다음 열로 넘어가 다른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을 때였다.
  • 거대한 서재에서 이 속도로 정보를 수집한다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탓일까.
  • 오센은 두 번째로 뽑아든 책을 잠시 덮어두고 에반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 '나랑 같은, 아니 또 다른 나라면 분명히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 아니나 다를까, 그의 기억에는 분명히 있었다.
  • 한 가지를 하더라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그리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용한 그것이.
  • '이런 방법이 있구나!'
  • 에반 30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 당시에는 바르켄 가문이 몰락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꽤 내부 인원도 많았을 당시였다.
  • 에반을 담당했던 집사는 에반에게 이 세계의 역사와 줄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며 반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켰고 이 때, 에반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다 서재에 있는 모든 책에 일시적인 마법을 걸어뒀다.
  • 마법이 걸려있는 책들은 에반의 명령 한 마디에 순식간에 생명이라도 불어넣어진 듯, 날갯짓을 하며 에반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 상태에서 에반은 약 두 시간만에 서재의 책들을 모두 정독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에반이 마법을 걸어뒀던 것은 270년 전.
  • 그 말은 아직도 마법이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 잠시 고민하던 오센은 마법이 걸려있는지 확인하는 방법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 "토즈(의지). 프렌델(명령). 오르가(생명)."
  • 일순간 서재 천장에 하얀 색의 마법진이 그려졌고, 그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재의 책들이 모두 날아들기 시작했다.
  • 에반의 기억을 토대로 외우고 있던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다른 세상에 살아가던 자신이 생각나 기분이 오묘해져만 갔다.
  • 신기하기도 하지만 정말 이런 마법이 실존한다니.
  • '빨리 확인하자.'
  • *
  • 이틀 하고, 세 시간이 지났다.
  • 에반과 같을 수는 없나보다.
  • 오센은 그렇게 생각했다.
  • 분명 기억 속의 에반은 30살이었고 300살 조금 넘게 살았던 그를 기억한다면 완전 애기때 였을텐데.
  • '도대체 어떻게 몇 시간만에 이 많은 책을 다 읽은거지?'
  • 뭐, 어찌 되었든 책을 다 봤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 넓은 서재에 빼곡히 차있는 책의 양만큼 엄청난 지식의 보고였다.
  • 이 쪽 세상의 기원, 그 자체에 한 발 짝 더 다가선 느낌이 들었고 확실히 흉괴에 관련된 정보는 에반이 살아오며 직접 만들어 낸 것이 더 많은 듯 했다.
  • 그리고 '이상'
  •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상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에반의 말을 곱씹어보던 오센은 거르고 걸러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 '에반의 의지가 내 몸에 스며들었을 때도 어렴풋이 느껴지기만 할 뿐,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랐는데…'
  • 흉괴와 순례자들을 없앤다고 해서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 그러나, 흉괴와 순례자들이 이상에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 서재에 볼 일이 더이상 없어진 오센은 복도로 빠져나와 마탑의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 에반과 함께 했던 때에도 꼭대기 층으로는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있었지만 에반 조차도 기억이 없다는 것이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 복도 끝에 펼쳐진 워프포인트에 올라서자 이제는 익숙해진 밝은 빛이 오센의 몸을 휘감았고 오센이 다시 눈을 떴을 땐 꼭대기 층의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 꼭대기 층의 입구는 별로 볼 것이 없었다.
  • 아니, 오히려 아래층에 비한다면 구조가 좀 더 퇴화된 느낌이 강했다.
  • 아무런 치장도 되어있지 않았고 장식품이라던가, 그 흔한 빛조차 없었다.
  • 복도는 짧막했고, 벽은 투박한 벽돌로 둘러져 있었으며 워프포인트 벽면에 거대한 창문이 하나 달려있는 것이 끝이었다.
  • 입구는 목재로 되어있는 문이었는데 한 눈에 보더라도 삭은 것이 보였다.
  • '꽤 오랜 시간동안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것 같은데.'
  • 오센은 마탑의 꼭대기층, 그 입구를 열기 시작했다.
  • -끼이이익
  • 낡은 문이 열리며, 경첩이 펼쳐지는 소리가 은근하게 소름을 끼치게 만들었고 이후 오센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 한 무언가를 느꼈다.
  • 누구도 접근한 적 없던 것 같던 그 방의 입구를 열자 나타난 것은 침실이었다.
  • "누가.. 살았었나?"
  • 역시나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방 안의 모든 물체에는 먼지가 자욱히 깔려있었고,
  • "어… 뭐지?"
  • 오센의 눈에서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왜…"
  • 눈물을 닦아내던 오센이 방 안으로 발걸음을 들이자 순간적으로 엄청난 두통과 함께 흐릿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 *
  • "죽여!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몰살해!"
  • 이건 도대체.. 뭐야?
  • "크하하! 마도사라는 놈들도 별 거 없구만 그래!"
  •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뭘 잘못 했다고?
  • "언젠가 세계의 악이 될 네 놈들을 살려둘 수 없지. 차라리 흉괴를 믿으라면 믿겠어."
  • 붉은색의 긴 머리칼, 청색의 제복.
  • '히얀 얀데그르'
  • 그의 부하들이 광기에 물들어 바르켄 일가를 몰살하고 있었다.
  • 그들 가운데 서있던 히얀은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었고 그저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바르켄 가의 일족들이 모두 죽고 나서야 그의 표정이 희미하게나마 바뀌는 것이 보였다.
  • "마지막인가."
  • "그렇습니다! 군단장님!"
  • "내 직접 처리하겠다."
  • "예!"
  • 군단장 히얀, 그가 직접 나서자 수 십명의 부하들은 일제히 그의 뒤로 물러났고 마지막 생존자인 아니.
  • 히얀과 그의 군대가 보기에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녀의 앞에 섰다.
  • "이름이 어떻게 되나?"
  • "시..시온 바르켄 자하드입니다…"
  •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 "쿠, 쿠드 제국의 히..히얀 군단장님이십니다…"
  • "나를 원망하나?"
  • "…."
  • 자신을 원망하냐는 히얀의 물음에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마지막 의지였으며, 자존심이었을 터였다.
  • 그것을 눈치 챈 히얀은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광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크하하하하!! 대답을 않는군! 좋아! 내 손으로 직접 마도사의 대를 끊겠다!"
  • 그의 군대조차도 그의 광적인 모습에 긴장한 듯 했으나, 검을 치켜올리며 소리치자 이내 환호하기 시작했다.
  • "와아아아아!! 히얀! 히얀! 히얀!"
  • "히얀! 히얀! 히얀!"
  • 그리고 그가 반대 손을 들어올리자 언제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냐는 듯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그 순간 소녀의 떨림도 멎어있었다.
  • 「아.. 안 돼. 왜 그러는 거야? 그녀를 죽이지 마. 부탁이야…」
  • 히얀이 들고있던 검은 푸르게 빛났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시온의 목을 내리쳤다.
  • 피가 솓아올랐고, 그들이 알기에 마지막 마도사였던 시온은 그렇게 죽어갔다.
  • *
  • "으윽, 도대체 무슨 기억이야..? 이건 에반의 기억이 아니야…"
  • 꼭대기 층 방의 중앙에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부여 잡고있던 오센은 두통이 점차 멎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리고, 그 기억이 누구의 기억이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 [바르켄의 대를 잇는 자여, 그대는 마도사인가?]
  • 오센이 김강윤이었을 때, 그 때 편의점에서 들렸던 에반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 하지만 무게감이 달랐다.
  • "누구십니까?"
  • 그 때와 다른 것이 목소리의 분위기나 무게감 뿐이 아니었다.
  • 김강윤이자, 마도사인 오센역시 그 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 [다시 한 번 묻겠다. 바르켄의 대를 잇는 자여, 그대는 마도사인가?]
  • "저는… 마도사 오센입니다."
  • [그렇군… 그렇다면 그대에게도 자격이 주어질 터.]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마탑 '헬리오스'다. 바르켄의 역사이며, 바르켄의 뿌리이자, 그대들의 힘이지.]
  • "헬..리오스? 그럼 아까의 기억은…"
  • [헬리오스 기억의 파편이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그대가 마핵을 가지고 온다면 그 때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지. 마도사 오센이여…]
  • "예? 예?!"
  • 희미해져가는 목소리는 곧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더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 복잡한 마음에 생각을 정리하던 오센은 우선 방 한 쪽에 있는 창가로 걸어갔다.
  • 아무래도 마탑의 꼭대기 층이라 그런 것인지 창문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한국의 6x빌딩의 고층에서 밖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그러니까.. 그 기억의 파편을 찾아야 이상에 가까워 질 수 있다는 얘긴가. 마핵은 마탑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 이럴 땐, 에반의 의지가 스며든 것이 꽤나 다행이라고 생각한 오센이었다.
  • 자연스레 마핵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으니까.
  • 그리고 그는 마탑의 꼭대기 층에 있던 이 침실의 주인, 시온을 기리며 창 밖의 하늘을 향해 짧게 묵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