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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를 잠들게 하는 향기

  • 박강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 그를 지켜주고 또 그에게 잘해주겠다고 한 사람은 안소율이 처음이었다.
  • 웃긴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르게 박강현은 웃지 않았다.
  • 안소율을 오해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박강현의 차가운 눈빛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 불현듯 박강현은 어디선가 나는 은은한 향기에 매료되었다. 비누 향과 우유 향이 교묘하게 섞인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이었다. 그 향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또 졸리게 만들었다.
  • ‘나 지금… 졸린 거야? 어젯밤에 마음이 차분해졌던 원인이 설마 이 향기 때문이었던 거야?’
  • 박강현이 김미진을 보며 말했다.
  • “이모, 이제 들어가 봐.”
  • 김미진은 주저하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안소율을 바라보다 감기약을 찾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떠났다.
  • 굳은 표정으로 욕조를 나온 박강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 “꼬맹이, 옷 갈아입고 내 방으로 와.”
  •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 으슬으슬 추워진 안소율이 덜덜 떨며 말했다.
  • “강현 씨 방은 왜요? 그리고 저 꼬맹이 아니에요. 저 이름 있어요. 전 안소율이라고 해요.”
  • “꼬맹이,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 명령조로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던 박강현은 안소율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젖은 옷 그대로 돌아서서 나갔다.
  • 박강현이 가고 나서 안소율은 입을 삐죽거렸다. 그 모습은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토끼 같았다.
  • 안소율은 살려고 악착같이 노력했었다.
  • 그녀는 자신의 볼을 가볍게 치며 기운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 “소율아, 넌 강한 아이야. 괜찮아, 넌 은혜 갚으러 온 까치야. 이깟 고난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 안소율은 젖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고는 김미진이 테이블에 놓아둔 감기약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 ‘왜 갑자기 자기 방으로 올라오라는 거지? 또 나 괴롭히려는 거 아니야?’
  • 안소율은 망설이다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 ‘괴롭히려면 괴롭히라지. 나 하나도 안 무서워!’
  • 안소율이 박강현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그녀는 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이번에는 내가 함부로 들어간 게 아니라 자기가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가는 거야.’
  •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박강현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마치 잠에 푹 빠지기라도 한 듯 눈을 꼭 감고 있었다.
  • 안소율은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깨어있을 때 박강현이 나른하고 거만한 모습이었다면 잠들어있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무척 사나운 분위기를 풍겼다.
  • ‘잠들어있을 때 더 편안하고 평온해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 안소율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이때 박강현이 눈을 번쩍 뜨며 매서운 눈빛으로 안소율을 쏘아보았다.
  • 안소율은 갑자기 지난번에 박강현이 자고 있을 때 접근했다가 맞을 뻔했던 게 떠올라 다급히 말했다.
  • “저예요, 저. 때리지 마요. 자다 깨서 성질 좀 부리지 마요. 강현 씨가 오라고 해서 온 거잖아요!”
  • 박강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안소율을 바라보았다.
  • ‘뭐라는 거야? 자다 깨서 성질 좀 부리지 마?’
  • 박강현은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제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 “이리 와.”
  • 안소율은 경계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 “뭐 하려고요?”
  • 박강현은 또다시 그를 졸리게 하는 그 향기를 맡았다.
  •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 “다시 한번 말할게. 이리 와.”
  • 안소율은 강강약약이라 박강현의 말에 눈을 치켜뜨며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 박강현은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지만, 박호진 때문에 안소율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 박강현의 말투가 더욱 싸늘해졌다.
  • “꼬맹이, 우린 이미 결혼했어. 부부는 마땅히 함께 자야 해.”
  • 안소율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돌아서서 박강현을 쳐다보며 반박했다.
  • “아저씨, 제가 어리다고 사기 치는 거예요? 부부라도 각방 쓸 수 있어요.”
  • 아저씨라는 말에 박강현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가 다시 차갑게 얘기했다.
  • “너 내 난초 망가뜨렸잖아.”
  • 그 말에 안소율의 발걸음이 멈췄다.
  • 그녀는 더 이상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배상할게요.”
  • “언제 배상할 건데?”
  • “시… 시간을 좀 주세요. 차용증 쓸게요.”
  • 안소율은 이제 정말 더 이상 당당하게 나올 수 없었다.
  • ‘어쩔 수 없지. 빚진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그러겠어.’
  • 이때 박강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종이와 펜에 무언가를 써서 안소율에게 건넸다.
  • 차용증이 아니라 협의서였다.
  • 협의서에는 박강현과 하룻밤을 같이 자면 배상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쓰여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