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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물건을 저당 잡히다

  • 영진은 그녀의 원망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 허리춤에서 물건 하나를 뜯어내어 그녀에게 던졌다.
  • “이걸 받거라. 적지 않은 돈이 될 것이다!”
  • 소지우는 불빛을 빌어 자세히 보았다. 이것은 이안천주였다. 그녀는 이 물건이 가치가 있는 줄을 알면서도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
  • “이 유리 조각이 은자 몇 푼이나 가나? 곧 다 써버릴 텐데 요까짓 걸로 어떻게 돼? 넌 나를 비참하게 해쳤어. 이젠 나랑 결혼해서 먹여 살려 줄 사람이 없잖아. 그럼 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 아이고, 내 팔자야…”
  • 그녀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 “정말 귀찮구나.”
  • 영진은 이를 갈며 말했다.
  • “내일 이 시각에 여기 와서 나를 기다리거라. 난 너를 굶어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훌쩍 솟구쳤다. 훤칠한 몸이 창문으로 날아 나가 어둠 속에 사라졌다.
  • “좀스러운 놈!”
  • 소지우는 눈물을 훔치고 천주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삐죽거렸다.
  • “너 잘 걸려들었어. 나한테 빚진 거 순순히 갚아야 할 거야!”
  • 아직 날이 너무 늦지 않았다. 소지우는 천주를 들고 서둘러 전당포를 찾았다. 이 전당포의 이름은 천자호였다.
  • “이건…”
  • 전당포 주인은 천주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야위어 파리해진 소지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이 천주를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가난한 선비가 훔치지 않고서야 어디서 이런 보물이 생겼겠는가?
  • “은자를 얼마나 받을 수 있어요?”
  • 소지우는 간절하게 물었다.
  • 그녀는 정말 가난에 넌더리가 났다.
  • 소묵과 소봉을 먹이고, 입히고, 학당에 보내어 공부시켜야 한다. 유모 문씨도 약을 먹고 풍습을 치료해야 한다. 설령 그녀는 먹지 않고 입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노인과 아이들은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이것은 솔직히 말해서 보통 물건이 아닙니다.”
  • 주인이 말했다.
  •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을 받았다가 관아에서 조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손님, 다른 곳으로 가서 물어보십시오.”
  • 소지우는 딱했다. 거리의 가게들도 이미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 늦은 시각에 어디 가서 돈으로 바꾼단 말인가?
  • 게다가 설령 돈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때면 너무 늦어서 떡이나 고약을 살 수 없지 않겠는가?
  • “이 물건은 절대 훔친 게 아니에요.”
  • 소지우는 초조하게 말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한 친구가 저한테 선물한 거예요.”
  • “그럼 그 친구가 훔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장물을 처분하는 것도 도둑질과 같은 죄입니다.”
  • “도둑질…”
  • 소지우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 주인의 말이 맞다. 누가 그 염라대왕도 도둑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 이상하고 음산한 가면, 온몸에 넘쳐흐르는 살기, 칼에 찢어진 두루마기, 이런 사람이 희대의 도둑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보통 사람에게 어찌 그렇게 강한 카리스마가 있겠는가?
  • 그러나 그녀는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지금 정말 돈이 필요했다!
  • “그럼 이러죠.”
  • 소지우는 잠깐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 “저도 이 물건을 저당 잡히기 아까워요. 일단 여기에 맡길 테니 은자 세 냥만 주세요. 사흘 안에 다섯 냥을 돌려드리고 다시 찾을게요.”
  • 주인도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가치가 엄청난 이 물건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먼저 은자 세 냥을 내주고 이 여인이 사흘 안에 찾으러 오지 못하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는 이 물건을 이웃 나라의 부자들에게 팔아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다.
  • 소지우는 은자 세 냥을 받은 뒤 부랴부랴 달려가 떡과 고약을 사 들고 밤이 깊어서야 셋집으로 돌아왔다.
  • “어머니, 어머니!”
  • 소묵과 소봉은 포동포동한 손을 벌리고 달려왔다.
  • “착하네. 착해!”
  • 소지우는 눈시울을 붉히며 쪼그리고 앉아 포동포동한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
  • “이 늦은 시간까지 왜 자지 않은 거야?”
  • 소지우는 두 아이의 얼굴에 뽀뽀했다.
  • “묵이는 어머니가 걱정스러웠어요.”
  • “봉이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봉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자고 싶어요.”
  • 소지우는 눈물이 찔끔 솟으며 눈앞이 흐릿했다. 이 두 아이가 있는 한 그녀는 어떠한 고생도 두렵지 않았다.
  • “착하지. 어머니가 떡을 사 왔어.”
  • 소지우가 말했다.
  • “그리고 할머니의 고약도 사 왔으니 어서 할머니의 방으로 가져가.”
  • “제가 할머니께 고약을 발라 드릴게요.”
  • 소봉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할머니는 계속 허리가 아프다고 했어요.”
  • “저는 어머니께 발 씻을 물을 떠 올게요.”
  • 소묵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어머니는 피곤할 테니 빨리 쉬세요.”
  • “정말 철이 들고 효성스러운 아이들입니다.”
  • 문씨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 “아씨께서는 이 늦은 시각까지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어요.”
  • 소지우는 방긋이 웃었다.
  • “앞으로 우리 식구들이 굶거나 추위에 떠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아씨께서 그리 여린 몸으로 얼마나 벌겠습니까?”
  • 문씨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 “쇤네가 아씨께 짐이 되고 있습니다!”
  • 소지우는 문씨의 거친 손을 잡았다.
  • “우리는 가족이에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제가 스스로 돈을 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저에게 돈을 주기도 해요.”
  • “다른 사람?”
  • 문씨는 깜짝 놀랐다.
  • “아씨, 절대 허튼짓은 하지 마십시오!”
  • “그런 게 아니에요.”
  • 소지우는 황급히 설명했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 그녀는 두 아이를 보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
  • 아직 염라대왕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신분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아버지 일은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 이튿날, 소지우는 무명옷으로 사동처럼 꾸민 뒤 마차를 타고 성 밖의 어마감으로 향했다.
  • 어제의 그 뚱보와 말라깽이는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마구간 청소를 시켰다.
  • “여기 마구간이 이렇게 많은데.”
  • 소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 “이게 다 내가 할 일이라는 거야?”