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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나도 반격할 거예요

  • 순간 멈칫하던 사람들은 이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 그 사람들과 예의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 이에 그들은 더욱더 듣기 거북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요즘 여자들이란, 다들 하나같이 염치가 없단 말이야. 메이드 신분으로 어물쩍 더 타운에 들어와서 침대로 기어올라갈 생각인 거겠지.”
  •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네가 박 대표한테 접근할만한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 “허, 유아가 간지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박 대표한테 치근덕거리는 사람이 있다니, 너 같은 건 유아 신발 한 짝도 못 들어.”
  • “얼른 꺼져. 거슬리게 하지 말고.”
  • 이 도련님들은 누군가를 괴롭히는데 도가 튼 사람들이었다.
  • 주요하게는 박강현의 저지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안소율의 차림새 또한 그 누구도 그녀를 박강현과 연관 지어 생각할만한 차림새가 아니었기에 다들 그저 그녀를 새로 온 메이드쯤으로 생각하고는 튀는 행동으로 박강현의 관심을 받을 생각들뿐이었다.
  • 수많은 독설들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 꽃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손을 뻗어 안소율을 밀어냈다.
  • 짐들을 바리바리 들고 있던 안소율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그의 손길에 휘청였다.
  •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 이 사람들의 말속에는 존중이란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하찮게 여기고 있었고, 그녀를 멸시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들에게 멸시를 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 박강현이라면 참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박호진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었고, 그녀는 이 사람들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기에 그들에게 이런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었다.
  • 그런 그녀의 눈빛에서 불만을 읽어낸 꽃무늬 셔츠의 남자가 들고 있던 잔에 담겨있는 와인을 안소율을 향해 쏟아부었다.
  •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핑크색 물통을 내려놓은 안소율이 단숨에 그의 손목을 잡아채자 그가 들고 있던 술잔이 흔들리며 몇 방울의 술이 안소율의 작은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안소율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나도 반격할 거예요.”
  • 안소율은 순진하고 착했지만 전혀 연약하지 않았다.
  • 이들이 그녀를 괴롭히려 한다면 그녀는 진심으로 반격할 생각이었다.
  • 한 번은 산에 약초를 따러 들어갔다가 멧돼지를 만났을 때, 그녀는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상황에서도 자신을 해치려는 그 멧돼지를 끝내 죽인 적이 있었다.
  • 멧돼지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그녀가 사람을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
  • 하지만 그들은 안소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 만약 안소율의 마음속에서 자신들이 멧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아마 화가 나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내려던 꽃무늬 셔츠의 남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눈앞의 이 작은 손은 놀라울 만큼 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 안소율 역시 상대방의 몸부림을 느낄 수 있었고, 그녀는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박강현이 보고 있는 앞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 그건 너무 조신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안소율은 그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 하지만 한창 힘을 주고 있던 남자는 안소율이 손을 놓아주자, 중심을 잃고 넘어져버렸다.
  • 이로 인해 온몸에 술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고의가 아니었던 안소율은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 그러던 그때, 갑자기 박강현이 입을 열었다.
  • “시끄럽군. 안… 뭐더라, 사과해.”
  • 박강현은 안소율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 그의 말투는 사납지 않았고 목소리 역시 크지 않았다. 다만 대충 던진 그 한마디는 그 어떤 반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마치 날 때부터 타고난 듯한 강한 기세를 담고 있었다.
  • 하지만 안소율은 그의 말에 반박했다.
  •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 그 말에 주변은 더 조용해졌다. 모두들 감히 누군가가 박강현의 말에 반박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듯했다.
  • ‘이 촌뜨기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 박강현은 대개는 항상 쉽게 농담을 던져도 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가 쉬운 상대라는 것이 아닌 일종의 느긋함 아래 숨겨진 냉혈 함임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대마왕이라는 칭호는 절대 아무 이유 없이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 박강현을 화나게 하는 사람은 그 후과가 늘 굉장히 참혹했고, 이에 모두들 박강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하지만 박강현은 딱히 화가 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그는 피곤한 듯 반쯤 눈을 감은 채 그저 순수한 귀찮음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사과하던지, 아니면 꺼져.”
  • 안소율은 반짝이는 두 눈으로 박강현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곧이어 그녀의 눈빛에 담긴 빛이 서서히 사그라들더니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감싸주지 않을 것임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 자신들이 시골 마을의 부부들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하지만 그녀는 이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십수 년간 받아온 후원에 대한 보답을 해야 했고, 박강현을 보살피겠노라고 박호진과 약속을 했었다.
  • 이에 안소율은 서서히 초롱초롱하던 시선을 떨구며 주먹을 움켜쥔 채 나직이 사과했다.
  •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