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주인공은 누구인가?
- 저녁 6시, 국제호텔.
- 입구에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젊은 남녀들이 적지 않게 서있었다.
- “서윤이 왔어. 근데 왜 스쿠터를 타고 왔지? 뒤에 타고 있는 사람이 남편인 건 아니겠지?”
- 반서윤은 스쿠터를 타고 호텔 입구에 도착해 눈길을 끌었다.
- “서윤아, 드디어 왔네!”
- 유림은 남자친구 민우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반서윤과 포옹을 했다.
- “우리 졸업하고 나서 1년 넘게 못 만났네. 길에서 차가 막힌 줄 알았어!”
- 반서윤을 비꼬는 것이었다.
- “유림아, 낡은 스쿠터를 타고 왔는데 차가 막힐 리가 없잖아!”
- 옆에 있던 이성우가 뛰쳐나오며 비웃음을 터뜨렸다.
- 동창들이 만나면 그냥 서로 비교만 했다.
- “이성우, 동창끼리 만나면 비교하지 말아야지, 안 그래?”
- 유림은 고개를 돌려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 반서윤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사실이 이러니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 유림은 반서윤을 향해 말했다.
- “여기는 내 남자친구 민우겸, 민 씨 기업 이사야!”
- 뭐, 유림의 남자친구가 민 씨 기업 이사, 민우겸이라고?
- 유명인사잖아!
- 민 씨 기업은 상장기업으로서 시가총액이 수백억이었다. 유림은 참 복도 많네.
- 어쩐지 여기서 생일파티를 하더라니.
- 민우겸이라는 세 글자에 온 장내가 시끌벅적해졌다.
- 이 졸업생들은 사실 그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갑자기 민우겸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 자연스럽게 우러러보게 되었다.
- 유림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만끽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 그녀는 말했다.
- “서윤아, 남편 소개시켜줘!”
- “조태수입니다.”
- 조태수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오른손을 내밀며 상당히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 민우겸은 흘끗 곁눈질했고, 조태수를 무시하는 듯한 눈빛이 언뜻 스쳤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다만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있었고 조태수는 못 본 듯 여전히 악수를 청했다.
- 반서윤은 어쨌든 명문가 출신이라 장갑을 끼고 악수를 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마음이 좀 불편했다.
- 그러나 다음 순간, 조태수는 주머니에서 냅킨을 꺼내 오른손을 닦더니 무심코 냅킨을 버렸다.
- 어라?
- 민우겸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가 누구인가, 민 씨 기업의 젊은 이사인 그가 장갑을 끼고 신분이 없는 사람과 악수를 나눈 것만으로도 이미 상대방을 추켜세운 것이었다.
- 그러나 상대방이 이렇게 호의를 모를 줄은 몰랐다.
- 유림은 이 기괴한 장면을 발견하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서윤아, 네 남편은 엄청 건방진 사람인 것 같네!”
- 먼저 무례하게 행동한 사람은 민우겸인데, 유림은 오히려 조태수가 건방지다고 말했다.
- 유림은 계속해서 말했다.
- “참, 서윤아, 너도 명문가 출신이잖아. 반 씨 인터내셔널, 현재 시가 총액이 200억이 넘는데, 왜 스쿠터를 타고 왔어? 설마 스포츠카가 있는데 운전하기 싫었던 거야?”
- “하긴, 지금은 개나 소나 다 차를 갖고 있어서 교통체증이 심하니, 운전을 안 하는 것도 정상이지.”
- 말 속에 말이 있는데 반서윤이 어찌 그 뜻을 모를 수 있겠는가.
- 그녀가 말을 꺼내려는데 옆에서 한 여학생이 불쑥 튀어나왔다.
- “림아, 넌 외국에 있었으니까 몰랐겠지만, 지금 서윤이네 가족은 그 집안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고 아무런 지위도 없어. 요즘 서윤이네 가족이 집안에서 쫓겨날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잖아. 지금은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니까!”
- “좋은 남편을 고르는 재주도 없으니까 스쿠터나 타고 다니지. 교통체증은 무슨, 스포츠카도 없는 게 분명해!”
- “강신영, 그럴 리가 없잖아.”
- 유림은 일부러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 “쟤 말이 맞아. 난 집안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어. 오늘 파티가 서로 비교하기 위해서 열린 거라면, 나도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네. 여보, 가자!”
- 말을 마치고, 반서윤은 조태수의 오른손을 잡고 떠날 채비를 했다.
- 여보?
- 그 말 한마디가 조태수를 미치게 했다.
- 그러나 다음 순간, 유림이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 “서윤아, 그런 말 하지 마,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방금 한 말은 실수였어!”
- 유림이 그렇게 말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 다만, 조태수가 방금 어딘가에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서윤아, 어서 나랑 같이 들어가자. 오늘은 우리 둘의 생일인데, 넌 내 남자친구 덕분에 나랑 같이 생일파티를 하게 됐네?”
- 그 말인즉, 자기가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이었다.
- “여보, 오늘 당신 생일이었구나!”
- 조태수는 깜짝 놀라,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 “어떻게 서윤이를 속여서 결혼했대요? 서윤이의 생일도 모르고, 그러고도 남편 노릇할 수 있겠어요?”
- 유림은 힐끗 조태수를 바라보았다.
- “하지만 괜찮아, 내 남자친구가 준비한 케이크가 엄청 크거든!”
- “그건 그쪽 거죠!”
- 조태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코 입을 열었다.
- “내 아내의 케이크는 내가 직접 준비합니다.”
- 그 말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조태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 이럴 때, 꼭 아첨꾼들이 끼어드는 법이었다.
- “서윤아, 네 남편은 정말 호의를 모르네. 유림이가 너한테 케이크를 나눠주겠다는데, 고마워하지도 못할망정.”
- “그러게 말이야!”
- 이성우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 “민 이사님이 산 케이크가 적어도 2000천만 원은 되는데, 꼴에 자기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올 때 낡은 스쿠터나 타고 왔으면서, 자기가 무슨 신분이나 있어? 케이크 한 조각에 재산을 탕진하는 건 모르겠네. 전에 민 이사님이 그래도 존중해 준다고 신분을 낮춰 악수까지 해줬는데 예의 없이 굴었잖아,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 이성우는 거침없이 말했다.
- 반서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 “같은 동창끼리, 말 좀 줄이면 안 돼?”
- 유림은 호통을 쳤지만 얼굴에는 오만한 기색이 역력했다.
- “저 문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 “뉴스에서 본 적 있어, 국제호텔의 방 대표님이야, 젊고 유망하신 분!”
- 이때, 양복 차림의 한 청년이 호텔에서 나왔는데, 엄청난 포스에 민우겸마저 기세가 눌렸다.
- 국제호텔은 전국에 1000개 이상의 체인 호텔을 가지고 있으며 스카이 인터내셔널의 산업 중 하나에 속했다.
- 그리고 방 대표는 소해에 있는 10여 개의 국제호텔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비록 호텔의 CEO였지만, 비즈니스계에서 누가 감히 그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겠는가.
- 어쨌든, 광활한 소해는 거의 모든 유명한 기업이 스카이 인터내셔널과 연결되어 있었다.
- “방 대표님, 여자친구 생일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민우겸은 즉시 장갑을 벗고 오른손을 뻗어 앞으로 나와 맞이했다.
- “역시 민 씨 기업의 이사야. 방 대표님과도 아는 사이라니,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체면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 민우겸의 뒷모습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이 샘솟았다.
- 유림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웃음기가 배었다.
- 그녀는 반서윤을 향해 말했다.
- “내 남자친구랑 방 대표님은 비즈니스상의 친구야. 아무나 이런 체면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
- 하지만 방 대표는 마치 민우겸을 못 본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 민우겸은 허공에 오른손을 내민 채, 어색하게 서있었다.
- 유림의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반서윤 아가씨께서 오셨는데, 제가 미리 마중을 나오지 못한 점에 대해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방 대표가 반서윤 앞에 와서 직접 몸을 굽혀 오른손을 내밀었다.
- 굽실거리는 모습이 마치 엄청난 인물을 마주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 민우겸은 얼이 빠져 우두커니 서있었다.
- 다른 사람들도 얼떨떨해져서 마치 계란이 목에 걸린 것처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 민우겸과의 악수를 하찮게 여기던 방 대표가 반서윤 앞에서 굽실거리다니.
- 이……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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