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몸을 옆으로 돌리며 긴 팔을 휘둘렀다. 소지우는 순식간에 병아리처럼 그의 손에 잡혔다.
곧이어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머리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내는 잠깐 어리둥절해 있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사내의 얼굴에는 여전히 염라대왕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 그에게서 사람의 숨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개자식, 역시 너였어!”
소지우는 머리에 쓰고 있던 청포 두건을 벗고 그의 코끝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놈아, 네가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해쳤는지 알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살았는지 알아?”
“너… 정말 4년 전의 그 여인이냐?”
영진은 가면 속의 눈빛이 약간 복잡했다.
그는 그녀가 4년 전의 그 여인일 줄은 몰랐다!
‘어쩐지 그렇게 닮았다고 했더니.’
4년 전, 그는 사실 나중에 그녀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런 곳에서는 죽은 기생을 끌고 나가 아무렇게나 묻어 버리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죽은 줄로 알았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여인이 멀쩡하게 그의 앞에 서서 그의 코끝을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있다.
영진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잡은 손을 내렸다.
“너 4년 전에 손님을 기다리고 있은 게 아니었느냐? 사내는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어떻게 마찬가지일 수가 있어?”
소지우는 발끈했다.
“난 그날 남에게 음해당했고 넌 그 기회를 틈타 내 순결을 짓밟았어. 게다가 네가 그리 야만적으로 괴롭히는 바람에 난 다음 날에 하마터면 도망치지도 못할 뻔했어! 더더욱 괘씸한 건 네놈이 나한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은 거야! 설령 내가 기생이라고 해도 같이 잤으면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날 소지우는 정신을 차렸을 때 온몸이 쑤시고 아파 걸음도 걷기 힘들었다.
다행히 의지가 강해서 이를 악물고 담을 넘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이춘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곳에 남아 정말 몸을 파는 기생이 되었을 것이다!
영진은 소지우의 말을 듣고 약간 거북했다.
그는 사실 그날 밤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너무 예뻐서 욕구를 통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약효가 사라진 뒤에도 그녀를 몇 번 더 가졌다.
소지우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온몸이 가볍게 떨렸다.
영진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 이 순간 그의 눈빛은 4년 전보다 더 음흉했다.
소지우는 아무 말 없이 자기를 지켜보기만 하는 그의 눈빛에 더더욱 화가 났다!
‘방탕한 놈!’
소지우는 한 걸음 물러서서 두 손으로 자기 몸을 가렸다.
“넌 내 순결을 짓밟아 날 다시는 시집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의지할 곳이 없게 된 나는 평생의 행복을 완전히 잃었어. 너 설마 그래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거야? 나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소지우는 눈물을 머금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영진은 멍하니 소지우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고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너 어찌할 생각이냐?”
“최소한 그날 밤의 은자라도 줘야 할 거 아니야?”
소지우는 억울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빚도 갚지 않을 거야?”
“그러나 난 몸에 돈을 갖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야.”
영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사람을 시켜 보내 주마.”
“내일?”
소지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난 오늘 저녁에 돈이 급히 필요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냥밖에 없던 은자마저도 남에게 빼앗겼단 말이야!”
“누가 네 돈을 빼앗았느냐?”
영진은 대뜸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 두 말 사육사야.”
소지우가 말했다.
“됐어. 말해도 넌 모를 거잖아. 얼른 돈을 내놔.”
“난 정말 돈이 없다!”
“뭐라고?”
소지우는 다짜고짜 영진의 멱살을 부여잡고 쯧쯧 혀를 찼다.
“너한테 돈이 없다고? 이렇게 덩치 큰 놈이 어떻게 돈이 없어?! 금실 은실로 수놓은 이 두루마기만 해도 100냥은 되겠지? 자기가 한 짓을 책임지지 않고 시치미를 떼는 게 네 스타일이야? 난 여태껏 너처럼 뻔뻔한 인간은 본 적이 없어!”
염라대왕 가면 속에서 사내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살기가 번뜩이었다.
“왜? 나를 죽이기까지 하겠다는 거야?”
소지우는 경멸의 눈빛으로 말했다.
“하긴 내가 죽으면 네가 계집질하고 돈도 주지 않은 거 아무도 모르겠지? 이 일이 소문 나면 창피할 테니까 얼른 나를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